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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엘라 Apr 04. 2020

프랑스 미술대학에서는 뭘 배울까?

주옥 같았던 학교 과제 이야기

  나는 현재 프랑스 쌩때티엔이라는 지역의 미술대학교에서 2학년으로 재학 중이다. 부족한 언어 실력과 유학 생활 중에 엄마, 아빠가 돌아가신 큰 마음의 대미지를 안고도 나는 기여코 여기 생활을 버티는 중이다.  
이곳 École supérieure d'Art et Design de Saint-Étienne 학교는 예술작업의 테크닉을 배운다는 느낌보다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함께 하는 예술단체를 다니는 느낌이다. 그 과정에서 만약에 포토샵이나, 유화, 아크릴 물감의 사용 등이 필요하다면 그 테크닉을 배우는 것은 내가 혼자 해결해야 한다. 물론 교수님에게 물어봐서 배울 수 있기야 하지만 교수님들은 내가 진행하는 작업에서 막힌 부분을 해결하는 정도의 도움을 주신다. (그래서 막막할 때가 정말 많았지만...) 무튼! 1, 2학년을 거치면서 정말 많은 과제들을 했었는데,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이 작업은 1학년 조각 수업 과제로 만든 모형이다. 수업 주제는 "나에게 의미 있는 공간 재현하기"였다.

 주제를 받자마자 나에게 의미 있는 공간? 정말 이런저런 장소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옛날에 이사 가기 전에 살던 집? 엄마의 방? 아니면 프랑스를 처음 왔을 때 살았던 기숙사?'등등 생각보다 소중한 공간이 많았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생각하다가 무심코 열어본 사진 폴터 속에 강남역에서 찍은 3100번 버스 사진이 몇 장이 눈에 띄었다. 나는 프랑스 유학을 결심하고 입학시험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던 시절 강남역을 거의 매일같이 오갔다. 그때 교통수단으로 3100번 버스를 주로 타고 다녔다. 그래서 거의 1년 가까운 시간을 이 버스를 타며 왕복 3시간의 거리를 왕복하며 유학 준비를 했다.


 아침 일찍 나가서 아르바이트하고 오후에는 학원 가서 저녁까지 작업하고 진짜 열정을 불태웠다. 사람이 많은 시간 때에 버스 안에서 한 시간 내내 서서 가느라 다리가 퉁퉁 붓고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줄줄 흘렀었다. 그래서 3100번 버스 사진을 보자마자 마음이 뭉클하고 오래된 친구 같은 엄청난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그 버스는 내가 의정부와 강남역을 수 없이 왕복하면서 나의 꿈이 자라난 의미 있는 공간이었다.

 유학 준비하는 게 힘들고  장거리로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에 지칠 때마다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나는 프랑스행 비행기를 타고 있다'라는 그런 망상을 하곤 했다. 그래서 절반은 3100번 버스의 모양을 하고 절반은 비행기를 연상시키는 그런 모양을 만들었다.  


(아빠 장례식 참석으로 한국에 갔을 때 3100번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만감이 교차했었다. 저 버스를 타고 다니던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그때 참 힘들었지만 희망찼는데..)


  그리고 이 작업물은 1학년 디자인 수업 과제로 했던 작업이다. 이 과제를 받는 수업 날에는 준비물이 몇 가지 있었다. 학생 1명당 5개씩 종류별로 유연하고 잘 휘고 탄력성 있는 재료들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도도한 교수님의 구두 소리가 들리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교실 한가운데 재료들을 모아 두고 팀을 짜서 3가지의 재료를 골라서 가구를 만드는 것이 주제였다. 나는 '레오'라는 스무 살 남자아이와 작업을 하기로 했다. 우리는 고무호스와 샤워 타월과 어디서 누가 가져왔는지 알 수 없는 꼬불꼬불한 플라스틱 모형, 이렇게 3가지를 선택했다. 고무호스를 조각조각 잘라서 의자로 만들기로 결정하고,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더 길고 많은 양의 고무호스를 구매하는 것과 계속 반복되는 작업을 버티는 인내심이었다. 한 이틀 정도가 소요되었고 같은 팀원인 레오가 조금 뺀질거려서 좀 속도가 안 붙었지만 그래도 결국 이렇게 완성했다.


  이건 최근에 만든 과제인데, 2학년 개강하고 조각 수업 첫날에 받은 과제였다. 주제는 "종이박스로 물건 재현하기"이다. 우선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 중에 만들고 싶은 것 하나를 정해야 했다. 방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나의 빨간색 케리어가 눈에 띄었다. 맨날 빨래방에 갈 때 끌고 다니는 없으면 안 되는 나의 필수 아이템!! 만들기 어려울 것 같아서 좀 주저했지만 일단 해보고 싶으면 몸이 먼저 움직이는 내 특성상, 일단 시작을 해버렸다.  먼저, 길거리를 어슬렁거리며 깨끗하고 면적이 넓은 종이박스를 탐색하고 주워왔다. 그리고 줄자로 이리저리 길이를 재고 칼로 조각조각 자르고 글루건으로 최대한 깔끔하게 붙였다. 근데 문제는 바퀴였다. 진짜 생각보다 손이 엄청 많이 가서 만드느라 정말 오래 걸렸다. 실제로 굴러갈 수 있는 바퀴를 만들다 보니 손이 정말 많이 갔다. 그래서 거의 일주일 내내 학교 끝나고 집 와서 종이박스만 자르고 붙이기를 반복했다. (그때 여러 번 현타가 왔었지..)




 

  마지막으로 이 작업도 역시 2학년 1학기 조각 수업시간에 만든 과제이다. 주제는 '학교 내에 건축물과 자신이 선택한 재료를 접목시키는 것'이었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조각 수업에 참 열심히 참여했음을 깨닫는다. 이 수업시간 동안 만들기에 대한 한풀이를 다 한 것 같다. 정말 별걸 다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건축물로 자전거 주차 거치대를 선택했다. 그 위에 파도를 은유하는 것 같은 나무합판 소재의 원들을 이어 붙였다. 사람들이 자전거로 도착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유동성의 입체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포토샵으로 원 하나를 만드는 데에는 진짜 한 30초? 그 이상 걸릴까? 컴퓨터상으로 원을 만드는 것은 정말 간단한 일이지만, 저 사진으로 보이는 13개의 원을 현실세계에서 만들기까지 시행착오가 정말 많았다. 학교 목공 아뜰리에 시설물 이용시간이 짧은 이유도 있었지만, 거의 3주 정도가 소요되었다. 조금씩 만들고 수정하고 만들고 수정하기를 반복했던 아주 피곤했던 작업이다. 이 과제를 할 때 날씨는 또 엄청 추워서 손을 호호 불며 오들오들 떨었던 기억이 난다. 다 완성하고 정말 뿌듯했지만 이제 이런 추상적인 원을 만드는 작업은 컴퓨터로만 하고 싶다.  고생 많이 한 작업은 기억에 더 오래 남는 것 같다. 저 사진 볼 때마다 그때 추웠던 것이 어제 일 처럼 생각난다.


  이 정도로 소개를 마치고 싶다. 별의별 나쁜 일들을 다 겪고도 포기 안 하고 이 학교를 졸업하고 싶은 이유는 내가 마음먹고 시작한 것을 끝까지 잘 마치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온라인수업으로 바뀌었고 알바도 쉬게되어 집에만 있으니 온 세상이 멈춰버린 것 같지만 2개월 후면 기말평가 시험이다. 유급이나 탈락하지 않고 마지막 학년인 3학년으로 무사히 진급하길 기원한다. 이글은 그동안 수고한 나를 위로하고 싶어서 쓰는 글이다. 나 정말 고생많았다. 더 의미있게 잘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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