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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대문 김사장 Aug 20. 2022

최소한의 설비투자, 나의 공간.

일 때문에 작업실이 아니라, 작업실 때문에 일.

'1인 기업'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사무실도 필요 없고, 직원도 필요 없고,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된다. 요즘은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된다. 유튜버가 되고 싶다면, 스마트폰으로 찍고, 편집하고 업로드까지 되니까 말이다. 스마트폰으로 소설 쓰는 사람도 있다. 카페에 자리잡지 않아도 된다. 버스 기다리면서, 에스칼레이터 올라가는 그 짬 짬 이가 모두 작업시간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설을 엄지 소설이라고 한다. 엄지로 스마트폰 자판을 누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자본이 필요 없고, 아이디어나 능력만 있으면 한계비용 제로의 시대가 되는 것이다.


혹자는 은퇴자에게 재취업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고, 할 것이 정 없으면 1인 기업을 권한다. 책을 쓰고(요즘은 유튜브), 강연을 하고, 컨설팅하는 모델이다. 절대 설비투자를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설비투자라고 하면, 편의점이나 음식점 같은 자영업이다.


자영업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나도 권하고 싶지 않다. 특히나 요즘은 자재값이 많이 올라서, 매장 하나 만드는데 자본이 꽤 들어간다. 그렇게 비싸게 만들어도 그냥 흔한 편의점이나 음식점일 뿐이다.


그래서 나도 지식기반 사업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몸뚱이가 자본이고, 자기에게 투자하는 것이 가장 남는 장사다.


근데, 잘 안된다. 그게 문제다. 집을 사무실 삼아서 책상에 앉아보지만, 의도대로 무언가가 안 나와 준다. 카페에 가기도 하지만, 딴짓한다. 탄력이 안 붙고, 그렇게 시간이 간다.


작가의 작업 스타일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원조 1인 기업가 아닌가. 전문 작가들은 작업실이 있다. 글 쓰는 작가, 그림 그리는 작가, 모두 작업실이 있다. 작업실이 있어야, 자기 직업관이 뚜렷해진다. 그 공간에 있으면 그 공간의 의미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 공간의 의미란 결국 월세다. 월세를 생각하면 긴장하게 되고, 사람이 생산적으로 바뀐다.


작업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어간다. 이 문제를 작가들은 창조적인 방법으로  해결한다. 첫 번째는 비용이 적은 경기권이나 강원도권으로 이사가 기다. 특히나 그림 그리는 작가는 천장이 높고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예로부터 가평이나 포천에는 예술가들이 군집을 이루어서 작업을 해왔다.


이런 걸 보면, 작가의 정체성이란 결국 그가 만든 작품보다 그가 작업을 하는 공간인 것 같다. 작품은 부수적인 결과일 뿐이고.


두 번째는 워크숍을 만들기다. 내가 좋아하는 아방(@aaaaabang)이라고 하는 작가가 있다. 그녀는 미술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그림을 그리고 학생을 가르친다. 자신의 작업실에서 수험생을 받는다. 나도 그녀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감사하게도 나를 '오빠'라고 불러주셨는데, 그녀의 수업 스타일은 참 독특하다. 첫 시간에는 그림은 리듬이라며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게 했다. 30대 직장여성분들이 많았는데, 시키니까 하긴 하지만 그림 그리러 왔다가 춤추니까 난감해했다. 난 다행히 평소 방송댄스로 리듬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무난히 리듬을 탈 수 있었다.


그리고서 사진을 나누어 준다. '그리세요' 그러면 학생들은 열심히 그리는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그림을 그리라고 시키고, 본인은 어저께 있었던 앞집 아저씨와의 일화를 이야기했다. 아무튼 이런 수업으로 그녀는 월세를 충당했고, 그 외에 저술을 하고, 전시를 하고, CF를 찍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것이 월세의 힘 아닐까.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은 저글링을 돌리는 것과 같은 것인데, 코어의 힘이 필요하고, 그 힘은 월세에 대한 압박에서 나온다.


나의 충무로 미술 선생님을 보면, 그녀의 고민의 반 이상은 작품 세계를 만드는것 만큼이나, 어떻게 좋은 작업 공간을 싸게 임대할 수 있을까이다. 그녀가 주로 가는 사이트는 직방이라든지, 작업실 공유 사이트다. 지금 지하 작업실도 지만, 그래도 창이 있고 햇볕이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녀의 소망이다.


글 쓰는 작가는 어떨까? 내 동생은 문예 창작학과를 나왔는데, 교수님은 글 쓰는 작가는 컴퓨터만 놓을 공간만 있으면 된다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글 쓰는 작가도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글 쓰는 작가에게는 넓은 테이블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테이블에 여러 자료를 놓아야 한다. 글 쓰는 작가에게 컴퓨터만 놓을 공간만 있으면 된다고 하는 것은, 요리사에게 냄비 하나 가지고 요리를 만들어내라는 것과 같다.


지知의 거장,


타치바나 타카시는 유명한 저널리스트이고, 얼마 전 돌아가셨다. 그는 가공할만한 저력으로 글을 썼는데, 그 동력은 엄청난 양의 책이다. A4 반짜리 영화 소개 글을 쓸 때도 가볍게 책 10권을 참조한다. 넘쳐나는 책을 감당할 수 없어서, 도쿄에 고양이 빌딩을 만들었다. 지하에서 옥상까지 책이 그득 실린 개인 도서관이다. 여기도 모자라서 근처에 따로 공간을 만들어서 책을 놓았다.


또 하나 그가 골몰한 것은 테이블이다. 육중하고 무게감 있는 테이블을 찾고자 일본 전역을 돌아다녔다. 난 그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갔는데, 나이가 드니까 테이블이 흔들거리면 짜증이 나고, 기반이 없어 보이고, 기초가 약해 보이고, 이런 허접한 책상에서 뭐가 나올까 싶다.


사업하는 데 무자본이 좋은 것인가?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본전심리다.  지식기반 사업, 1인 기업, 소호사업, 이런 작은 사업들이 더 많아지고 있는데, 적어도 사무실과 책상 정도는 설비 투자해야 긴장감도 생기고, 절박함에 아이디어도 샘솟지 않을까.


혹자는 스터디 카페나, 공유 오피스를 애용한다. 쓰는 시간만큼 비용을 지불하기에,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약하다. 본전심리의 동력을 이용하려면, 제대로 보증금 내고, 따박따박 월세 내는 모험이 필요하다. 내 동생은 작년에 한꺼번에 두 권의 소설을 내는 생산성을 보였는데, 아마도 본인의 작업실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충무로 미술 선생님과는 달리, 밀폐된 공간을 선호한다. 이런 취향과 그녀의 소설 세계가 상당 일치하는 것을 보면, 놀랍다.)


나는 가게 근처에 사무실을 얻어서 벌써 6년째 기거 중이다. 요즘은 직원이 없어서 땜빵을 하느라 바쁜데, 사무실이 있으니 24시간 즉각 대응할 수 있다. 그리고 한가할 때는 이렇게 글도 쓰고, 넷플릭스도 보고, 닌텐도도 하고, 힘겨운 자영업이지만, 이 공간이 있기에 버틴다. 아저씨들은 아지트가 필요하다. 몇몇 4050 아저씨들은 갹출해서 아지트를 만든다. 거기서 맥주도 마시고, 자기들끼리 스트리트 파이터도 하고, 보드 게임도 하고, 기타 치며 노래 부른다. 정말이다.


옆에 사무실이 하나 더 있는데, 다단계 회사가 와서 시끄러워서 매우 힘들었다. 한동안 비어있었는데, 얼마 전에 누군가가 또 들어온다고 해서 내가 쓰겠다고 얼른 계약했다. 안 그래도 넘쳐나는 책들 때문에 공간이 필요하던 터다.


계약하면서 건물주 할머니를 처음 만났고, 자식 자랑 들어주고 5만 원 깎았다.  요가원 다니면서 요가 바닥이 너무 좋다고 원장님께 말했더니, 회원분 중에 바닥 하시는 분이라며 소개해주셨다.


내 사무실을 보면, 나는 편의점과 분식집과 가락국수 집과 (작게) 임대업을 하는데, 왜 책은 점점 늘어나는가 의아하다. 돈 벌고 싶은 이유는 이 공간을 확장하고 싶다. 이쯤 되면 생각할 것이다. 일 때문에 작업실이 아니라, 작업실 때문에 일.


공간을 둘러보며, 난 이런 놈이구나. 이게 내 운명이며,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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