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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 Mar 18. 2021

둔감해진 미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것들

낚지 볶음을 먹고 나도 모르게 화가 났던 순간들

오랜만에 수영을 하러 가기로 한 날이다.

매년 7월은 여름을 보내기 위한 준비를 한다.

퇴근 후 간단히 요기를 하고 올림픽공원 수영장으로 GoGo!


하지만,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M과 나의 실력차로 인해서 교습반을 듣기 보다는 자유수영이

우리에게 적절하다는 판단으로 선착순 자유수영의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 메뉴의 매운낚지볶음.

밥을 먹겠다는 생각보다는 빨리 먹고 수영을 하겠다는 마음이 급했던 나와는 다르게

M은 항상 현재에 충실하다.

식사 속도도 느리지만,

늦어지면 그 다음 순서는 포기해도 괜찮다는 주의이기 때문에

초반에는 많은 충돌이 있었다.

그래도 이젠 어느정도 접점이 만들어져 서로 양보하여,

내가 먼저 들어가고 M은 나중에 들어오는 하는 식의 룰이 생겼다.


콘서트를 가거나 영화를 보러 갈 때에도 같이 출발하기 보다는

약속 강박이 있는 내가 항상 먼저 가는 편이고

M은 자기흐름에 맞춰서 오는 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불만없고 그럭저럭 잘 맞춰졌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시간은 같아도 서로의 흐름이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안그랬으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여 필요이상으로 화를 내는 순간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닌 일들이 그 순간에는 그것만이 정답인냥

각자의 입장만 내세웠던 모지리를 다시 만나고 싶지도 않았고

각자 주어진 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럭저럭 그렇게 잘 지내왔는데,

그날은 낚지볶음을 먹는 내내, 내 마음이 초조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수영장에 못 가게 생겼다고

혼자서 속으로 판단했고 그 때부터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 때문에 화가 났다고 믿기 시작했고

그 믿음은 식사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더 강력해졌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늦지 않았고

수영장에 안정적인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만큼

빨리 식당에서 나왔지만 그날따라 도로 사정이 도와주지 않았다.


결국, 나는 화가 폭발했고 둘이 합의한 시간에 대한 개념에 대해

하나하나 다시 꺼내어 요목조목 따지기 시작했다.


이럴 때, M은 현자가 된 마냥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속으로는 '얘가 미쳤나?'하고는 말이다.

그러면 나는 더 화가 난다.

결국, 그날은 그렇게 차안에서 나 혼자만 떠들다 수영장엔 가지 못했다.



나도 어느 정도 포기가 되고

수영장에 가는 것이 무슨 대수냐하는 생각이 들어 나 스스로도 좀 고요해진 것 같았던 순간,

M이 "너 왜 그러는거야?" 한마디 한다.

'아니, 내가 왜 그런다니? 내가 늦어서 화가 난거잖아. 그걸 질문이라고 하나?'

그때까지도 내 속에서는 시간에 꽉 묶인 내 생각이 거기서 나올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막 다시 또 화가 올라오려고 했는데,

그 때 또 다른 생각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수영장 까짓 것 오늘 안가면 어때, 내일도 있는데..

오늘 안간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고

이러다가 못간 날이 한 두번도 아닌데,

유독 오늘 내가 진짜 감정 조절이 안되네..'

이 말은 소리를 내어 M에게 전달하진 못했다.




그리고나서 며칠동안 생각해봤다.

왜 그날 내가 그렇게 미친듯이 화를 냈을까?

정말 내가 분노조절장애라도 있는 것일까?

화를 냈다기 보다는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다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른다.

그 날 한 일이라곤 매운낚지를 먹은 게 다인데 말이다.

다른 날도 저녁 식사를 늦게까지 먹다가 못가게 된 날들이 더러 있었는데,

그 때는 이렇게까지 정신을 잃고 화를 내진 않았었으니 말이다.



그 일이 있은 후,

한참이 지나서야 그날 내가 왜 그렇게 미친듯이 화를 냈었는지 알게되었다.

어릴 적에는 매운 것을 아주 잘 먹는 편이었다.

엄마의 식성이 그대로 음식에 반영되어 맵고 칼칼한 음식이 내 취향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점점 나만의 입맛을 찾아가게 되니

나는 매운 음식보다는 심심하고 약간은 느끼한 취향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매운 음식은 멀리하게 되었고 매운 걸 잘 못 먹는 지경이 되었다.


어느 날 매운 치킨을 먹는 데, 속에서 불이 나는 기분이 드는 걸 감지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 있는 것.. 지금 나한테 들어오는 자극은

딱 하나 매운 치킨을 먹고 있는 거였는데

속에서 느끼지는 기분은 불같이 뜨거운 기운이 마치 화가 나는 것처럼 느끼지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고 이렇게 연결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매운 걸 먹고 그 매운 맛이 내 속을 자극하는 것을

나는 화가 난다고 여기고 겉으로 표출한 것인가?

감각에 지배당해서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놀아난 것인가?



그때서야 그 낚지볶음 먹었던 날의 일이 떠올랐다.


그 날이 다른 날과 달랐던 것은 딱 하나, 저녁 메뉴였다.

시간의 흐름이나 늦을까 조마조마한 것들은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유독 그날 화를 낸 것은 그 동안의 일들이 쌓여 있다가 폭발한 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또 그렇게 담아두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게는 모든 게 설명되지도 않았다.

그제서야 수수께끼가 풀린 것이다.


매운 것이 안에서 자극하는 것을 화가 난다고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그날 다른 것을 먹었다면,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자각이 생기면서

점점 더 매운 맛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 한 두개는 괜찮은데 어느 정도 넘어가면 속에 자극이 생기고

그게 화가 날 것 같으면 스스로를 타이르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화가 나는게 아니라. 매운 것을 먹으서 그래."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반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매운 것을 먹기 전에

만약 그런 반응이 올라오더라도

스스로 감지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 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명절이 되고 집에 가서 음식을 먹는데

엄마 음식들이 이렇게 매운 음식인 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 맛에는 참 쉽게 길들여진다.

하루는 힘들더니 이틀이 되니 맛깔나게 맛있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젠 더이상 매운 걸 먹고도 바보처럼 화가 나지 않으니

어쩌면 그날 그 순간의 낚지볶음은 내겐 정말 큰 선생님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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