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아이 성향 간 유사성과 차이점이 자녀 양육에 미치는 영향
아이가 5살 때의 일이다.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5살이 되어 처음으로 유치원에 다니게 되었다. 갑자기 큰 유치원에 가게되어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나의 우려와는 달리, 아이는 별다른 적응 기간 없이 유치원 생활에 적응하여 매일매일 아주 즐겁게 유치원에 다녔다. 그런데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지 약 6개월 쯤 지났을 무렵의 어느 날, 아침에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유치원 버스가 도착하여 버스를 타야하는데 깔깔 웃으며 놀던 아이가 갑자기 버스에 타기 싫다며 내 옷을 꽉 붙든 채 옆에 붙어 돌처럼 움직이지를 않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아이가 장난을 치는 줄 알고 웃으며 “빨리 타야지!” 하고 아이를 버스 쪽으로 떠밀었는데 아이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친구들이랑 선생님이 다 기다리잖아, 어서 타야지!”하며 나무라듯 재촉하니 아이가 별안간 울기 시작했고, 그렇게 아이의 기나긴 유치원 등원 거부가 시작되었다.
아이는 그 날을 시작으로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하게 유치원에 가는 것을 거부하였다. 버스 탑승을 거부했던 다음 날에는 자기는 버스타기가 너무 싫으니 엄마가 차로 유치원에 데려다달라고 했다가, 그 다음 날에는 버스를 안타도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했다.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그저 신나게 등원했던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보이는 모습에 나는 처음에는 당황했고 그 거부의 날들이 2주가 넘어서부터는 화가 났다. 말귀를 다 알아듣고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충분히 아는 아이이니, 나는 아이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가기 싫어도 가야 하는거야. 유치원에 가기 싫은 친구는 너 아니어도 많아.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유치원에 안가는 친구는 없어. 엄마도 아빠도 회사에 가기 싫은 날도 많지만 가는거야. 가야하니까. 약속이니까. 자기가 싫어도 꼭 해야하는 일이 있는거야. 너가 아무리 가기 싫어도 가야해.”
이렇게 유치원에 가는 것이 너무 싫다며 우는 아이에게 바늘 구멍만치 조그만 여지도 주지 않고 매일 매 번 그저 가야만 한다고 강요했다. 내 딴에는 그것이 일관된 훈육이었고, 속한 기관에는 아무리 가기 싫은 마음이 들지라도 반드시 가야하는 것이라고 어릴 때부터 가르치는 것이 맞다 생각했다.
나로서는 하루아침에 돌변한 아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매일 신이나서 다니던 유치원이 어떻게 하루 아침에 그렇게 울고불고하며 안간다고 할 정도로 싫어지는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후로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당시 아이가 보였던 등원 거부의 전조 증상들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말이지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정말이지 등원 거부의 이유를 알고 싶어 아이에게 유치원의 뭐가 그렇게 싫으냐고 물으면 그렇게 말을 잘하는 아이가 즉각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머뭇 거리며
“선생님이 무서워”
라고 아무 이유라도 찾아서 둘러대려는듯 대답할 때에도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이에게 학기 초반에 선생님이 화를 내면 엄청 무섭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6개월 넘게 그렇게 신나게 다녔었는데, 이게 갑자기 등원을 거부하는 이유가 될 수 있냐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어르기도 해보고 달래보기도 하고 심히 꾸짖어도 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아이의 거부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나의 강압에 못이겨 유치원까지는 어찌저찌 간다 해도, 유치원 문 앞에서 한참을 대성통곡하며 발을 떼지 못하는 날도 여럿이었고, 아이가 울더라도 단호하게 돌아서라는 선생님들의 지시에 아이가 유치원 문 앞에서 통곡을 시작해도 뒤돌아 휭 하고 떠나버린 날들도 있었다.
아이는 계속해서 선생님이 무섭다고 했다. 내가
“너한테 선생님이 어떻게 하길래?”
라고 물으면 자기한테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닌데 무섭다고 했다.
선생님이 아이의 반 전체 친구들에게, 그리고 그 반에서 가장 개구장이인 남자 친구에게 화를 낼 때 너무너무 무섭다고 했다. 무서운 표정으로 너무 크게 소리를 지른다고도 했다. 또 한 친구가 무언가 잘못을 하면 선생님이 반 전체 친구들에게 벌을 준다고도 했는데, 예를 들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인 일주일에 한 번 뿐인 유치원 내 키즈카페에서 노는 시간에 키즈카페에 가지 않고 교실에서 말 없이 책을 읽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다. 아직 5살이라 절반 이상이 글을 읽지도 못할 뿐더러, 5살 아이들에게 몇 십분 동안 아무 말도 못하도록 하는 것은 과연 가혹한 일이긴 하다. 더 문제는 그런 시간에 꼭 이야기나 장난을 참지 못하고 떠드는 아이들이 있고, 안그래도 화가 잔뜩 나서 벌을 주고 있는 선생님은 더 무섭게 화를 내는 것이다.
당시 딸 아이 반의 담임 교사는 20대 중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자였는데, 여느 유치원 선생님과는 다른 우울한 분위기보다 특징적인 것은 정말이지 목소리가 작다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냐면, 당시 주기적으로 전화 상담을 진행했는데, 전화로 너무 작게 웅얼거려서 도저히 무슨 얘기를 하는건지 거의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녀는 코로나가 지난지도 한참이라 마스크를 쓴 교사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시기에도 일년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항상 지쳐보였고, 매번 감기에 걸렸다고 했다. 여튼 이렇게 상대가 못알아들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사람이 너무나 무섭고 크게 소리를 지른다니. 나는 도무지 상상이 되질 않아 아이가 하는 말을 온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원체 겁이 많고 분위기 파악을 잘 하는 아이의 성향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00아, 선생님이 너한테 소리지르고 화내는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그게 왜 그렇게까지 무서워하는거야? 선생님이 다른 친구들에게 화를 내든 말든 신경쓰지 않도록 해봐. 그렇지만 혹시나 너한테 뭐라고 하거나 화를 내면 엄마한테 바로 알려줘. 그 땐 엄마가 널 도와줄게.”
이렇게 설득에 설득을 해보았지만 허사였다. 아이는 한 달이 넘도록 매일 아침 울며 등원을 거부했고, 어느 시점부터는 잠 잘 시간이 다가오는 저녁이 되면 내일 유치원에 가기 싫다며 구슬프게 울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하루라도 ‘그냥 그렇게 싫으면 유치원 가지 말고 놀자.’ 할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싫어도 가야해.’ 라며 나도 같이 고집을 부렸고, 항상 내가 이겼다.
나의 딸 아이는 유약한 성품을 지녔다. 짜증을 내고 생떼를 쓰다가도 내가 무표정으로 바라보거나 목소리를 낮추면 금새 행동을 수정한다. 무서워서 그렇다. 그런 아이이니 죽을만큼 유치원이 싫었어도 절대 안간다며 소위 ‘드러눕지는’ 못한 것이다. 자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성격의 엄마 앞에서는 말이다.
아이의 등원 거부로 너무나 힘들었던 나에게 어느 날 남편이 아이가 심리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어떨지 물어왔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상담에 동의했고, 즉시 상담 신청을 했다. 상담을 위해 먼저 아이의 기질과 성향에 대한 파악이 되어야 하니, 상담 전 미리 기질, 성격 검사인 TCI(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 검사를 실시했다. 물론 내가 아이 대신에 평가 문항에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검사 결과는 가히 놀라웠다.
TCI의 평가 항목은 4가지 기질 요소(타고나는 것)와 3가지 성격 요소(형성되는 것)로 구성된다.
이 중 기질 평가 항목 중 하나인 ‘보상 의존(Reward Dependence)’은 사회적 보상과 타인의 인정에 대한 민감성을 나타내는 요소인데, 이 ‘보상 의존’에는
정서적 민감성(Sentimentality)
타인 중심성(Attachment)
타협성(Dependence on Approval)
이 포함된다. 아이는 이 중 ‘정서적 민감성(Sentimentality)’이 상위 2%에 해당할 정도로 매우 높았다. 쉽게 말해서, 아이는 모든 사람을 통틀어 가장 정서적으로 민감한 사람인 것이다. 정서적 민감성이란 ‘감정적으로 깊이 반응하고,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민감함’으로 정의된다.
상담 선생님은 아이가 이런 기질을 가지고 있다면 유치원에서 친구들 중 일부가 자꾸 담임 교사에게 혼날만한 행동을 하고, 교사는 그로 인해 화가 나서 그 친구들을 무섭게 꾸짖고, 더 나아가서는 반 전체 아이들에게 벌을 주는 것이 하루가 멀다하고 계속해서 반복되는 유치원의 상황이 이 아이에게는 정말 큰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고, 이렇게 6개월 넘게 버티다 결국 번아웃이 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일단은 해당 담임 교사의 잘잘못을 떠나서, 그 교사의 교육 방식과 아이의 성향이 너무 맞지 않은 상황이니, 할 수만 있다면 유치원을 옮기거나 동일 유치원 내 다른 반으로라도 옮기는게 좋을 것 같다는 조언도 해주었다.
상담 선생님은 검사 결과 해석 상담 내내 아이에게 두드러지는 기질과 성격에 대해 설명하며, 이 성향에 대해 엄마나 아빠는 어떤지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부분
‘00이 아빠가 그래요. 저는 전혀 아니에요.’
‘아, 저는 완전히 반대에요. 남편이랑 정말 비슷하네요.’
와 같은 식의 대답으로 일관할 수 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내 딸은 소위 ‘아빠 딸’이었다. 나는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안되는 딸의 기질에, 남편과 너무도 닮은 그것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 저었다.
그 날 저녁, 아이를 재워두고 아이의 검사 결과와 상담 내용을 너무나 궁금해하는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상담 선생님께 들은대로 검사 결과를 남편에게 전달했고,
“결국 00이가 계속 스트레스를 받다 번아웃이 온거래.”
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얼굴을 감싸쥐었다. 내가 말했다.
“그냥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00이 성격이 당신하고 정말 비슷한 것 같아. 어때? 당신은 00이 마음이 이렇다는게 공감이 돼?”
남편이 괴로워하며 말했다.
“당연하지. 공감이 왜 안돼? 그리고 정말 어릴 때의 날 닮았네.”
남편의 대답을 들은 나는 별안간 히스테릭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당신은 지금 00의 상황이 공감이 잘 되겠네? 정말 그래? 하하! 난 너무 신기해! 아니 근데 말야, 선생님이 다른 친구를 혼내는게 대체 왜 스트레스인거야? 아하하하, 난 정말이지 이해가 안돼!! 있잖아, 내가 아무리 학교다닐 때 단체기합 받는 상황을 떠올려봐도, 나는 그 어떤 스트레스도 느껴지지 않거든? 그냥 어떤 쌤이 기분이 나빠서 우리를 괜히 심하게 혼내고 기합을 줬을때를 떠올리면 말야, 음, 나는 그냥 쌤을 욕했어. 저 나이 먹고도 감정 조절이 안되냐고. 자기 기분나쁜 걸 왜 우리한테 푸느냐고. 그냥 그러고 말았어. 그건, 그냥 어이없고 짜증나는 일일 뿐이야. 근데 대체 그게 왜 무섭고 스트레스야? 응?? 쌤이 나한테 뭐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 제발 나한테 설명을 좀 해줄래?? 아하하하하”
질문을 가장한 비아냥이었다. 내 딸이니까 어떻게든 이해를 해보려 하는데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나의 남편은 너무도 쉽게, 그리고 격하게 공감하고 있는 이 상황에, 결국 같은 부모인 남편에게 나의 괴로움은 이해받지 못하고, 아이의 괴로움만 인정받게 된 이 상황에, 어찌보면 이 가족 내에서 나만 고립된 것 같은 이 상황에 대한 냉소였다.
남편이 대답했다.
“당연히 스트레스지, 생각만해도 너무 불편하잖아. 가시방석이지. 누군가가 화내는 걸 보는 것도 너무 싫고. 억울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5살밖에 안된 어린애가 얼마나 그게 무서웠으면, 그러면서도 유치원 가기 싫다고 말도 못하고, 지금까지 버티다 탈이 난거야. 나는 지금 가슴이 미어져 미칠 것 같아.”
남편이 벌게진 얼굴을 한 채 손으로 가슴께를 매만지며 말했다.
그렇게, 같은 상담 결과를 공유하며, 같은 딸을 바라보며,
나는 이 날 남편의 눈물을 처음 보았다.
그 상담 결과를 듣던 날, 나는 정말이지 다채로운 감정을 경험했다.
첫째는 낯섦이다.
내 뱃속에서 태어나 4년을 지켜보아온 내 딸이 나조차 모르던, 심지어 나와는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아이라는 사실에 나는 당황스러움을 넘어 낯섦을 느꼈다. 얼굴은 나와 너무도 똑같이 생겼기에 남편보다 이 아이가 내 반쪽처럼 느껴졌었는데, 실상은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알고 보니 내가 아이와의 성향 차이를 직시하고 아이가 낯설다는,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게 된 것은 이론적으로 타당한 것이었다. 연구에 따르면 부모는 자신과 성격이 비슷한 자녀에게 더욱 친밀감을 느낀다고 한다. Loehlin et al.(2010)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성격적 유사성이 부모와의 정서적 친밀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아버지는 특히 성격이 유사한 자녀와 더 강한 정서적 유대를 형성한다고 한다. Vrolijk et al.(2022)은 어머니와 자녀 간의 성격적 유사성이 어머니가 느끼는 친밀감과 자율성 지원의 정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밝혔고, Fox(1999)는 부모-자녀 간의 성격적 유사성이 자녀가 부모에게 더 큰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는 데 기여하며, 부모 간의 갈등 수준도 유사성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고했다. 또한 성격적 유사성이 클수록 가족 내 갈등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정서적 친밀감을 강화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둘째는 후련함이다.
어쨌든 상담 선생님은 이 아이의 기질 상 충분히 등원 거부를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하였다. 내가 공감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와 상관 없이, 중요한 건 아이가 이유없이, 또는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어 그렇게 장기간 강한 등원 거부 증상을 보였다는 게 아니라는 점이 나를 안심시켰다.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함에 터져버릴 것 같았던 마음이 후련해졌다.
셋째는 소외감이다.
나는 나와 남편, 아이, 이렇게 세 식구 뿐인 우리 가족 내에서, 남편과 아이는 같은 영혼을 공유하는데, 나 혼자만 배제된듯한 소외감을 느꼈다. 내가 느끼는 것을 그들이, 그들이 느끼는 것을 내가 함께 느낄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기인한 소외감이다.
넷째는 죄책감이다.
남편은 눈물을 보일 정도로 아이의 아픔에 공감 하는데, 나는 공감은 커녕 그동안 내 기준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결석), 납득할 수 없는 이유(선생님에 대한 두려움)라며 그동안 힘들다고 울며 호소하는 아이를 아이를 사지로 내몰았다. 나와 아이의 성향이 얼마나 다르 건,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등원 거부가 한 달이 넘어갔을 즈음에는 나도 너무 지쳐 아이의 호소 조차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렇게 유치원이 싫으면 평생 유치원이고 학교고 아무데도 다니지 말고 그냥 집에서 혼자 놀며 바보가 되라는 모진 말도 내뱉었다. 이런 일들을 떠올리니 그간 너무도 괴로웠을, 측은한 아이에 대한 죄책감에 말할 수 없이 괴로웠다.
다섯째는 안도감이다.
내가 이토록 공감할 수 없는 아이에 대해, 남편은 이미 완벽히 공감하고 있으며, 따라서 앞으로도 아이를 전적으로 이해해줄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정말이지 안심할 수 있었고, 또 이 사실에 깊이 감사했다.
이후 다행히도 아이는 점차 안정을 찾아 갔고(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상담 이외에도 다양한 조치가 있었다), 무사히 5세 과정을 수료하였다.
나는 고달픈 일을 겪거나 좋지 않은 사건 사고를 경험하게 될 때면 항상,
이 일이 어떤 일에 대해 좋은 계기가 될, ‘결국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실제로 그렇게 믿는다.
물론 약 2개월에 걸친 아이의 등원 거부 사태로 정말이지 심히 괴로웠지만,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아이가 가진 기질을 일찌감치 파악할 수 있었고,
아이의 기질을 파악함으로써 나는 그 전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아이의 말과 행동들에 대해 머리로나마 공감하고, 아이에게 적절한 반응과 훈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의 등원 거부로 인한 심리 상담 과정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아이를 향해 많은 순간 “대체 왜저러지?”라는 표정을 보이고 있을 것이다. 또 아이의 아픔에 최초의 눈물까지 보이며 공감하는 남편과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끼고 나의 가족과, 그들과 함께하는 삶에 더욱 감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알되 제대로 아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아이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아이를 대하는 것과, 그냥 경험이나 감을 통해 ‘안다고 생각하고’ 상대 또는 만물을 바라보는 것은 천지차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아이가 어려운 모든 부모들에게 아이를 최대한 많이, 정확히 알아가길 권한다. 여러 연구들을 통해서 부모가 자녀의 기질을 이해하는 것의 다양한 유익성이 밝혀진 바 있다. Zohar et al. (2018)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성격 발달을 이해하고 교육적, 사회적 지원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데 기질 검사가 유용함을 밝히며, 검사를 통해 아이들의 기질에 맞춘 양육과 교육 방법을 설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Bates et al. (2012)는 자녀의 기질을 이해하고 이에 맞는 양육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아동의 건강한 발달을 촉진하는 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부모가 자녀의 기질적 특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녀의 정서적 및 행동적 요구에 맞춘 양육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 자녀의 정서적 안정성과 사회적 적응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주장했다. Carey (1998)는 부모가 자녀의 기질을 이해하고 이에 맞춰 양육할 때 부모-자녀 관계가 더 원활해지고, 스트레스가 감소한다고 밝혔고, Adamek et al. (2011)은 기질을 바탕으로 어린이의 행동을 예측하여 문제 행동에 대한 새로운 개입 방법을 개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는 아는 것이 ‘위로’라고 믿는다.
이는 내가 나의 감상적인 글에 최대한 연구자료를 삽입하고자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는 것'은 사람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준다.
내가 아이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것’은 나에게
사랑스런 내 아이가 별스럽게 등원 거부를 하는 것이 그녀의 기질 상 자연스러운 것일 뿐, 아이에게는 문제가 없다며 위로를 해주었고,
아이와 나의 성향이 너무나 달라서 그간 내가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울 수 밖에 없었으니 괜찮다고 위로를 해주었고,
그럼에도 이제라도 아이의 기질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아이에게 더 좋은 엄마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며 따스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받은 이 위로를 내 아이에게도 충실히 전할 것이다.
이제 엄마가 너의 마음을 알아.
지금 네가 왜 힘든지 엄마는 알것 같아.
엄마가 도와줄게.
[참고문헌]
Adamek, L., Nichols, S., Tetenbaum, S. P., Bregman, J., Ponzio, C. M., Carr, E. (2011) Individual Temperament and Problem Behavior in Children With Autism Spectrum Disorders. Focus on Autism and Other Developmental Disabilities, 26(3), 173-183.
Bates, J. E., Schermerhorn, A. C., Petersen, I. T (2012), Temperament and Parenting in Developmental Perspective. Handbook of Temperament, Ch. 20, 425-441.
Carey, W. B. (1998) Teaching parents about infant temperament. Pediatrics, 102, 1311-1316.
Fox, J. M. (1999) Parent-offspring similarity on five personality dimensions: Moderating effects of family dynamics. University of Connecticut ProQuest Dissertations & Theses.
Loehlin, J. C., Willerman, L., Horn, J. M. (1987). Personality resemblance in adoptive families: A 10-year follow-up.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53(5), 961-969.
Vrolijk, P., van Lissa, C., Branje, S., Meeus, W., Keizer, R. (2022) Parent-Child Personality Similarity and Differential Autonomy Support Towards Siblings. Journal of Family Psychology, 36(6), 839-850.
Zohar, A. H., Zwir, I., Wang, J., Cloninger, C. R., Anokhin, A. P. (2018) The development of temperament and character during adolescence: The processes and phases of change, Development and Psychopathology, 31(2), 60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