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책상위에 가위와 풀 스티커를 보며, 당신이 중학생이냐고 퉁을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트 꾸미기는 정말 하고 싶다.
혼자 만드는 잡지, 1인 잡지를 만들고 싶어서 세미나도 들었다. '싱클레어'라고 하는 독립잡지의 발행인이었고, 이름의 '피터'라는 분이다. 연배가 나랑 비슷했지만, 생각이 남다르고 깊은 사람이었다. 지금은 경주에서 독립서점을 운영중이다. 그때 같이 배웠던 사람중에 '이로와 모모'라는 부부도 있었는데, 이들도 '유어마인드'라고 하는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라고 하는 국제적인 행사도 만들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까 관심이 많고, 난 이쪽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1인 잡지'는 컴퓨터도 써야하고 인쇄소도 가야하고 번거로워서 실패했다. 내 성격상 절차가 많고 복잡한 것은 질색이다. 그냥 관심사를 노트에 되는대로 기록하면 그것이 잡지가 되지 않을까? 어차피 누군가에게 보여줄 사람도 없다. 혼자 만들고 혼자 보는 1인 잡지다.
요즘은 미술사를 공부하는 중이라 노트에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둔다. 몰스킨 노트 한권씩 매월 채운다. 월말이 되면 미루어두었던 부분을 채우느라 조금 바빠진다. 처음에는 책의 내용만 정리했는데, 전시회도 가고 미술 강연도 가고, 활동이 많아졌다. 생각을 노트에 펼쳐 놓으면 그 생각이 가지를 뻗고 구체적인 계획인 선다. 이게 아날로그 노트의 장점이다.
물론 스마트폰에도 기록을 해둔다. 하지만, 노트에는 한 번만 적으면 되는데, 스마트폰에는 여러 군데에 기록해 두어야 실행한다.
혼자 만들고 혼자 보기는 하지만,이 잡지를 정기적으로 구독해 주는 사람이 딱 한명 있다. 바로 미술 학원 선생님이다. 선생님과 1년 가깝게 공부 중인데, 일주일에 한번 만난다. 일주일간 공부한 노트 내용을 보여주면 칭찬해 주는 구조다. 학교 다닐때 이런식으로 피드백을 받았으면 공부를 참 열심히 했을 것 같다.
심심하면 카페에 앉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들추어 본다. 내 손으로 한땀 한땀 수놓은 정성이 들어갔기에 자주 보게 된다.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앞으로를 가늠한다. 인생이 별건가. 기록하고, 성찰하고, 살아간다. 현자를 찾지 않아도, 내 안에 해답이 있고, 고작 노트만으로 가능하다.
디지털 기록이 범람하지만, 손으로 기록하는 아날로그 기록이 더 매력적이다. 내 소중한 인생, 시간, 생각을 공산품 같은 서버에 기록하기에는 아깝고 아쉽다. 게다가 펜과 노트를 구매하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