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전달자로서의 부모가 경험하는 무기력과 저항에 관한 감상(感想)
나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미래에 태어날 아이의 디지털 미디어 활용에 관한 나름의 철칙-주로 제한에 관한-을 세워두었을 정도로 디지털 미디어 활용을 경계하는 편이다. 아이가 만 5세가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영화 상영관에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을 관람하는 것 외에는 아이의 동영상 시청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주변에서는 요즘 세상에 그건 너무 심한거 아니냐는 둥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둥 나를 좀 별스럽게 여기기도 하는데, 대신 나는 아이가 아주 어렸을때부터 동화를 스피커를 통해 들려주곤 했다. ‘아직 너무 어린 아기인데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기는 할까?’ 싶을 정도로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는데, 그 시작은 많은 이야기를 통해 아이가 말을 좀 빨리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였고, 이후에는 이야기를 틀어놓으면 아이가 그것을 듣는데 집중한 나머지 나에게 놀아달라거나 이것저것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현격히 줄어드는 까닭에 그것을 지속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나는 보통 유튜브에서 동화 한 편을 선택하여 재생 하면서 관련 영상이 자동 재생되도록 설정해두고 스피커를 통해 소리만 들을 수 있게 해두는데,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무제한으로 흘러나오는 동화를 비롯한 유아용 이야기 콘텐츠의 세계는 가히 무궁무진하다. 요즘에는 시중에 판매되는 책을 그대로 읽어주는 유튜브 채널도 엄청나게 늘어나, 아이는 고전 동화 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현대 동화까지도 섭렵하게 되었다. 이제 아이는 나와 남편이 ‘이야기 중독자’라고 부를만큼 이야기 듣는 것을 탐닉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이가 다양한 이야기를 오랜 시간 접함에 따라 아이의 어휘력은 또래의 아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다소 복잡한 이야기의 문맥을 파악하는 능력 또한 꽤나 훌륭히 갖추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잡다한 지식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데, 예를 들면 “엄마, 불사조 피닉스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게 아니라 자기 몸을 태운 재에서 다시 태어나는거래”와 같은 주로 일반상식 류이다. 하나 그 중에는 ‘그저 만들어 낸 이야기일 뿐인’ 이야기임에도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6살에게는 사실과 혼돈할법도 한 내용도 있으니, 예를 들면 “엄마 수수가 왜 붉은 색인줄 알아? 동화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두 남매를 쫓아 썩은 동화줄을 타고 올라가던 호랑이가 동화줄이 끊어져 공중에서 떨어졌는데 떨어진 곳이 수수밭이어서 호랑이 피로 수수가 빨갛게 된거야.(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중)” 이런 것들이다.
이렇듯 동화 속 이야기를 일정 부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아이에게 나는 대문자 T(Thinking: 사고형) 엄마로서 항상 ‘그건 사실이 아니야. 그냥 이야기일 뿐이야.”라고 일찌감치 정정을 해주곤 한다. 만약 감성적인 F형(Feeling: 감정형) 엄마라면 이런 상황에서
“그렇구나! 그럼 왜 쌀은 하얀 색일까? 흰 토끼가 쓸고 갔나?”
라던지,
“우와, 재미있는 얘기네! 그럼 까만 콩은 왜 까맣게 되었을까? 원래 초록색이던 완두콩을 누가 태워버린 건가? 그래서 까만 콩이 된건가?”
라는 식으로 아이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더 자극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게 원체 어려운 엄마이다.
아이가 난생 처음 접하는 이야기를 듣고는
“엄마! 저기 먼 곳 얼음 성에는 눈의 여왕이 산대! 눈의 여왕이 누군가의 볼에 뽀뽀를 하면…”
라는 식으로 설레발을 시작할라치면 나는 곧장 딱 잘라서
“아니, 그런건 없어. 그냥 이야기일 뿐이야. 네가 듣는 얘기 중에 공주 이야기나 여왕 이야기가 나오면 다 그냥 지어낸 이야기라고 보면 돼. 특히 마법을 부리는 얘기가 나온다면 완전히 가짜야. 이 세상에 마법은 없거든”
이렇게 끝 간 데 없이 저 높은 곳으로 홰치며 날아가려는 아이 상상력의 두 날개를 가차없이 ‘탁’ 자르곤 하는데, 이는 아이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접하면서 혹시나 지어낸 이야기와 현실을 혼동하거나 연령에 따른 적절한 현실감을 갖추는데 혹여나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나의 노파심 때문이다.
아이는 이런 나의 영향때문에, 이따금 조금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을 때면(대체로 좀 잔인한 이야기다. 머리 아홉달린 괴물의 머리를 하나씩 차례로 모조리 베어 낸다 거나 하는) 곧장 내게 달려와
엄마, 이거 진짜야?
라고 묻는다.
이렇게 묻는 아이의 표정에는 절실함(제발 진짜가 아니기를 바라는)이 묻어나고, 아이의 눈동자에는 두려움(어떻게 이렇게 무서운 이야기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이 비친다.
그럴 때면 나는 최대한 냉소적인 표정을 지으며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건조하게 대답한다.
“당연히 가짜지. 머리 아홉달린 괴물은 세상에 없어. 그냥 괴물이라는 것 자체가 없으니까 아무 걱정마.”
이는 두려워하는 아이로 하여금 ‘아, 엄마 표정과 말투를 보니 이거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가 보네! 괜히 겁 먹었나봐.’라는 생각이 들게끔 돕고자 하는 내 나름의 전략이다.
얼마 전 디즈니에서 제작한 인어공주 영화를 러닝타임 내내 조금의 미동도 없이 숨죽인 채 보고난 아이는
“엄마, 애리얼(Arial, 주인공 인어공주의 이름)은 이제 바다에서도 살 수 있고 육지에서도 살 수 있어!”
라며 다소 들뜬 목소리로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 때도 나는
“아 이번 버전에서는 그렇게 끝났어? 동화랑은 다르게 해피엔딩이구나! 말도 안되게 물거품이 되는 것 보다 그 편이 훨씬 낫지. 근데 00야, 바다에서랑 육지에서는 숨 쉬는 방법이 달라서 그건 있을 수 없…”
이렇게 또 산통 깨는 소리를 시작하려니, 아이는 (엄마에게 배운 대로) 나의 말을 탁 자르며,
“아 엄마! 알아!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어? 그냥 이야기잖아! 이야기!!”
하며 도끼눈을 뜨고 나를 심히 꾸짖었다.
머쓱해진 나는
“오, 똑똑한데?”
라며 대충 웃어 넘기는데, 나는 순간 드는 두 가지 상반되는 감정에 잠시 마음이 복잡했다.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빠짐없이 “엄마, 이거 진짜야?”라고 묻던 아이가 이제는 동화의 세계와 현실을 완벽히 구분할 수 있을만큼 훌쩍 커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대견한 마음이 드는 한 편,
늑대가 양들을 몽땅 잡아먹는 결말의 이솝 우화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처음 듣고는 잡아먹힌 양들에 대한 슬픔에 괴로워하며 엉엉 울던(참고 - 01. 양가감정) 그 ‘아가’에 대한 그리움 또한 동시에 슬며시 고개를 내비쳤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극 T 엄마의 일관된 훈육으로 아이가 하루 중 매우 많은 시간을 동화속 세계에서 살면서도 현실감을 잃게 되지는 않았구나, 라며 비로소 안심하던 어느 날에 있었던 일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단지 주민들 간의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있어 물건 나눔이 매우 활발한데, 나는 그 중에서 주로 아동 도서를 나눔 받곤 한다. 책 욕심이 많은 나는 나의 딸아이의 연령대에 적합할 것 같은 책이 발견되면 일단 가릴 것 없이 거의 대부분 집으로 가져온다. 어느 날 무작정 나눔 받아 가져온 책이 알고 보니 ‘사회탐구’ 영역의 주제를 다루는 아동용 전집이었는데, 이를테면 전통 의복, 여론 조사, 국회 등과 같은 내용을 유아 또는 초등학교 수준에 맞게 쉽게 풀어 쓴 그림책이다.
나는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꽤나 만족스러웠는데, 동화책으로 점철된 아이의 책장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해주는 현실감 넘치는, 아니 현실 그 자체의 책이기 때문이었다. ‘이야기 중독자’인 딸아이가 과연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할까 싶었지만 웬걸, 이 사회탐구 전집은 현재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가 되었다. 그 전집 중에서 아이가 가장 처음 집어들었던 책은 ‘세계의 빈곤’에 관한 내용이었다.
책은 빈곤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현실을 예시로 드는데,
우물 물을 긷기 위해 자신의 몸만한 크기의 양동이를 들고 2킬로 미터 가량을 매일 오가는 아이,
성냥 공장에서 황 냄새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쪼그려 앉아 12시간 이상을 일하고도 임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
병원이 없어 우리가 흔히 앓는 질병이나 곧잘 입는 상처 등을 제 때 치료하지 못해 장애를 얻거나 죽음에 이르는 현실
등을 이야기한다. 책의 말미에서는 가난보다 더 최악인 것은 전쟁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를 느끼며 폭탄과 총알을 피해 목숨걸고 떠돌아다녀야 하는 사람들의 현실이라고 말한다.
책에는 이러한 내용과 관련한 실제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의 사진들이 삽입되어 있는데, 나의 아이는 그 중 총을 든 군인들에게 양 팔을 붙들린채 질질 끌려가는 맨발의 어린 소년의 사진을 보며 나에게 물었다.
“엄마, 왜 이 사람들이 이 오빠 끌고가는거야?”
의외로 안타까움이나 슬픔이 아니라 그저 모르는 내용이 궁금해서 설명을 듣고 싶을 때의 호기심만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아이가 그림 동화책에서 삽화의 디테일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마다 나에게 질문할 때의 일상적인, 평범한 어조와 표정이었다. 사진을 보고도 나의 예상에 비해 아이가 그다지 충격받지 않았다는 것에 내심 안심한 나는 최대한 충실히 대답했다.
“이 오빠는 이 군인들이랑 다른 편 사람이야. 그래서 이 군인들이 이 오빠 끌고가서 이 오빠네 편 사람들한테 겁주려고 그러는거야. 우리 이렇게게 무서우니까 항복하라고.”
“끌고가서 어떻게 겁을줘? 설마 죽여?”
나는 그 간의 경험을 토대로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그냥 데리고 있을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고 그래.”
“아니 엄마, 그냥 죽이는 척만 해도 되잖아? 왜 진짜 죽여?”
아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내게 따져 물었다.
“진짜로 죽인걸 보여줘야 상대편이 더 겁을 먹으니까. 겁을 많이 먹어야 빨리 항복할 것 아냐. 그래서 진짜 죽이기도 해.”
이렇게 대답하면서 나는 속으로
‘어린 아이에게 끝내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나는 혹시 극 T가 아니라 사이코패스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아!! 진짜 너무 나쁘다!!!”
아이가 힐난하듯 소리쳤다.
“그러게.”
딱히 뭐라 덧붙일 설명이 떠오르지 않던 나는 짤막히 대답했다.
그러다 순간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아이는 다급히 물었다.
엄마, 혹시 이거 진짜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이의 질문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이 책은 ‘사회탐구’ 책이고,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선명한 실사 이미지와 통계 자료로 가득 차 있었기에, 나는 당연히 아이가 지금까지 읽은 모든 내용이 당연히 모두 실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오해했던 것이다. 아이는 지금껏 책에서 본 그 모든 사진들을 동화책의 삽화 정도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요즘 동화책에는 실사같은 삽화들도 많아 아이가 ‘진짜 이 그림 너무 잘그렸다 엄마!’라며 감탄한 적도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가 동화를 듣고나서
“엄마, 이거 진짜야?”
라고 물을 때마다
“아니, 가짜지.”
라는 대답만 줄곧 해왔던 나는 이번에도 역시, 늘 그랬듯이 엄마가 ‘아니, 가짜야’라고 할 것이라는 기대를 만면에 내비치고 있는 아이를 향해 무기력하게 대답했다.
“응… 다 진짜야.”
아이의 눈이 커지고 동공이 흔들렸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이는
“엄마, 장난치는거야?”
“아니… 장난치는거 아니고, 다 진짜야. 여기 있는 사진들 그림 아니고 진짜 실제 아프리카 사람들 찍은거야.”
아이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여전히 흔들리는 동공으로 잠시 생각하던 아이는 물었다.
“하… 그러게… 진짜… 너무 나쁘고… 너무 불쌍하다.”
하며 나는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아이가 비단 이 포로로 끌려가는 소년의 사진에 대해서만
“엄마 이거 진짜야?"
라고 묻고 싶었겠는가.
12시간을 황 냄새를 맡으며 앉아있는 아이들,
탄광에서 맨발로 일하는 대여섯 살 정도의 아이들,
그렇게 일하고도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불쌍한 아이들,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쉼없이 일해야 아이들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는 부모들,
가벼운 상처도 치료받지 못해 불구가 될 수 밖에 없는 현실,
흔한 질병에만 걸려도 죽음에 이르게 되는 현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사는게 행복한 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끔 하는, 삶의 모든 시간과 가능한 모든 노력을 총알과 폭격을 피하는데에만 쓸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내 생각이 틀렸다.
충분히 현실감을 지녔다고 생각했던 내 아이는 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
아니 어쩌면, 현실이 너무 가짜같으니,
그게 진짜 일어나는 일이라고 도무지 생각하지 못하는게 당연할 수도 있겠다.
세상에는,
아이가 알아가기에, 부모가 알려주기에 너무도 가혹한 일들이 많다.
이런 세상을 제대로 알려줘야하는지 되도록 숨겨야하는지,
또 숨긴다면 언제까지 숨겨야 하는건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는 나는 과연 누구에게, 어디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걸까.
동화 속의 신비롭고, 마법같고, 꿈과 희망으로 가득찬, 결국은 선이 악을 이기고 진심은 통하고야 마는 그 모든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모두 가짜야”
라고 말해줘야하고,
아이가 제발 가짜라고 해줬으면 하는 실제 현실의 일들에 대해서는
“모두 진짜야. 실제로는 더 심한 일도 많아”
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나의 상황이 참담하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라는 엄마가 더 없이 무기력한 표정으로
“진짜야. 모두 사실이야.”
라고 대답할 때 아이는 어떤 심정일까?
그 대답을 듣는 아이와 그 대답을 해야만 하는 나 중 누가 더 처연한가?
차라리 머리 아홉달린 괴물이 실재하는 편이 낫겠다.
정말이지 거짓 순도 100%의 동화가 더 현실감있게 느껴지는 세상이다.
엄마, 이거 진짜야?
한 참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같은 질문을 반복하던 아이는, 그녀의 시름을 덜어줄만한 어떠한 말도 찾지 못한 채 그저 책을 덮으며
"이제 그만 자자."
라고 하는 내게 하룻 밤도 빠짐없이 외치는 '엄마, 제발 한 권만 더!'라는 투정 비슷한 투쟁의 구호도 잊은 채 허공을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엄마,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이 사람들 옷도 주고 밥도 주고 집도 지어주고 할거야. 아니면 의사가 되어서 아픈 사람들 치료해주던지. 그럼 돼."
이렇게 이윽고 스스로의 다짐에 이른 아이의 표정은 다행히 조금 전보다는 한 결 편안해 보였다.
이 아이에게 더 나은 세상을 선물해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게 무엇이든, 그 일이 얼마나 하찮든, 할 수 있는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