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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May 17. 2023

유럽 디지털 노마드 빅토리아와의 여행

내면이 솔직한 친구 빅토리아

빅토리아는 오스트리아에서 왔다. 6개월 동안 아시아를 여행하기 위해서 왔고 네팔에선 이미 7일 동안  4000m 이상의 안나푸르나 캠프를 다녀왔다고 했다. 일주일 동안 같이 푸르나 요가센터에서 지냈는데 대화를 하다 보니 마음 울림점이 비슷해서 금방 친해졌다. 요가 리트릿은 점시시간 이후부터 4시까지는 자유 시간이라 둘이서 산아래 마을로 내려가 카페도 가고 낮잠 자고 일어나면 내가 싱잉볼 테라피도 해주었다.


빅토리아는 원격으로 일한다. 마케터 겸 디자이너인데 브랜드 켄텐츠를 만들고 뉴스레터 만드는 일을 해서 나랑 비슷한 작업이 많아 서로 대화하다가 눈썹을 씰룩거리며 눈 커진 적이 많다.

"나도! 나도! 디자이너 전공인데 마케팅일을 계속 해왔거든. 디자인이랑 마케팅 결국 원하는 건 똑같지 않아?

어떻게든 소비자를 설득하는 거니까.. 그래서 사실 글 잘 쓰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아"


회사 다니는데 어떻게 여행하냐고 했더니 일주일에 이틀 일하는 걸로 자신이 제안하고 여행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거다. 아니 그게 돼?라고 물었더니 빅토리아는 더 놀라하며 아니 그럼 원하는 게 있는데 말하지 않으면 어떤 방법이 있어?라고 되물었다.


빅토리아에게 배운 2가지 


01.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면 돼. 품고만 있으면 누가 알아줘?


"회사 다니다가 여행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빅토리아는 5-6년째 같은 회사를 다니는데 코로나 후에는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싶어서 회사에 제안을 했다고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프리랜서 사업도 하고 싶은데 회사 시간을 조율할 수 있는지. 회사 측과 협의 끝에 빅토리아는 프리랜서로도 활동하며 타 브랜드가 어떻게 일하는지, 커뮤니케이션이 역시나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다. 이번에는 아시아 여행을 하고 싶어서 회사에 일주일에 이틀 원격으로 일할테니 시간과 연봉을 조율해달라고 했다는 거다. 빅토리아는 신중하고 조용한 사람이다. 웃다가 웃음이 잦아들 때 남이 웃으면 또 웃고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면 금세 얼굴이 빨개진다. 원하는걸 잘 말하는 사람은 목소리가 크고 결심이 가득해야 한다고 강력한 에너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상대방이 내 소리를 긴장한 채 들으니까? 그런데 필요한 건 진심과 옹골찬 마음.


회사가 어떻게 그렇게 승인해 줬니 물으니 자기도 그만큼 고맙기 때문에 이틀 동안 일 할 때는 정말 딴생각하나도 안 하고 하루종일 일만 한다고 했다. 원하는걸 당연히 말해야지 그럼 어떻게 하는데?라고 아무렇지 않게 툭 물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그래 상대한테 원하는 걸 말하면 되는데 회사는 당연히 안된다고 할 거니까 퇴사를 하거나 회사 험담만 하며 마음을 썩혔지. 그럴싸한 거짓말로 퇴사 사유를 적지 않아도 그냥 툭 담백하게 내 의견을 말할 수 있잖아?

고민을 후딱 상대에게 던지는 게 우리의 일일지도 몰라. 고민을 내가 품고만 있으면 구렁 내가 나서 결국 손에 놓고 포기하는데 상대에게 던져놓으면 일단 나는 마음을 비우고 기다릴 수 있다. 그리고 상대방이 안된다고 하면 그럼 어떻게 하면 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지 다시 물어보면 된다. 고민과 에고, 불필요한 상상이 내 마음에 덕지덕지 붙지 않고 더 가볍고 즐겁게 물어보고 답할 수 있다.


둘이서 같이 하는 일인데 당연히 상대의 의견을 빨리 듣는 게 효율적이다. 혼자만의 고민이 깊어지면 머리도 흐려지고 감정적인 판단이 되기 쉬운 듯하다. 


빅토리아는 가벼운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회사에 있는 컴퓨터 원격제어로 작업을 한다고 했다. 그럼 파일 용량 고민하지 않고 다닐 수 있다면서. 수요일 목요일이 일하는 날인데 화요일부터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 마음을 내려놓으려고 노트에 해야 할 일을 기록해 두고 더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1시간 일하고 3시간 했다고 해도 모를 일을 그녀는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며 절대적으로 시간을 지키고 업무환경이 좋은 숙소를 찾아간다. 빅토리아를 지켜보면 믿을 수밖에 없다. 가만히 수줍게 웃고 있으면 향내가 나는 친구. 작은 요가 동작을 하고 나서도 선생님께 물어보며 진지하게 연습하는 빅토리아. 작은 몸짓과 말 하나하나가 진솔함이 가득하다.


빅토리아와 수딥 선생님, 셋이서 대화를 오래 하는 날이면 빅토리아와 함께 행복하다며 눈빛을 나눴다

02. 스트레스받을 때는 내 몸을 관찰해. 그럼 감정적으로 혼란스럽지가 않아


요가센터에 지내는 친구들이랑 생일이야기를 하다가 빅토리아에게 물었더니 이틀 뒤가 생일! 어떤 케이크 좋아하는지 물었더니 당근케이크이라고 해서 생일날 낮에 마을로 내려가 케이크를 사 오려고 했다. (치약 하나를 하러 가도 산을 타야 한다. 둘이 치약이랑 코코넛오일이 필요해서 날이 좋은 날에 비탈길을 내려가는데 지금 삶이 행복하다며 웃었다. 카페에서 먹었던 당근 주스도 너무나 맛있고 사람들이 많은 게 신기하다며 골목을 구경하기도 했다.)


오 그런데 생일 아침에 선생님들이 케이크를 준비해 주셨다.  다 같이 기타 치며 노래하며 생일을 축하해 줬다. 선생님은 킴제이가 케이크 물어봐줘서 당근케이크 살 수 있었다며 고맙다며 기뻐하셨다. 빅토리아가 생일은 화요일이었고 수요일에 일을 해야 해서 다른 숙소로 옮긴다고 했다. 마지막 날이 생일인 그녀와 저녁식사를 하고 싶어서 저녁 요가수업은 취소하고 마을로 내려가 빅토리아를 다시 만났다. 둘이 먹고 싶었던 몽골음식 식당을 찾아갔던 것 같다. 이탈리아에서 온 마니따의 추천으로 만두와 누들수프 그리고 볶음밥을 주문했다.


일을 할 때 어떤 마음인지 왜 스트레스를 받는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물었다.

"빅토리아, 너는 5년 뒤의 네가 지금의 너를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우리 너 생일이니까 둘 다 생각하고 이야기해보는 거 어때?"

"음.....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 지금 여행하면서 일 잘하고 있으니까 불안해하지 않아도 잘하고 있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


"그래! 그럼 우리 그렇게 하면 되겠다!"

"킴제이 정말 고마워. 진짜 마음이 한결 나아진다. 지금은 스트레스를 조율해야 하는 거 같아. 사실 수요일이 온다는 사실 만으로도 월요일부터 신경이 쓰여서 월요일, 화요일은 내가 집중을 못하는 거 같아"


빅토리아가 예전에 심리 테라피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예전 남자친구 이야기를 한참 하는데 선생님이 지금 호흡은 어떤지 몸의 변화는 어떤지 불쑥 물어보더란다. 가만히 보니 자기가 손을 꽉 진 채 이야기하고 얼굴에도 열감이 느껴졌다고 했다. 


"킴제이 긴장되고 스트레스받을 때는 너의 몸과 호흡을 한번 살펴봐봐. 선생님이 그 말하고 내 손을 보는데 진짜 놀랐어. 그러면서 내 몸 하나하나 관찰하며 아 지금 호흡은 이렇구나 손에 힘을 꽉 쥐고 있네? 바라보니 문제는 작게 느껴지고 감정을 관찰하게 되더라고.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어"


"아 너무 좋은데? 그럼 감정에 빠지지 않고 그 감정에 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볼 수 있잖아. 그럼 감정에서도 한 발짝 물러나니까 좀 더 마음이 편해질 것 같긴 해. 맞아 야 누가 나를 힘들게 했냐 보다 나는 지금 어떠한가 알아봐 주는 게 더 중요하잖아?!!?"


그 뒤로도 답답한 일이 생기거나 마음의 언성이 높아질 때면 고개를 휙돌려 내 심장이 어떻게 뛰는지 살펴본다. 아 지금은 어깨가 무겁구나. 미간도 귀에도 힘이 바짝 들어가네 하면서 천천히 숨을 쉬며 긴장을 한 번은 풀어본다. 그럼 온 힘을 다해 꽉 붙잡고 있던 짜증이 호흡과 함께 내 마음에서 빠져나간다. 감정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건데 내가 애써 붙잡고 코 박아 냄새를 맡을 때가 많다. 이 사람의 말과 마주한 상황들이 왜 나를 불편하게 하는지 내 마음을 조금은 더 들여다보게 되기도 한다. 

빅토리아와 나의 요가 선생님들. 비제이 송별회에 둘이 초대되서 저녁밥을 같이 먹었다. 


빅토리아 생일날은 선생님들과 다 같이 산 타고 내려가 카페에서 음료수를 마셨다. 카페 나와서는 빅토리아에게 하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더니 포카라를 더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그럼 아무 버스나 타고 일단 가보자고 했다. 빅토리아는 이렇게 해본 적이 없는데 신난다며 바로 우리 앞을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탔다. 둘이 설레어하며 버스 종점에서 내려서 저 멀리 호수 물결이 더 아름다운 곳으로 한참을 걸어갔다. 공원에 앉아 사람들 구경도 하고 이야기도 나눴다. 태국에서는 디지털 노마드 커뮤니티도 자주 찾아가 일이야기를 할 사람들이 많았는데 네팔에서는 요가랑 명상만 집중하다 보니 일이야기는 깊이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비슷한 일을 하고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보는 친구가 생기니 별별 이야기를 다 하게 되었다. 비슷한 향이 나는 삶을 사람을 만나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진다.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받고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에 남는 배움이 된다. 해가 어둑어둑 지길래 버스 정류장으로 다시 걸어가자고 엉덩이를 털고 공원을 나왔다. 가는 길에는 네팔 고등학생 두 명을 만나 30분을 이야기하며 도로길을 걸었다.

빅토리아 생일 아침. 초코케이크랑 빅토리아가 좋아하는 당근케이크까지

빅토리아와 나는 이렇게 여행은 아름다운 거라며 둘이서 이 어두운 길을 걸었으면 무서웠을 텐데 친구들을 만나서 얼마나 다행이냐며 웃었다. 이틀 뒤에는 빅토리아랑 포카라에 있는 동굴을 가기로 했다. 둘이서 요가센터에서만 지내다 보니까 다른 동네도 너무 궁금했다. 빅토리아는 새로운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가고 나는 요가센터로 갔다. 자기 전에 빅토리아가 연락이 왔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났는데 같이 동굴에 가면 어떻겠냐고. 좋다고 답했다. 금세 친구를 만든 빅토리아가 귀여웠다. 새로 만난 친구는 라리사. 독일에서 온 친구고 앱개발자인데 3개월 동안 무급휴가를 쓰고 네팔과 인도를 여행할 거라고 했다. 빅토리아는 킴제이 놀라운 사실이 있다면서 킴제이가 가는 요가 트레킹 프로그램에 라리사도 4개월 전에 신청했다며 같이 갈 거라고 했다.

빅토리아가 소개해준 라리사.  내 영혼을 위로해준 두 친구들이 같이 찍힌 사진. 네팔 버스에서

라리사. 

빅토리아를 통해 함께 만난 친구. 지나칠 줄만 알았던 인연이 우리를 히말라야 산맥까지 데려갔다. 12일 동안 같이 산을 오르며 눈만 마주치면 웃고 울어줄 수 있는 친구가 되었다. 라리샤 이야기는 다음글에서 소중히 다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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