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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대문 김사장 Sep 06. 2022

일 잘하는, 장대리의 비밀.

나는 사회생활을 여행사에서 했다. 그때 장대리님이 생각난다. 그는 여자친구도 없고, 특별한 취미도 없었다. 퇴근해도 약속이 없어서 사무실에 남아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취미가 PNR(personal numner record)을 외우는 것이라고 했다. 지폐번호 외우는 것처럼 무의미한 일이다. 쓸데 없는 것을 외울 정도로 모든 업무를 장악하고 있었다. 


한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상사가 물어보면 그는 바로 대답이 나왔다. ‘잠깐만요, 확인하고 전화 드릴께요’ 같은 인터벌이 없다. 복잡다단한 항공 상황과 현지 호텔 컨디션이 그의 두뇌와 실시간으로 연동되었다. 탐욕 없고, 일 잘하는 장대리님을 팀원들은 모두 사랑했다. 


가끔 그와 복도끝 비상구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했다. 장대리님은 어렸을 때 특별히 공부를 잘 한 것은 아니었는데, 노트 필기 하나 만큼은 기가 막히게 했다. 선생님이 칭찬해주셨고, 친구들은 참고서 보다 그의 노트를 더욱 보고 싶어했다. 그의 노트를 보면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때문이다. 장대리님의 아버지는 다른 것은 몰라도 노트 검사를 철저히 하셨는데, 글씨가 개판이거니와 성의가 없으면, 다시 숙제를 시켜서 그를 훈련했다. 노트가 보기 좋고, 훌륭하면 잘했다며 칭찬해주셨다고 한다. 


군대시절 탄약 창고에서 근무했는데, 갑작스럽게 상부에서 높은 분이 내려왔다. 당직자, 하사에게 중대가 관리하는 탄약의 개수를 물었다. 이때 바로 대답한 것이 장대리님이다. 물어본 사람도 당황한 반전이었다. 국군 창설이래로 탄약 갯수를 실시간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전후무후 할 것이다. 선임하사는 장대리님을 생명의 은인처럼 대해주었다. 


장대리님의 메모 습관은 더 강화되어서, 그때 이후로 주변의 모든 것을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이런 습관은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돋보이게 만들어 주었다. 다가 올 일에 미리 대처하기에 업무하중이 걸리는 일이 없고, 여유로우면서도 일은 다해냈다.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회사에 일찍 출근할 때면 나는 그의 책상을 물끄러미 보았다. 책상은 항상 깔끔했다. B5 크기의 노트가 책상에 놓여져 있다. 남의 노트를 함부로 볼수 없었지만, 그는 기꺼이 보여주었다. 


고객의 특성과 잊지말아야 할 메모와 거래처 전화번호와 명함, 부모님 생신과 팀MT일정까지 한 노트에 가득 있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일일이 메모를 해야 한다. 동시 다발적으로 들어오는 업무를 관리하기 때문에, 작은 일이라도 펑크나면 참사가 된다. 그는 모든 것을 꿰고 있었다. 노트를 틈날 때마다 보니까, 누락없이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참 단순한 비밀이다. 


난 장대리에게 감명 받았고, 그를 사회생활 시작할 때 만난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10년 정도 지나서 우연히 종각에서 그를 만났다. 회사 잘 다니고 잘 지낸다고 한다. 내가 알던 사람들은 이미 회사를 많이 떠났다. 그는 그 답게 '갈 때가 없어서'라며 겸손하게 답했다. 


그의 메모 습관이 궁금했다. 메모광은 스마트폰 시대에 어떻게 메모할까? 습관이 되어서 여전히 손으로 노트에 메모한다고 한다. 스마트폰을 쓰니까, 알림 기능에 안심하다가 빵꾸난 적도 있고, 어디에 무엇을 메모했는 지 조차 까먹는 일이 많기에, 메모 도구로는 오히려 부적했다고 한다. 그냥 유튜브나 인터넷 뉴스 보는 것이 고작이라고. 


노트를 쓰면 손으로 쓰는 자유로움과 넘겨 볼 수 있는 물성이 있다. 그 물성이 중요한데, 하루라도 펼쳐보지 않으면 약간의 죄책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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