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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wook Jan 27. 2016

나는 '찌질이' 고흐가 좋다 [1]

미치광이, 연민적 사랑과 지독한 외로움


대학교 3학년 때였던 거 같다. 미술 교양 수업에서 알게 된 빈센트 반 고흐의 생애. 한마디로 불쌍했다. 동생을 향한 902통 편지의 속내, 처절했던 외로움까지. 워낙 잡념이 많고, 스스로 침체하기를 좋아했던 나에게, 그의 삶은 고스란히 기억됐다.


'아, 대인관계에 서툴고, 짝사랑만 줄곧 하는 나랑 진짜 똑같네.'


유쾌하지 않은 동질감이었으나, 27살에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주구장창 차이고 '원사이디드 러브'(짝사랑)만 했던 또다른 찌질이 나였기에 뭐, 억울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빈센트 반 고흐'란 화가가 마냥 좋았다. 그 뿐이었다. 하지만, 거의 10년이 지나 슬픔에 빠져 탈출구를 찾던 어느날, '찌질이' 빈센트 반 고흐는 다시 나를 뒤흔들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생애를 그가 남긴 902통의 편지를 바탕으로 그려낸 <Vincent Van Gogh : Painted With Words>는 2010년 BBC에서 제작했다. 현재 잘 나가고 있는 '오이남'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고흐 역을 맡았다. 내가 생각한 고흐와 똑 닮아있었다.


# 빈센트 반 고흐의 '서툴렀던 사랑'

고흐는 사랑에 매우 일방적이고 완숙되지 못했다. 그래서 끓어오르는 욕정을 술과 창녀들에게 풀어댔고, 매독에 걸려 고생을 하기도 했다. 잘린 귀를 평소 알고 지내던 사창가 여인에게 보냈다는 유명한 일화도 얽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와, 사랑을 고백했던 여인에게 비참히 거절당했던 상처가 옹이가 됐기 때문일 거다.


고흐가 사랑했던 첫번째 여인은 사촌이자 미망인이었던 키 보스다. 집으로 놀러온 키 보스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고흐가 끈질긴 구애를 했지만, 이는 독으로 돌아왔다. 가문에서는 친척을 사랑한 그를 창피하게 여겼고, 키 보스는 소름이 끼친다는 잔인한 말과 함께 떠났다.



두번째 여인은, 거리의 여자였다. '시엔'은 본래 재봉사였지만, 지독한 가난함에 몸을 파는 임신부였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시엔을 부양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뿌듯함과 대견함을 느꼈다고 했다. 고흐의 소묘 작품 슬픔 (sorrow)의 주인공이다. 시엔은 연상녀였고, 아름다운 외모는 아니었으나, 고흐는 벌거벗은 시엔의 모습에서 궁극의 아름다움을 느낀 듯 하다. 하지만 고흐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제대로된 밥벌이를 하지 못했고, 다시 가난에 찌든 시엔이 거리로 나가 몸을 팔기 시작하자, 고흐 또한 가정을 포기한 채 떠나게 된다.


고흐는 가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많았다. 런던에서는 도시노동자들의 가난한 삶을 닮은 그래픽에 심취했고, 탄광촌 광부들의 피폐함을 보며 선교자의 꿈을 꾸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고흐가 사랑했던 여인들은 세상에서 낙인 찍은 '연민의 대상'들이 아닌가 싶다. 스스로가 외로움에 닫혀 살았던 고흐에게, 자신이 지키고 싶은 존재는 자신보다 더욱 깊은 슬픔을 가진 여인들이 아니었을까. 고흐 스스로도 말한 것처럼 그의 외로움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사랑'과 '가정'이었을 거다. 그러나 결국 실패하면서, 지독한 고독에서 오는 불안감이, 결국 '미치광이' 고흐를 만들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명화를 탄생시킨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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