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진정 평화로운가?
나(우리)와 전혀 무관한 다른 나라의 소식이 TV뉴스나 신문의 주요기사로 등장해도 이질감이 없는 사회는 바람직할까?
국제뉴스를 다루는 일본 언론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첫 소식부터 국제보도로 시작하는 뉴스는 '가진 자'로서의 여유를 극도의 세련된 방식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장면처럼 인식됐다. 국제뉴스가 차지하는 비중과 깊이가 내가 알던 뉴스와는 전혀 달랐다(안타깝게도 지금도 그렇다). 자국과 무관한 뉴스를 순수한 '국제뉴스'로서 무게감 있게 다루는 스펙트럼을 일본 사회는 허용하는 듯했다. 물론 언론사가 투입하는 해외 특파원 등 인적자원도 중요하다. 그러나 여력이 전부는 아니다. 그보다는 관점의 문제이다.
그런데 그때의 생각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뒤 한동안 NHK의 메인뉴스의 톱 자리는 줄곧 관련 소식이 차지했다. 전쟁 초기의 짧은 기간을 말하는 게 아니다(그 정도는 일정 수준을 넘어선 사회의 미디어라면 다 할 테니...). 단순히 전쟁 상황을 외신에 의존해 중계하듯 전달하는 것도 아니다. 독자적인 취재 아이템의 비중도, 직접 섭외한 인터뷰이도 많다. 이런 경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물론 대립이 거세지는 국제정세와 그에 편승하는 일본 정부(정치)의 영향이 크지만, 역시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일본 언론은 왜 국제뉴스를 중후하게 다룰까?
국제 이슈에 대한 일본 국민의 폭넓은 관심? 국제 정세? 일본 정부의 정책? 이게 다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자국 이슈에 대한 일본 언론의 적극적인 회피이다. 사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이다. 적당한 범위 안에서 '가급적 티 안 나게' 뉴스를 취사선택한다는 논란은 한국에서도 낯선 게 아니니까. 정치적으로 반대 진영이나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을 공격할 수 있는 아주 용이한 수단이기도 하다. 언론으로서 필연적으로 안고 있는 약점이고, 때론 무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그 간극이 너무 크다.
때론 국제뉴스만 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권력에 대한 비판을 찾아볼 수 없다. 논란을 다루지 않는다. 권력과 논쟁하지 않는다. 탐사보도를 하지 않는다... 어느 것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 빈 자리를 국제 뉴스나 날씨, 사건사고 소식이 채운다. 그것도 아주 중후하게.
당장 떠오르는 건, 우크라이나 전쟁, 연예인 스캔들 등을 폭로하면서 인기를 얻은 유튜버를 거쳐 'NHK를 때려부순다' 당의 비례대표로 참의원에 당선이 된 가시의 제명과 일본 송환, 필리핀에서 검거된 강도단 '루피' 등에 관한 보도 양상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가시 보도는 몇 차례나 톱뉴스로 등장했고, 강도단 루피 보도는 필리핀 현지에서, 또 송환하는 모습을 공항에서 생중계까지 하는 걸 보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가시 보도는 일본 정치의 후진성이 그대로 언론으로 전파된 사례이기도 하다. 의원이 제명되고 국제수배된 뒤 송환되고 체포되기까지 하는 초유의 사태였으니.
평가는 조금 더 신중해야 한다.
역시 '안전신화' 일본. 워낙 평화로워서 뉴스에서 다룰 만한 사안이 별로 없구나. 라고 자칫 믿게 된다. 상대적으로 그런 평가가 가능할 수도 있다. 일본의 사건사고가 다이내믹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잣대의 기준을 일본 내부에 놓고 봤을 때 맞는 말은 아니다. 일본 국민의 눈높이에서 일본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게 많은 사회이고, 권력에 대한 언론의 감시가 필요하다. 특히 후진적인 정치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일본 사회는 깊숙이 내포하고 있다.
일본의 언론인도 똑같이 느끼고 분노한다.
일본 주요 언론사의 기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눠보면 이런 비판이 틀리진 않다는 확인을 받을 수 있다.
"할 게 그렇게 없나", "정말 바보같지 않나요"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당신들이 그렇게 만들잖아요 라는 질책은 내가 아는 일본에선 큰 의미가 없다). 누군가는 우크라이나 보도에 대해 일본의 '백인 컴플렉스' 때문이라고 했다(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백인 컴플렉스와 일본의 언론은 따로 정리가 필요한 주제이다).
그래서 일본의 국제뉴스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국제뉴스가 어떻게 반영되는지'로 그 사회의 수준과 의식을 가늠해볼 수 있는 건 틀림없지만, 그건 할 일을 잘 하고 난 뒤의 일이다. 일본은 자신들의 삶과 무관하고, 제 기능을 하지 않는 뉴스를 기꺼이 허용하는 스펙트럼을 가졌을까? 한때는 그랬을 거다. 지금도 그 잔영은 남아 있다. 이들은 그냥 즐길 뿐이다. 계속 이대로 갈 수 있을까? 가도 될까? 그렇다. 과거엔 순응했고, 이젠 그닥 관심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