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붙' 기자회견의 탄생
총리, 도망치는 겁니까?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도시히코 오가타의 한 마디에 기시다 총리는 다시 단상 앞으로 돌아왔다. 기자회견을 재개한 것이다. 총리가 자신의 입으로 "감사합니다"라며 회견을 직접 끝내놓고, 다시 기자의 질문에 대답한 건 분명 흔치 않은 '사건'이다. '주요7개국', G7 의장국의 총리가 국내외 언론이 지켜보는 기자회견에서 '도망치는 거냐'는 말을 들었다. 그리곤 '멈칫'했다가 '어정쩡'한 자세까지 보였다. 체면을 구기는 모습이 생중계됐다.
(사건의 전개 과정에 대해서는 '일본 총리가 연출한 가부키회견' 참조)
일본의 매체들은 이 사건을 짧게라도 기사화할 수밖에 없었다. 기사가 짧았던 이유는 총리의 답변이 (늘 그렇듯) 특별히 기사화를 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망치는 겁니까'에 총리 회견 재개> 정도의 제목이 달린 해프닝성 기사로 다뤄졌다.
원.고.없.이. 이렇게 잘 하는 걸 평소에 왜 제대로 하지 않느냐
기시다 총리가 이 질문에 답한 것을 두고 몇몇 기자들은 '칭찬 섞인 기대'를 보이기도 했다. 총리가 준비된 원고 없이 답변 한 번 했다고 이런 평가가 나오는 것이 일본 언론의 현주소이다. (기시다 총리는 그야말로 '복붙'만 했던 스가 총리보다는 낫다는 평가를 '기자들로부터' 받고 있기는 하다)
'일본을 알기 위해' 한 가지 더 살펴봐야 하는 게 있다.
"도망치는 겁니까"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반응이다. 해당 발언이 글자 그대로 "도망치는 겁니까"로 번역되는 건 틀리지 않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받아들이는 뉘앙스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상황 자체는 분명 도망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기자회견 30분 중 20분을 총리의 발언으로 떼우고, 사전에 정해진 기자의 질문과 답변으로 나머지 10분을 모두 썼다. 답변을 준비하지 않은(=곤란한) 질문은 처음부터 받을 생각이 없었다. 이들은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왜? 순응하니까. 그리고 '끝'이라고 외치고 뒤돌아 가버리는 걸 기자회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수많은 기자들이 그저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도시히코는 어떻게든 질문 하나라도 해보겠다고 외쳤다.
과격하다, 예의가 없다, 총리의 스케줄을 망쳤다
마이니치신문의 기사 <도망치는 겁니까 한 마디에 총리가 기자회견 재개 G7정상회담>에는 7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화살은 대부분 일개 저널리스트에게 향했다. 그의 표현 자체에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도망치는 겁니까" 정도의 수위가 아니었다면 총리는 돌아서지 않았을 것이다. 도시히코 개인에 대한 평가는 접어두고, 일본의 취재 환경에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한다.
반면, '소통'에는 관심도 성의도 없는 총리에 대한 비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해프닝으로 트위터의 트렌드에는 '마스고미'가 등장했다. 마스고미는 매스컴의 일본어인 '마스코미'를 비하하는 표현이다('코미'가 쓰레기를 뜻하는 '고미'와 발음이 비슷해 마스고미로 불리기 시작했다. 한국의 '기레기'에 비해 일본은 '조직'에 초점이 맞아있다는 게 흥미롭다).
기자는 정치권력을 향해 외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한 질문을 하기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불러세워야 한다. 그들이 하고 싶은 말만 하게 내버려둬선 안 된다. 가장 곤란해 할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들이 하는 말만 듣고 쓴다면 정권의 선전 수단에 불과하다. 저널리즘 교과서에나 등장할 법한 이런 기본이 일본에선 통용되지 않고 비난의 대상이 된다.
매뉴얼이 먼저이고, 합의가 중요하다.
공기를 깨면 눈총을 받는다.
우리가 일본 총리나 관방장관의 '복붙' 기자회견을 계속 보게 되는 건 이런 이유에서이다. 손 들고 "똑같은 얘기 좀 그만 해!"라고 외치기가 쉽지 않다. 기자라고 해도 규칙을 '일탈'해선 안 된다. 우리(한국을 칭하는 건 아니다)에겐 '일상'이 일본 사회에선 일탈이 된다. 그 일탈에는 일본 나름대로의 '대가'가 따른다.
일본의 저널리즘에 관해 글을 쓰는 첫 번째 목적은 개인적으로 소재를 모으고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공부가 부족한 상태에서 쓰거나 완결성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