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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엘라 Dec 29. 2019

프랑스의 속 터지는 행정처리

눈물 나는 프랑스 유학생활

   

프랑스에는 복지 국가답게 Caf라는 기관에서 관할하는 정부 보조금 제도가 있다. 그래서 나는 외국인이지만 주택보조금을 신청할 권리가 있다. 근데 이 권리를 누리려면 서류를 준비하고 아주 천천히 흘러가는 이 속도를 견뎌야 한다. 만약 내가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한국의 빠르고 신속한 행정처리의 맛을 못 본 프랑스인이라면 그려려니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미 한국에서 23여 년을 살았다. 그리고 미술 유학을 결심하고 어느 날 이 나라에 처음 온 나 같은 한국인에게는 속 터지지 않을 수 없는 속도다. 정부 보조금을 신청한 지 어느덧 2년 가까이 시간이 흘러버렸다. 근데 내 통장에 들어온 돈은 아직 0원이다. 나는 우여곡절의 문제들 속에서 유학기간 동안 8번 이상 이사를 했고, 프랑스의 리옹이라는 도시에서 생떼 티엔이라는 지역으로 사는 곳도 바뀌었다. 솔직히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돈걱정을 피부에 와 닿게 하지 않는 그런 온실 속 화초 같은 삶을 살았다. 그래서 주택보조금 신청을 하긴 했으나 왜 입금이 안 되는 것인지 그 문제를 알아내는 것을 차일피 일로 미루고 어느새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효 정말 부끄러운 얘기다.)

  그러나 생떼 티 앤에 정착하고 모든 것을 내가 책임지고 살아야 하는 상황과 빈곤의 맛을 알게 된 이후에 정신 차리고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 Caf기관을 적어도 6번은 넘게 방문했다. 서류 신청하고 왜 이렇게 늦는 것인가 물어봤다. 기관에 갈 때마다 항상 지금 처리 중이니 기다려라라는 답변을 들었다.  또 학교 생활도 하다 보니 정말 1년이 눈 깜빡한 것처럼 후루룩 지나 버렸다. 진짜 어느 시점부터는 너무 바빠서 정부 보조금을 받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그렇게 1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년이 됐을 때 이건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매번 돈 없고 1유로가 아쉽고 아쉬운 생활고도 지겨웠다. 어서 빨리 한 푼이라도 나라에서 주는 돈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최종적으로 내가 정부 보조금을 못 받은 이유는  2017년도 체류증 복사본이 제대로 복사가 안됐다는 이유였다. (그밖에도 몇 가지 더 서류들에 문제가 있었지만..) 그럼 내가 6번 이상  Caf기관을 갈 때마다 그 직원들은 왜 그 원인을 밝혀주지 않았던 것일까... 아휴 속 터져. 지금 2019년이 끝나가고 있는데 그때 체류증을 내가 가지고 있을 리가… 그래서 수업도 빠지고 정말 귀찮았지만 다시 한번 도청에 가서 하루 반나절을 기다리고 기다려서 내가 머물렀던 모든 기간을 증명하는 한 장의 서류를 받았다. 그리고 필요했던 서류를 모두 제출했다. 프랑스에서 Caf기관을 도대체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는지 모르겠다…. 진작 문제를 알아내고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했어야 했는데... 이건 진짜 내가 100번 잘못했고 정말 속으로 후회도 많이 했고 반성의 반성을 거듭했다.


 그렇게 서류 문제가 끝이 났다고 생각하고 또 2주간 기다리고 서류가 문제없이 진행된 건지 혹시나 해서 Caf기관에 갔더니 이번에는 지난 3개월치 버거킹 알바 월급 내역서를 가지고 오라고 했고 또 갔더니  5월에 버거킹 알바 월급 내역서가 필요하다며 이것이 없어서 우린 진행할 수가 없다는 얘길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다음번엔 2016년도 체류증 복사본을 가져오라고 하고 정말 갈 때마다 가져오라는 서류가 더 생기고 생겼다. 정말 깊이 짜증이 올라왔다.  아이고 이렇게 또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인가.... 필요한 서류들을 제발 한 번에 다 좀 얘기해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오늘은 토요일이 됐다. 또 이틀의 인내심을 가지고 월요일 아침 일찍 나는 Caf기관에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에 또 서류를 챙겨갈 것이다. 과연 2019년이 끝나기 전에 이 나라에서 주는 돈을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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