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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 Mar 24. 2021

엉덩이가 담고 있는 기억들

"다 책상 위로 올라가!"

체육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셨다.


"담임이 또 부탁했나 봐."

"담임이.. 아휴~ 정말..."

우리는 소리 낮춰 궁시러거리며 책상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렇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우리 담임은 연약한 척하는 미술 선생님이었고,

남자인 듯 보이쉬한 체육 선생님과 단짝이었다.

담임은 본인이 해결하지 못할 것 같은 일들은

항상 체육한테 부탁을 했고 체육은 행정적인 일들을 담임한테 부탁했다.


체육은 담임 맡은 반도 없었고,

담임이 조퇴를 해도 들어오고

암튼 우리 반의 부담임 정도 되었다.


그런 체육이 교실로 들어오면

그 순간 공포는 시작된다.


특히나 오늘은 별일이 있어서 투입된 것이기에 입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보통은 "반장 나와!"가 먼저였는데

오늘의 시작은 단체기합이다.


"가방 들을래? 의자 들을래?"

정해놨으면서 질문을 왜 하나? 결국 의자를 들고 책상 위로 올라앉았다.


체육은 몽둥이를 들고 교단에 자리를 잡고 섰다.

"오늘 내가 왜 왔는지 알지?"

"다들 눈 감아."

"자수하면 용서해 준다. 아니면, 오늘 전체 다 집에 못 갈 줄 알아!"


오전에 우리 반에서 누군가의 지갑이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라 우리 반 어딘가에 있겠지.

그게 소유자의 가방 속이 아닌 게 문제가 된 거고.

그렇다, 누군가 가져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가 누구인지도 알았다.


시간은 어찌나 더딘지 5분이 지나니 팔이 떨어질 것 같고

다리의 감각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체육의 눈을 피해 어떻게든 버티고 자리를 잠깐 비우면

의자를 머리 위에 올려놓기를 여러 차례..


"안 되겠다. 의자 내려."

"이제 한 명씩 앞으로 나온다."


구타가 시작된 것이다.

사실, 벌서는 것보다 그게 쉬웠다.



그런데도 선생님들은 그 친구를 지켜주고 싶었나 보다.

사실 이 생각도 이제 든 것이다.

그에게 희망을 걸고 우리에게 단체기합을 주면

그가 죄책감을 느끼고 나올 줄 알았나 보다.


하지만,

우리 엉덩이에 피멍이 들 때까지도 그는 나오지 않았고,



인성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수업 시간을 뺏았긴 것은 물론,

구타가 정당화될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한 시간이랄까?


이제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한 일이다.

누군 줄도 알고, 우리 전체의 잘못도 아닌데..

왜 그때는 그냥 묵묵히 있었을까?

매 맞는 것 자체가 무섭기도 했고,

그 선생님의 강압적인 위압에 주눅 들기도 했던 것 같다.


우리는 그때 무엇을 해야만 했을까?

지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집에 가서 말을 하면, 학교가 뒤집어질 일일 테고..

하지만, 그때는 엉덩이나 종아리에 멍이 들어 집에 돌아가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우리 부모님들도 그렇게 교육을 받을셨을테고

우리 선생님들도 그런 교육만 받아서


그리고 어쩌면 그들에게 그 방법이 제일 익숙하고 쉬웠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권위에 눌려

발언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노출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이제는 알 것도 같다.

마음으로 분노가 들끓고 있고 불만이 쌓여가지만

참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상황에 놓인다는 것이

내게 지금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도 알 것만 같다.

내가 나서면, 더 맞지 않을까?라는 두려움..

공포스러운 분위기로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순간들.


그런 생존 본능은 정말 깊은 곳에 무의식적으로라도

내 안에 남아 있어서 지금도 그런 권위가 나를 누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렇게 흘러가는 상황을 당연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는 거다.


그 불안한 마음들이 되살아나고

두려움에 말을 안 하고 참는 순간들이 쌓여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며 자신에게 체면을 걸게 되는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상황이 익숙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 나는 그런 상황이 오면,

글로 쓰기 시작했다.

머리가 멍해져서 말로 할 수 없고

내 말의 논리가 흐릿해질 정도로 두려워 말 자체를 잃어버릴 지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내가 그 순간에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써 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 일이 생각보단 쉽진 않았다.

그 순간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는 인지가 생기지 않았다면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한 번 겪어보니,

그다음은 좀 용기가 났다.

그리고 불안감이 아직도 있지만 그래도 말을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솔솔 피어나고 있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거겠지?


앞으로도 그 새싹들이 잘 자라날 수 있게 보살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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