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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엘라 May 21. 2021

예술가인가 그냥 우울증 환자인가?

[작업노트] 졸전에 대한 고민과 번뇌 기록

지금 프랑스의 작은 마을 [생떼 티엔]에 위치한 미술대학에서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다.

이제야 아주 조금 나를 알기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졸업을 하는 시기가 다가와서 심히 당황스러운 요즘이다. 내 마음 상태와는 상관없이 일단 졸업을 하려면 졸업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이번 글은 내가 작년 겨울부터 계속 고민했던 졸업 작업에 대한 기록이다.


시험 당일날 사진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2018년 1학년 때는 학교, 알바 생활 적응하고 그저 과제하기에 바빴고 내 개인작업에 집중하기는커녕, 2학년 때는 아빠가 아프시고 돌아가신 것의 여파로 정신 못 차리고 넋이 나간채로 한국에 다녀왔다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그냥 무기력하고 애매한 시간을 보냈다. 내 삶의 무게 자체가 너무 무겁고 버겁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내 개인작업에 대한 욕심? 의욕이 거이 0에 가까웠다.


그냥 죽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다. 다 포기하고 방 안에 틀어박혀 있고 싶은 그런 기분에 휩싸일 때 많았다. 야속하게도 내가 자포자기 상태로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나는 나의 삶을 살아야 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졸업시험을 통과하고 싶으면 '3학년(이곳의 졸업학년)'이라는 주어진 시간 안에 내 관심사를 알아내야 했고 내가 도대체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 찾아야 했다.


우울 드로잉 중에 3장

고민과 고민의 연속    

 2020년, 작년 겨울의 나는 어떤 작업을 해야 할까 정말 시작할 엄두가 안 났다. 애초에 나는 창작자가 될 자격도 없고 능력도 없고 재능도 없고 돈도 없는 그냥 그냥 감정의 해소가 필요한 우울한 사람일 뿐이라는 자기 비하가 절정을 찍을 때였다. '그냥 운이 좋아서 어떻게 흘러 흘러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기만 하지 난 무능력한 인간이야!'라는 식의 부정적인 사고가 내 안에 가득했다.


그나마 간간이 내가 했던 작업은 나의 우울한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었다. 예를 들어 노골적으로 울고 있는 여자를 그린다거나, 울적한 느낌을 드러내는 드로잉 작업을 조금 했었다. 이런 나에게 교수님들은 항상 너의 슬픔과 거리를 두고 좀 더 다양한 주제를 찾아보라는 조언(요구에 가까운 조언)을 들었다.


다른 흥미 있는 주제를 찾는 것, 나 자신과 거리를 두는 것... 생각만 해도 어려웠다. 10대 시절부터 나는 음악, 영화, 글쓰기 같은 창작활동에 두루두루 관심이 있는 편이었다. 그 이유는 본질적으로 예술을 통해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잠시나마 마음을 쉴 수 있는 도피처의 역할로서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나에게 매력적인 감정 쓰레기통이었다. 그런데 그것 말고 내가 뭘 할 수 있지? 계속 마음이 무거웠다.

예술가인가 그냥 우울증 환자



나의 레퍼런스작가 중 한명 [알렉산더 카더]의 작업

새로운 작업 시작하기   

마치 일기장에 내가 힘든 것을 토로하는 식의 화풀이 같은 작업 말고 내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다른 작업이 뭘까 고민하던 와중에, 제일 먼저 한 것은 레퍼런스 작가들을 찾는 것이었다. 이 학교의 교수들은 아래의 3가지 단계를 거쳐 하나의 작업을 완성시키길 원한다.


1. 레퍼런스 작가 찾기:  레퍼런스 작가는 일종의 멘토 역할을 한다. 나의 관심과 성향을 파악할 수 있고 작업방향을 잡는데 도움이 된다.
2. 아이디어의 성장과정을 만들기 : 발전의 단계가 가시적으로 보이길 원한다. 작업의 흐름이 보이고 그것이 이해될 만한 것인지 계속 찾는 과정이다.
3. 결과물을 의심하기 : 본인이 완성이라고 생각했을지라도 왜? 이 작업을 하는가? 작업 주제, 재료, 작업방식 모든 것에 물음을 가지고 스스로 비판적으로 자신의 작업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 3단계를 끊임없이 이어나가는 것이다. 나무 조각의 울퉁불퉁한 겉면을 사포로 잘 다듬는 것처럼 계속 생각의 생각의 마찰을 주어야 한다. 정답은 없다. 계속 고민을 하는 것이다 마음에 들 때까지...



뭐라도 해보기의 연속 

우선 내가 좋다고 느낀 작가들의 작품들을 최대한 스크랩하고 나서 그 작가들의 공통적인 부분을 모아봤다. 그 결과, 변형(Déformation)된 형태라는 공통점을 찾았고 마침내 그것을 주제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새로운 작업의 시작은 인물 사진을 왜곡시키는 간단한 장난?으로 시작되었다. 형태를 뭉개뜨렸을때 둥글둥글한 형태가 주는 이상한 안정감, 비현실적인 인체의 동작, 뒤죽박죽 섞인듯한 괴상한 느낌이 좋았다. 이런 시도를 한 30장? 정도 테스트해봤다.


그리고 그 사진들의 형태를 색연필로 이런저런 스케치를 해보았다.위의 사진과 같은 스케치를 한 20장? 정도 다양하게 그려보았다.




   마침 이 작업을 하는 시기가, 프랑스 2차 봉쇄 (Confinement) 시기와 겹쳤다. 밖에 나갈 수 없고 집안에서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나가야 했다. 어떤 방식으로 이어가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이때다 싶어서 평소에 포토샵 기술?을 발전시키고 싶었는데,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스케치 그림들 모티브로 디지털 작업으로 이어갔다. 괴물 같은 이미지를 만글어보기도하고, 아주 단순하게 조각조각으로 나누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집에 있는 종이박스를 오리고 색칠해서 디지털 작업의 형태를 현실세계에서 재현해보는 시도도 해봤다.


발표 당일날 사진

    위에 이런저런 다양한 시도들을 교수님께 보여드렸을 때 내 작업에 도움될만한 작가들을 여러 명 추천을 받았다. 예를 들어 Thomas Houseago, Aaron curry,  Jessica Stockholder, Jean Dubuffet 등의 작가이다. 확실히 다른 작가의 작업을 참고하니까 생각이 막혔을 때 새로운 방향을 찾는데 도움이 되었다.


바닦에 놓고 테스트한 사진

  그렇게 작업의 방향성을 어느 정도 잡고 나서 좀 더 새로운 방식으로 이어나가고 싶었다. 학교에 목공 아뜰리에에서 나무판자를 잘 다듬고 느낌 가는 대로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형태 작업을 계속 이어갔다.



 색을 사용하는 것에 고민이 많았는데, 파란색은 나의 감정과 반대에 위치한 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죽음으로 인한 극심한 애도의 감정의 진정을 의미하기도 하고 이성적으로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파란색 계열의 색감을 사용해봤다.




 수많은 실패작을 만들어가면서 좋지 않은 부분을 점차 좋은 작품을 창조하게 된다. 피드백이라고 부르는지 과정은 자신의 비전을 알아내는 가장 빠른 길이며 이를 통해 작품의 개성이 살리게 된다. 그렇듯 자신의 개성이 살아 숨 쉬는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밖에 없다
----출처: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데이비드 베일즈 테드 올랜드 지음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은 상상했던 작품의 다른 모든 가능성들이 사라져 버리는 상실의 순간이기도 하다.


기말평가를 준비하면서 나는 너무 두려웠다.


   작업을 할 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조건일 때가 거의 없었고, 늘 부족하다고 느끼고, 가족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 미래에 대한 걱정 그리고 해야 할게 넘쳐나서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모를 그 불확실한 기분에 휩싸일 때가 많았다. 작업은 무엇에 대하여 말해야 할지, 재료는 잘 선택한 것인지, 어디까지 더하고 어디까지 덜 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이거 다음에 그다음은? 그다음의 그다음은?? 끝없는 질문의 연속이랄까…


   수많은 가능성을 포기하고 하나를 선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매번 고민스럽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어렵다고 느껴졌다.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나머지를 포기하는 것이고, 1과 2 사이에 수많은  1-1,1-2,1-3의 기회비용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결정장애를 앓고 끙끙 괴로워하는 시기를 보내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 작업은 나의 수많은 실패작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니까 작업할 때 한결 부담감이 덜했다.


 지금의 나는 엄청 소진된 상태다. 지난 3년간 교수들 입맛에 맞는 작업을 하기 위해 아등바등거린 것 같다. 올해 여름에는 평가받는 것이 두려워 덜덜 떨면서 하는 작업이 아니라 내가 즐기는 가벼운 작업 쉬운? 작업을 시작하고 싶다. '고작 내가 한 게 이것뿐이가? 인생 망한 것 같다'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가 한 이 모든 것들이 쓰레기처럼 느껴지기 전에 빨리 이 글을 업로드해야겠다.

 

↓↓나의 졸전 준비 브이로그:)↓↓

https://youtu.be/0ncqAy2_F9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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