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듯 퇴사하겠습니다

퇴사로 시작해 입사로 끝나는 "타임머신 직장생활" 이야기

by episodekim
퇴사 전 일주일간의 이야기


퇴사 D-7,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

오늘은 주간회의가 있어 다른 날 보다 조금 서둘러 출근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저 멀리 항상 같은 자리에 밤샘 근무하는 동료들이 잠시 책상에 엎드려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들의 휴식이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내 자리로 와 노트북에 시동을 건다.


10분이 넘게 걸리는 부팅시간 동안 나의 다이어트, 피부탄력, 노폐물 배출을 담당하고 있는 정수기에게 시원한 물을 가득 요청하고 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정수기 머리 위에 자리잡은 달달구리 봉지커피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다이어트를 위해 한 동안 먹지 않으리라는 결심은 커피반 물반의 황금비율로 녹아 있는 종이컵을 잡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오늘 하루도 달콤함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해 준 봉지커피에게 감사를 표하며, 찰랑찰랑 물이 가득담긴 머그컵을 마우스 옆으로 가까이 당겨 오늘안에 꼭! 다 먹겠다는 다짐을 하며 뱃살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 덜어 본다.



퇴사 전 마지막 주간회의

주간회의 30분 전 회의실 예약이 잘 되어 있는지? 예약시스템을 확인하고 노트북을 주섬주섬 챙겨 회의실에 자리를 잡았다. 시간이 되자 모든 참석자가 도착했고 회의는 시작됐다. 지난주 있었던 일과 이번 주 할 일에 대해 논의하고 이슈와 의사결정사항 공유가 완료되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공지사항을 전달할 시간이다. 나는 이 시간에 나의 퇴사에 대한 이야기를 동료들에게 전달하려고 오랫동안 준비했다. 업무 인수인계를 위해 극소수에게만 나의 퇴사일정을 알렸고 여기 참석한 대부분의 동료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크게 숨을 한번 쉬고 조심스럽게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공지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
.
.
제가 이번 주까지 출근하고 다음 주에 퇴사합니다."
남은 일주일 동안 업무에 관한 면담이 필요하시면 요청 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사실 이 시간을 위해 나는 며칠 동안 많은 인사말을 준비했었다. 그런데 저 세 문장을 내뱉고 나니, 지금까지 준비했던 많은 말들이 나를 합리화하기 위한 말! 멋있게 보이기 위해 하는 말! 그리고 조언이랍시고 잔소리로 들릴 수 있는 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뇌리에 스쳐 더 이상 준비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내 앞에 앉은 몇 명의 동료들이 눈빛과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게 무슨 일이지? 우리 팀은 어떻게 되는거지?
회사상황이 나쁘지도 않은데 왜? 퇴사하지?
팀장은 원래 잘릴 때까지 다니는 거 아니었나?
드디어 자기 길을 찾아가는구나!


걱정, 멘붕, 원망, 응원의 눈빛과 표정을 보니 한 번도 후회를 해 본 적이 없었던 퇴사에 대한 결심이 미안한 감정으로 조금 흔들렸다. 많은 질문을 각오하고 있었으나 의외로 동료들이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아 주간회의는 다른 날보다 가볍게 끝났지만 내 마음은 그 어떤 날 보다 무거웠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불이 꺼진 사무실에 들어와 불편한 마음으로 의자에 기대어 있는데, 띠리링~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회사생활 2년 차인 한 사원의 메일이었다. 메일을 열어보니 "새로운 도전을 응원합니다"라고 짧게 쓰여 있었다.


나는 밑도 끝도 없는 근자감 하나로 퇴사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무의식 중에는 두려운 마음이 있었는지? 짧게 작성된 그 문장을 오후 내내 되뇌며 나의 퇴사 결정을 스스로 응원했다. 그리고 마음 한켠에는 지금 나와 똑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 사원에게 "있을 때 좀 더 잘해 줄 걸"이라는 의미 없는 후회도 해본다.



퇴사 D-3, 나만의 환송회

퇴사가 회사에 소문이 나면서 많은 분들이 축하, 응원, 아쉬움을 전하기 위해 환송회 날짜를 문의해 왔다. 너무도 감사한 일이지만 굳이 거창한 환송회라는 이름으로 함께한 사람들과 마침표를 찍을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 별도의 환송회는 하지 않았다. 대신 남은 3일동안 짧은 시간이라도 최대한 많은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만의 Self 환송회를 시작했다. 이때 동료들과 나눈 대화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기억에 남을 정도로 솔직하고 가식 없는 최고의 시간이었다.



퇴사 D-day, 퇴근하듯 퇴사하겠습니다.

나는 예전부터 소소한 소망이 하나 있었다. 내가 만약 회사를 졸업하는 날이 온다면 평소와 다름없이 아무렇지 않게 퇴근하듯 퇴사하고 다음날 옆자리 동료가 내 책상을 보면서 미소를 한번 지어 주는 것이다. 비록 퇴사 후에는 옆자리 동료의 미소는 확인할 순 없지만 나는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지금 이 시각 18시 00분 퇴근하듯 퇴사하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럼 이만, 퇴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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