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대문 김사장 Sep 15. 2022

저 공간을 나도 갖고 싶다.

지금 사무실에서 5년째 기거중이다. 지인의 추천으로 '라쿠라쿠 침대'를 구매했고, 지금까지 잘 사용중이다. 집이 그렇게 먼 것은 아니지만, 집에 들어가면 마음이 풀어지고, 나같은 자영업자는 눈치 볼 사람이 없기에 한없이 늘어진다.  자영업의 필요조건중 하나는 가게 근처에 집을 만들고 옆에서 살기다. 더 신경 쓰게 되고, 더 일을 많이 하게 된다. 내가 만약 사회초년생이라면 월세가 부담이 되도 회사 바로 옆에 방을 얻을 것이다. 


지금 사무실은 탁월한 입지를 가졌지만, 지워진지 100년 가깝게 되었다. 겨울에 너무 춥다. 이런 혹한은 경험해 본적이 없다. 뼈를 쑤셔대는 기분 안좋은 냉기다. 너무 더럽게 추워서 혹시 이 건물은 방사능 폐기물로 만든 것이 아닐까? 의심한 적도 있다. 다른 곳으로 이사 가려고 했지만, 동대문은 상업지구라 마땅한 곳이 없다. 겨울마다 월동준비를 해야하는데, 올해는 탄소 세라믹 난로를 구매했다. 


난로가 도착한 날 설레이는 마음으로 오픈하고 전원을 넣었다. 순식간에 훈훈한 온기가 사무실을 채웠다. 너무 기뻤다. 난로를 옆에 두고 차를 마시며 소파에서 책을 보는 모습은 나의 소박한 겨울철 로망이다.  3일째 되는 날 난로를 보며 불멍을 때리는데, 탄소섬유 필라멘트가 끊어져 버렸다. 어떻게 3일 만에 고장이 날까. 


인터파크에서 구매했지만, AK몰과 에스이랜드와 난로 공장이 복잡하게 얼켜있었다. 이렇게 하청에 하청이라면 저 난로의 실제 원가는얼마일까. 아내는 내가 업체와 전화 통화하는 모습을 보며, 당신은 이런 일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막상 아내가 전화를 해보니 나만큼 열받아 했다. 4업체에게 전화 돌림빵 당하며 간신히 환불을 받아냈다. 이런 일에 휘말리면 각 업체의 업무분장과 담당자 이름을 모두 알게 된다. 


난 겨울나기에 지쳤고, 여기서 10년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막막했다. 아버지에게 이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고, 다음날 사무실에 방문하셨다. 냉기가 바닥에서 올라온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업자를 소개해 주셨다. 나도 바닥에 전기매트를 까는 것을 고민했지만, 워낙 잡동사니가 많아서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전문가는 살짝 옆으로 치워놓고 작업하면 된다고 가볍게 이야기했다. 


이틀만에 바닥 공사가 끝났다. 


공사가 완료되고 잡동사니를 정리해야 하는데, 대다수가 책이다. 얼마전 영화 평론가 이동진의 '파이아키아'라는 책을 보았다. 2만여권의 책을 소장한 그는 마침내 건축가의 힘을 빌려서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타치바나 타카시, 움베르트 에코, 이규태 모두 광활한 '지知의 저장고'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말년에 은퇴하면 경기권에 땅을 매입해서 주택을 짓고, 내가 선망하는 작가들처럼 지知의 저장고를 만들고 싶었다. 실제로 집을 짓고 사시는 분을 보니, 아니다 싶다. 실제로는 집을 가꾸고 관리하느라 다른 일은 꿈도 못 꾼다.


난 서울이 좋고, 별로 은퇴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지금처럼 가게 돌면서 주변 일(청소, 써빙, 주방 보조, 편의점 알바, 세금 계산, 가끔 배달)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사무실이 각별하다. 지금 발밑에서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온기가 올라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할 일 없음'의 효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