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몇 년 전부터 거의 매일 ‘감사 일기’를 쓰고 있다.
일기라기 보다는 매일 그 날의 감사한 일 10개를 간략한 리스트의 형식으로 작성하는 것인데, 이는 내가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우울과 무기력의 늪에서 벗어나고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 노력 중의 하나였다.
처음 감사 일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는 감사 목록 10개를 작성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나에게는 매일이 똑같은 하루로 느껴지는 데, 거기에서 매 번 감사한 일 10개를 찾는다는 것이 나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동안 일상의 작은 것에 감사해본 경험이 없었던 탓이 컸으리라.
그런데 하루하루 감사 일기를 써가면서 나는 곧 너무도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30대 후반의, 매일 챗바퀴 도는 듯 뻔한 나의 하루에도 매일매일 ‘난생 처음으로 하는 일’이 그토록 많다는 것이었다. 얼핏 모든 날들이 같은 날인 듯 똑같아 보였던 나의 삶은 알고보니 매일 새로운 경험으로 가득 차있었다.
처음 해보는 일, 처음 가보는 곳, 처음 먹는 음식, 처음으로 느낀 감정…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감사 일기장은 온통 ‘처음으로’라는 말로 채워지게 되었고,
그것을 매일 기록하며 감사하는 나에게 일상은 더이상 뻔한 것이 아니었다. 매일이 설레고 특별해졌다.
그리고 내 감사 일기가 ‘처음으로’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채워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내 삶의 대부분의 순간에 아이가 함께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아이와 식당에서 밥을 먹게되어 감사하다.
처음으로 아이가 통잠을 자 주어 감사하다.
처음으로 아이에게 이유식을 만들어줬는데 정말 잘 먹어서 감사하다.
처음으로 아이와 놀이동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감사하다.
처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결혼식에 가게되어 감사하다.
…
이렇듯,
내 감사 일기를 채운 수많은 ‘처음으로’는 대부분 나의 아이가 준 것들이었다.
감사 일기를 시작한지 몇 년이 지나 아이가 6살이 된 지금까지도 매일 나의 감사 일기에는 ‘처음으로’가 끊이질 않는다.
삶의 많은 순간이 ‘처음’일 수밖에 없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매일도 ‘처음’의 연속이다.
그리고 이 수많은 ‘처음’의 순간들은 나로 하여금 무수한 영감을 준다.
이번 육아 에세이도 이렇게 아이가 매 순간 주는 영감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이렇게 아이는 매일 나를 성장시키고, 발전하게 하며, 새로운 일들을 시도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이를 키우는 건지, 아이로 인해 내가 성장하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그 둘은 같은 말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