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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 Apr 28. 2021

위안을 주던 놀이터

위험을 위험이라고 여기지 않았던 시간


우리 집은 가게와 가정집이 함께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어디도 안전하게 아이들이 다닐만한 공간은 없었다.

이 사실도 최근에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가게에는 위험하고 큼직한 물건들이 산재해 있었으며 서울에서 물건차가 들어오는 날에는 방으로 들어가는 길마저도 사라져 물건을타 넘고 들어가기도 했었다. 어린 시절 나에겐 그저 숨기 좋은 미로 같은 곳이었다.


뒷마당은 아빠의 작업 공간이었고, 그래서 더 위험한 기구들이 많았지만,

우물이 2개 있었다. 하나는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는데 가끔 이용되곤 했고,

하나는 오염이 되어 생명을 다했던 것 같다.


화장실은 마당의 가장 끝에 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작은 뒷마당이 어린 시절엔 정말 넓게 느껴졌다.

화장실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었고, 거기서 엄마를 불러도 잘 안 들릴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화장실에서 큰 사건이 한번 나고 우리는 얼마 안 가 이사를 했다.


늘 밖에서만 놀았던 나는

이제 생각해보니 집 안에서 안정감을 찾을 수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집에서 제일 안전한 곳은 방이고, TV 앞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다행히 집 바로 옆에 교회가 있었다.

나는 일요일을 제외하곤 매일 그 교회 마당에 가서 놀았다.

거긴 복잡하지도 않고 그네도 있었고 마음대로 흙에 그림도 그릴 수 있었다.


놀이터에 있는 놀이기구라곤, 미끄럼틀, 그네와 시소가 전부인  교회 마당이 나에겐 가장 안전한 놀이터였다. 언제든지 엄마가   있는 곳이었으니까.

모래바닥에서 뛰어다니다 넘어지고, 그네 타다 뛰어내리다 부딪히고 그래도 그저 노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 차(포니 픽업 자주색) 짐칸에 친구들과 나란히 올라앉아있던 날이다.

아마  쯤부터  혼자서도  짐칸에 뒤로 올라앉을  있을 만큼 키가 컸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전까지는 가게 삼촌들이 나를 동생들을  자리에 앉혀주셨었는데  날은  혼자서도 올라앉을  있을 만큼  키가 자라 있었다.



아빠  짐칸에서 뛰어내렸던 그날 내가 눈으로 확인할  없는 허벅지 뒤쪽 살이 찢어졌다.

그런데 나는 아픈 척하지 않고, 몇 번 절뚝거리다 이내 똑바로 걸었다.

다쳤다는 게 창피하게 느껴졌었나 보다.


다친 게 왜 창피하게 느껴졌을까?


내 왼 손목에는 길게 칼로 그은듯한 상처가 있다.

동생들과 문고리를 잡고 놀다가 못에 패인 상처이다.

벌써 40 가까이 되었는데,  크기만 반으로 줄어들었을   고스란히 남아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상처가 가진 기억은

신나게 문고리를 잡고 실라이를 하다 다쳤다는 것과

그래도 즐거웠던 것 같은 기억이다..

그리고 나는 아프지 않다고 했던 것 같다..

괜찮다고 했던 것 같다..

무엇이 괜찮았을까? 누구의 걱정을 내가 짊어지려 했을까?



무릎이 깨지고, 손이 다쳐도

어릴 때는 다 그렇게 다치고 사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리고 아프다는 느낌이 어떤 건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통증보다는 창피함이 더 컸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어린 시절을 떠 올리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에 새삼 놀라고 있다.

나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여겼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과 마주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저 있는 그대로 꺼내 보이고 싶은 이유는 있다.

그래야 지금의 내가 조금 더 이해가 될 테니 말이다.


침대에 누우면 느껴지는 이유 없는 긴장들

오히려 앉아있을 때 더 편안한 어깨에 대해서

그동안 다른 곳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었다.


호흡을 살펴보기를 몇 년, 그러다 마주한 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나타나는 긴장들을

그저 흘려보내기 연습만 할 뿐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린 시절의 내가 보였다.

그때 나는 어땠나? 정말 안전했었나?

괜찮았었나? 어린애였던 '나'는 그러지 못했구나.

그런 순간들과 조금씩 마주하게 된 것 같다.


아프다는 걸 숨길 필요가 없는 거구나.

참을 필요가 없는 거구나.

내가 아플 때, 아프다고 보듬어주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고 닫아버렸었는지..

그런 습관들로 어쩌면 나는  살아왔는지도 모르지만 몸이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은 귀를 닫지 말라고

매일 밤 외치고 있다.



얼마 전부터 매일 밤 나에게 속삭여준다.

오늘은 괜찮아.

이제는 안전해.


그동안 마주할 수 없었는 것들,

왜곡된 기억들 속에 묻혀있던 것들아,

수면 위로 올라올 용기를 내주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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