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니 Sep 28. 2020

2개의 크라운, 남아있는 기억

나도 몰랐던 기억의 순간들

아직도 치과는 내게 어려운 곳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왼쪽 위의 어금니에 처음으로 크라운을 씌웠다.

마취를 하지 않고 신경치료를 했던 날들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본을 뜨던 날, 코끼리처럼 덩치 큰 의사 선생님의 두꺼비 같이 커다란 손이 입 속을 들락날락하며

잇몸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세게 나를 잡아당겨지는 게 느껴지기도 했다.

크라운을 씌우던 날엔 그 반대의 힘이 더 세게 느껴졌다.

마치 이가 잇몸 속으로 박힐 것 같은 두려움이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리원칙적이었던 의사 선생님 덕분에

나의 첫 번째 크라운은 20년을 넘게 나와 동고동락했다.

20여 년을 함께하다 보니, 그라운에 구멍이 나서 몇 해 전 지금의 크라운으로 바꿔 씌웠다.



그리고 참 신기하기도 새로운 크라운을 씌우던 것에 대해 남아있는 기억은 참 단편적이다.

치료하는 대부분의 시간에 국소 마취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마취를 하는 순간의 기억은 선명하지만 그 나머지 부분은 그저 사진처럼 떠오른다.

감정은 별로 섞이지 않은 채..



부분 마취를 해서 그 부분에 대한 감각이 둔해지면,

몸에 남는 기억도 정말 그렇게 희미해지는 걸까?

정말 그랬다면 좋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건 아니라는 걸 내 몸이 계속 증명해주고 있다.







기억에 담고 싶은 않은 두 번째 크라운을 남기게 된 불편한 이야기,

왼쪽 위 가장 안쪽의 어금니의 고생사가 담겨있는 순간들..

우후죽순 생겨나던 치과병원의 체인점을 찾아갔던 날.

2억이 훌쩍 넘어가는 스포츠카들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던 주차장.

그때 나는 왜 한번 더 생각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그때 이후로 병원에 대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인식이 달라졌는지도 모른다.

충치로 인한 통증도 있었고, 지방 근무를 하던 시절이라

주말에 서울에 올라와 병원을 찾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그 병원을 선택했고 통증을 없애기 위한 충치치료가 급선무였다.


치료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고 치아의 안쪽이 썩어있다고 했었다.

그래? 나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나는 의사를 믿었다.

치료를 마치고 마취가 깨어지기 전까지는 정말 안심했었다.

드디어 통증이 사라졌구나!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졌다고 믿었던 통증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뭐지? 치료가 잘못된 거야? 아니면 이 이가 아니라 다른 이인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주말을 보내고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 근무를 하는 중에도

일주일간 통증은 계속되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병원에 전화를 했다.

내 사정을 말하니, 급히 예약을 잡아주며 다시 오라고 한다.

아.. 치과의 그 기계음을 또 들어야 한다니..

지금도 생각만으로 싫은 그 소리를..



아픈 사람은 항상 약자이다.

결국, 나는 다시 그 의사 앞에 치과 의자에 앉았다.

하.............................. 자기가 잘못 봤단다.

아직도 기억나는 남@@ 의사..

내가 마루타가 된 건가? 아니면, 멀쩡한 이를 갈아낸 건가?

그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이에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내가 불같이 화를 내고 따지면,

더 멀쩡한 이에 해를 가할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들었다.

결국 나는 다시 같은 과정을 거쳐 이를 치료하고 미백 서비스를 받았다.


내가 원한 것은 이게 아닌데...


아무튼 이런 식으로 왼쪽 위 어금니 부분에 많은 스토리가 담기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이야기들로 인해서 나는

왼쪽 턱, 왼쪽 측두근, 왼쪽 눈 바깥 부분까지

얼음처럼 차갑고 멍한 느낌들이 남아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었다.

치과 치료들로 인한 잔상이라고 지금까지도 여기고 살아왔다.



알렉산더 테크닉 교사 과정 중에서도 이 부분은 나의 큰 이슈 중에 하나였으며,

마스터 선생님들이 오셨을 때마다 이 부분에 대한 불편을 말씀드리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어쩌면 그 얼음이 조금씩 녹아내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드디어 그 얼음이 얼기 시작했던 바로 그 순간이 떠올랐다.


십여 년 전 토플 공부를 하겠다고 이십여 년 만에 P를 만났을 때,

내가 왜 그렇게 뜨뜻미지근하고 데면데면하게 대했는지를

알 것도 같았다.


나도 모르게 내게 남아 있는 기억은

내가 생각해 왔던 것과 달랐나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뜨거운 것이 좋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