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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대문 김사장 Aug 28. 2022

본업과 잡기雜技의 상관관계.

공직에서 퇴직하신 분을 만났다. 항상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씀 하신다. 운동하고, 동문회 활동, 공부,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인다. 자녀들은 모두 분가했고, 당신에게는 연금이 나온다. 일할 필요 없는, 자유인이다. 


재미있게 살려고 노력하시는 데, 보는 입장에서는 무언가 빠져있는 것 같다. 바로 일이다. 은퇴후의 일은 콜라겐이나 비타민 같은 보충제 같아서 섭취를 안하면 결핍되고, 방치하면 건강을 잃는다. 주변 자영업자중에 평생 일하시다가 폐업하신 분을 본다. 장사할 때는 지긋지긋하다가, 3개월 지나면 일을 못해 병이 난다. 여기저기 잠복해 있던 몸과 마음의 상처가 엄습해 온다.  


누구나 은퇴해서, 설렁설렁 여행 다니며, 한량처럼 살고 싶어한다. 막상 그 나이가 되면, 가볼 곳은 다 가 보고, 볼 것도 다 보고, 흥미가 없다. 노는 것도 지겹다. 일을 하면서, 잡기雜技를 즐기면 청량감이 있지만, 일이 없으면 무한한 시간도 산해진미도 재미없다. 


우리 분식집에서 김밥 싸는 처녀분이 계셨다. 돈이 모이면, 여기저기 세계를 여행한다. 안데스 산맥과 아프리카, 북유럽 구석구석 안가본 곳이 없다. 근데 여행이 끝나면 돌아와서 (우리 가게가 아니더라도)김밥을 싼다.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돌아와서 할 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적당하게 운동 되고, 적당하게 사람 만나며,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활동은 바로 일이다.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보람과 노동소득은 기쁨의 원천이다.


사회생활하면 공부하고 싶어지는 것처럼, 은퇴하면 일이 하고 싶어지는 것은 아이러니. 


한국에서 자영업은 레드오션이라고 한다. 블루오션을 찾을 수 있는 혁신성이 없다면, 레드오션안에서 화이트오션을 찾아본다. 바다안에는 잘 찾아보면, 숨 쉴 공간이 있기 마련이다. 인건비와 인테리어 비용이 많이 올라서, 이제 아무나 덤비지 못한다. 셀프로 인테리어하고, 사람 적게 쓰고, 자기가 일하면, 승산이 있다. (참고도서: 나는, 빚내지 않고 3천만 원으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역 14번 출구에 '크레페 할아버지' 계신데, 이 분이 바로 그런 분이다.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항상 줄이 서있다. 스님도, 수녀님도 크레페를 먹으러 온다. 저 정도 손님이 몰리면, 나같은면 사람을 쓸텐데, 혼자 한다. 그리고 하루에 4시간만 일한다. 좁고, 느리다. 그 진정성이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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