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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대문 김사장 Oct 18. 2022

젊은 남자.

1994년 가을, 딱 이맘 때다. 나는 대학로에 있었다. 영화 촬영이 있었고, 이응경과 이정재가 나타났다. 이정재가 내 앞에 오더니 뻥튀기를 먹기 시작했다. 내 뒷편에 야외 공연장이 있었는데, 풍물패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오늘 그 영화, '젊은 남자'를 대학로에서 보았다.  30년이 지난 대학로는 '임대문의'가 군데 군데 보이고, 유동인구는 많으나 매출은 오르지 않는 이상한 상권이 되었다. CGV 극장은 매표소가 5층인데 상영관은 지하다. 대기업 극장도 손님이 없어서 임대료를 안간힘으로 낸다. 


상영관에는 나같은 모습의 관객 한명이 있었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세련된 메탈 기타음이 배경음으로 나왔지만, 매우 촌스러웠다. 


지금은 중견 배우가 된, 이정재를 비롯 신은경, 강성진, 권오중, 전미선의 신인 시절을 볼 수 있다. 모두 연기가 교과서를 읽는 수준이라 아마도 당사자 배우들은 저 영화를 5분 이상 보지 못하리라. 김보연 배우가 가장 자연스러운 연기를 했다. 


어설픈 연기지만 오늘날 세계적인 연기가 된 씨앗이 보였다. 특히나 이정재가 와인병을 잡는 모습이다. 영화 '하녀'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이정재가 와인으로 입을 헹구어가며 먹는 모습이다. 와인을 저렇게 한국스럽게, 고급스럽게, 자연스럽게 마실 수 있을까. 이정재가 마시면 9900원짜리 편의점 와인도 가격을 가늠할 수 없는 와인이 된다. 


영화 시작 1시간 지나니까,  대학로 장면이 나왔다. 30년 전 내 앞에서 먹었던 그 뻥튀기를 여전히 영화에서도 먹고 있다. 5분도 안되는 짧은 씬이다. 아마도 동호대교를 건너서 강남으로 이어지는 것 같았고, 나도 관람석에서 일어났다. 


'젊은 남자'에서 배창호 감독의 성과는 이정재를 영화판에 올려놓은 것이고, 영화의 서사 보다는 주변 소품들을 충실히 기록했다는 점이다. 


삐삐, 모토로라 폰, 락카페, 포켓볼, 오렌지족, 컵에 설탕 묻혀서 1만원 받던 아이리쉬 커피, 여대생들의 굵은 화장, 더듬이 앞머리, 그리고 내 앞날 만큼이나 찬란했던 대학로 하늘....30년 전 현실이 오히려 영화같다. 




*매일 읽습니다. 냠냠.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74582?ucode=L-UgSmWEX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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