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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 Oct 30. 2020

뜨거운 것이 좋아!




기준에 미달하는 미숙아는 아니었지만,

옆집에 나보다 딱 5개월 먼저 태어난 친구가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 친구의 발달과정을 따라가기 위해

엄청 애썼는지도 모른다.


목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던 나는

앉기를 먼저 배워야 했고, 언니 같은 친구와 늘 함께였다.

내 몸의 1.5배나 큰 친구 옆에 앉아 있는 사진들이

그걸 증명해주고 있다.




아직 나는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나만의 발달의 단계를 주변의 영향으로

아니면 내 안의 욕심으로 그렇게

조금씩 건너뛰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목을 가누지 못한 채로 앉았다는 사실들은

사진과 엄마의 이야기 속에서 나온 것들이어서

아직까진 내가 제대로 마주한 사실은 없었다.


남들보다 대추 뼈가 작다는 것이 그걸 증명해주는 걸까?

그렇다고 목이 아프거나 하는 일은 없는데 말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내게 아주 크게 다가온 것은

무의식 속에 있었던 일이었다.


엄마는 젖이 부족했다.

마침 나보다 5개월이 빠른 친구가 옆에 살았고

친구 엄마의 젖을 동냥하여 내가 연명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때는 분유가 사치품이던 시절이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고

유독 내가 뜨거운 국물을 먹으면 위안이 된다는 것이

그저 남들보다 내가 국물을 좋아하는구나 정도로 이해가 되었다.

술안주는 역시 국물이기도 했고..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마주했던 그 순간은 정말 아직도 생생하다.

배는 고프고 그렇다고 먹기는 싫은데 먹어야만 하는

그런 내가 저항을 하는데도 알아봐 주지 않고

내 입안으로 물컹한 것을 계속 밀어 넣고 있는 상황이 내 앞에 왔다.

내 입안으로 그것을 밀어 넣는 사람도 내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동물 같기도 한데 눈코 입이 없는

그런 괴상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밀어내고 저항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꿈을 꾼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나는 친구 엄마의 젖을 내가 원하는 순간에 먹을 수 없었다는 걸.

내가 배고프나 부르거니와 상관없이

아줌마의 상황에 따라, 내 의사는 무시된 채

그렇게 밀어 넣어졌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그동안 목에 가지고 있었던 긴장들

특히 식도와 기도 부분의 긴장들로 나타나는 불편들을

나도 어쩌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그 긴장은 혀까지 이어지도 하고

그래서 나는 그 긴장을 놓아보고자

계속 뜨거운 것을 들이부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런 긴장들로 인해 나타난 목의 불편을 해소해보고자

편도결석 제거 수술을 마취하지 않고 받았던 일들은

아직도 내 몸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치과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그 시간,

의자를 부여잡고 고문을 받는 것 같았던 그 순간들..


사실 내가 마주한 순간이 정말 진실일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러고 나니

그런 내가 조금 이해가 되었다.




무엇으로 나를 채우려고 했는지..

내가 무엇을 갈망했었는지..

엄마가 나를 애틋해하는 마음도 알 것 같고..

그럼에도 잘 표현 못하시는 그 마음이 이젠 좀 이해가 된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첫 아이를 낳고

그 아이에게 젖을 물릴 수 없었던 여자의 마음을..


"항상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만으로 다행이다" 하시는 내 엄마,

"사랑해요!"




앞으로 또 어느 순간과 마주하게 될지

이 생에 그것을 모두 할 수 있을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리고 아직 내가 풀어낼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어느 것이 먼저 일어날지도

그 순서조차 예측할 수 없지만..


이렇게 조금씩 풀어가다 보면

어느 틈엔 좀 빛이 들어오겠지!


따스한 해살 가득한 가을,

그저 오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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