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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대문 김사장 Aug 09. 2022

반半도 못 왔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 인생 3모작. 

만춘, 오스야스지로


편의점 형님, 와이프가 암癌으로 큰 수술을 받았다. 이 형님의 본업은 보험이다. 요즘 보험업이 어렵다 보니 대다수가 부업을 한다. 건물 청소를 하기도 하고, 공사장일을 하기도 하고, 이 형님처럼 편의점 알바를 하기도 한다. 워낙 성실해서 사람 걱정 안하고 편하게 운영했다. 아내가 아프니 별 수가 없고, 직접 간호하고 입퇴원 수속일을 해야 하기에 출근을 못했다. 한 달이 다 되어가도 전화가 없고, 문자도 안오자 나도 불안해 졌다. 뭔가 잘 못되었구나. 


드디어 전화가 왔다. 암 두 덩이를 제거하는 큰 수술이었다. 큰 것은 14.6cm 이다. 저런 큰 암을 가지고 살아도 별 통증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구나. 장장 6시간 걸친 대수술이었는데 사람을 살려내는 신술神術에 또 한번 놀랐다. 10년전이면 어땠을까? 의학의 발전은 눈부셔서, 정말 120살까지 살것 같다. 


예전에 담배끊는 모임에 갔다. 담배를 끊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를 격려하고 장기 금연자를 추앙하는 모임이다. 이 모임 덕분에 나는 20년째 금연중이다. 그 중에 의사선생님도 계셨다. 환자에게는 술 담배 끊으라고 하면서 자신은 끊지 못하는 것에 힘들었다고 했다. 본인도 당뇨다.  


'앞으로 5명중에 3명은 암에 걸릴 것입니다. 암을 무서워할 것이 아니라, 이뻐해야 해요.' 


당시 저 말에 끔찍했다. 암은 죽을 병 아닌가. 세월이 흘러서 암수술 예후가 좋아졌고, 췌장암이나 폐암도 생존율이 높아지는 추세다. 아마도 10년 후면 암을 정복하지 않을까 싶다. 조기발견하면 암은 더 이상 죽을 병이 아니다. 정기적으로 관리하면 암도 정말 친구가 될 수 있다. (참고로 의사 선생님은 담배 끊고 마라톤 열심히 하셔서, 건강을 회복했다)


생각해 보니, 인생 최고의 행운은 성공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건강이다. 마음은 이팔 청춘인데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 만큼 슬픈 일은 없다. 몸이 건강하면 희망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다. 몸을 움직이면 슬픔도 분노도 잠재울 수 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제니가 떠난 뒤 검프는 상실감에 달리기 시작한다. 가장 큰 슬픔은 슬픔 자체가 아니라 그 슬픔을 다른 일로 희석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느낄 수 밖에 없는 처지일 것이다. 아퍼서 누워있으면 그렇다.  120세에 지금을 돌아보면 어떤 느낌일까? 120광년 떨어진 은하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느낌일까? 


반세기 전만 해도 평균 수명은 50이었다. 오즈 야스지로小津安次郞 의 '만춘'은 1949년에 만들어진 영화다.  홀아버지를 걱정하며 시집가지 않는 딸이 나온다. 아버지는 이제 나도 슬슬 인생을 마무리 할때가 되었다며 어서 시집가라고 딸에게 말한다. 근데 놀랍게도 극중 아버지의 나이가 56세다. 56세가 인생을 마무리할 때라니. 소설가 김훈이 '칼의 노래'로 펜을 휘둘렀을 때가 54세였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최고 정점이 반세기 전에는 삶을 마무리 해야할 나이였다. 


평균 수명 70세가 되자, 인생 후반기라는 말이 나왔고 이제는 누구나  두번째 인생을 계획하거나 혹은 길어진 노년을 걱정한다. 오래 사니까 기회도 생기고, 걱정도 생긴다. 그것이 인생이니까. 


평균 수명 100세는 어떻게 될까. 대다수가 120세까지는 산다는 이야기고, 운이 좋거나 재수 없으면 140세도 가능할거다. 먼저 드는 생각은 지난 30년간 코스피와 나스닥 주가의 흐름이다. 재테크 전문가들은 투자의 마지노선이 40대 중반이라고 했다. 이들도 평균 수명 70세를 염두하고 하는 이야기다. 주식이나 부동산이나 모든 투자의 기본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새싹이 나무가 되고, 아이가 성인이 되고, 모든 성장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다. 


이런 재원을 가지고 인생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다. 전반기에 의사로 살고, 중반기에 미술가로 살고, 말년에 소설가로 살 수 있는 무지막지한 시간의 양이 펼쳐졌다. 사람이 철 드는 나이가 언제일까? 40대 중반 아닐까? 왜냐면 회사를 나올 때가 되면 앞부분으로 되돌아가서 반추해 본다. 결국 내 생각대로 내 맘대로 사는 게 남는 장사구나 느낀다. 다행인 것은 앞으로도 내 멋대로 살 수 있는 날이 꽤 많이 남아있다.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지만, 120까지 살수도 있다. 끝에서 지금을 보면, 어떻게 살아야할 지가 나온다. 아무튼 반도 못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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