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났는데, 엄마가 없다.
이렇게 일찍 어디 나가실 리가 없는데, 안방엔 아빠와 막냇동생만 있었다.
그날도 제일 먼저 일어나는 사람은
막내와 나였다.
일찍 일어나는 이유는 아침에 하는 TV 만화를 보기 위해서였고
그 시간에는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하지만 그날따라 만화영화가 끝나고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슈퍼나 시장이나 목욕탕에 가신 것이 아니었다.
뭔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아빠는 안 일어나신다.
하지만, 아빠를 깨우거나 불안을 내색하진 않았다.
아빠가 그때까진 좀 무서운 존재였다. 그랬다는 것도 이제야 보인다.
지금은 많은 변화를 만들어 호칭 없이도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의견을 주고받을 정도의 "대화"가 성립되는 친구 같은 관계가 되었지만,
그때는 그저 무섭고 커다란 사람이었다.
다시 방에 돌아와서 내 책상을 보니, 내가 꺼내놓지 않았던 학습지가 나와있었다.
수련장에 엄마가 편지를 써 놓은 게 보였다.
"편지"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었던 이유는
"이니에게"라는 말이 있어서였다.
우리 엄마는 그때,
나에게 기대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말 수가 적었고 조용했던 나는
수더분한 성격의 맏이였다.
그런 나에게 엄마가 편지를 써 놓고 가출을 해 버린 것이다.
나는 그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냥 읽어 내려갔는데, 내용은 잊고 싶었다.
왠지 그 내용을 내가 이해하고 수용해버리면
엄마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불안감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정말 엄마가 이대로 오지 않으면 어쩌지?
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엄마가 외갓집에 갔을 리는 없는데..
어디가 전화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못할 그런 나이였다.
그제야, 잠든 아빠 곁에 가본다.
어릴 적 기억을 되짚어
요즘도 아빠의 폭력성에 대해 가족들과 이야기하곤 한다.
다혈질의 아빠는 화가 나면, 어김없이 전화기를 부섰다.
그 화의 원인을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엄마는 울고 아빠는 전화기를 박살내고
그런 장면들이 많이 섞여있다.
그래서 우리 집 전화기는 동네에서 항상 최신형이었다.
다이얼 전화기에서 버튼 전화기로 바뀔 때도
맥슨전자의 무선전화기가 나왔을 때도,
아빠는 최신 전화기를 쓰고 싶은 사람처럼
그렇게 전화기를 박살 냈다.
전화기가 바뀔 때마다, 사건이 있었고
사건이 있고 나서 새 전화기가 집으로 들어왔다.
이 트라우마는 여전히 나에게 남아있어
내가 무엇인가 새 물건을 집으로 들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다.
요즘도 새물건이 들어오고 나서(물건이 들어오긴 전이든 후든)
마찰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 물건을 사고 선택할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나에게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어떤 마찰과 물건을 함께 집으로 들이는 것을
반복해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매 맞은 것이 아닌데
그저 전화기가 박살 나는 환경이었는데라고
스스로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괜찮은 게 아니었던 거다.
"괜찮은 척", "아닌 척" 했던 거다.
그런데, 엄마가 써 놓은 편지를 보고선
그 "척"이 되지 않았다.
두려움이 밀려오고 불안함이 커져만 갔다.
막내는 아직 글을 못 읽어 다행이었지만, 동생이 볼까 봐
내용 파악도 제대로 못한 편지를 나는 찢었다.
수련장 표지에 써 놓은 엄마의 첫 번째 편지,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엄마의 심정을 담았던 그 글을
나는 두려워 무시하고 싶었다.
그래도 기댈 사람은 아빠뿐이었다.
그래서 무서운 아빠에게 편지 이야기를 꺼냈다.
그제야 아빠가 일어난다.
화를 냈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희미하다.
하지만, 이미 읽어버린 편지의 내용이 나를 흔들어 놓았다.
엄마가 왜 이렇게 편지를 써 놓았을까?를 생각하면서..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다.
다행히 그날 저녁에 엄마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일은 그냥 그렇게 해프닝처럼 지나갔다.
그러나, 나에게 그렇지 않았다.
엄마의 첫 번째 편지는 나에게 그렇게 남아있다.
엄마가 나에게 한 첫 번째 고백이었는데
그 고백이 나에게 엄마의 부재로,
불안과 두려움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엄마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으면 철벽처럼 막는다. 대화의 방향을 본능적으로 튼다.
그래서 엄마는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동생을 통해서 한다.
집안에 일이 생겨도 나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엄마도 아빠도 나에게 어려운 일이 되도록,
내가 그렇게 만들어왔다.
엄마의 편지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열 살 남짓의 아이가 아직도 내 안에 있다.
그걸 보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그 아이가
아직도 불안해서
더 이상 다른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