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결혼기념일에 이혼하기 07.
아이는 조금 빨리, 작게 태어났지만 건강했다.
수술직후 나는 임신중독증의 여파로 혈압이 200 가까이 오른 채 좀처럼 떨어지지를 않아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직후에 남편이 나를 보러 왔다. 작지만 너무나도 예쁜 아이를 보고 온 그는 내 손을 잡고 연신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내가 다 잘못했어', '내가 진짜 미쳤었나 봐' 등의 말을 해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안도감과 행복함과 고마움과 미안함에 과장된 살뜰함을 보이고 있는 남편의 모습에 저 사람이 이렇게나 태세 전환에 능한 사람이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그런 태도가 내 찢어진 아랫배보다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말문이 막혔던 나는 궁금한 것이나 묻자 했다.
“아기 봤어?”
내 물음에 남편은 순간적으로 눈을 반짝이며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응, 너무너무 예뻐, 방금 태어났는데도 너무 예뻐. 아.... 너무 작은데 어쩜 그렇게 예쁜지, 다른 아기들이랑은 완전히 달라. 진짜 예뻐.”
남편은 아이를 보고 첫눈에 반한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렇지 않고는 그 하트 모양으로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나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내가 지금까지 저런 하트 눈을 본 적이 있었던가?'
그러다 나는 나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 생각만으로 행복의 바다에서 하트 눈으로 허우적거리는 그 모습에 또 한 번 칠색팔색했다. 그렇지, 너지.
“그래, 가.”
남편은 간호사의 요청에 따라 부랴부랴 구해온 물과 빨대, 물티슈 등을 침대 근처에 얌전히 올려두고, 코끼리 다리보다는 확실히 더 두껍게 퉁퉁 부은 내 다리에 압박 스타킹을 땀을 뻘뻘 흘리며 간신히 신겨주고는 내일 다시 오겠다며 중환자실을 나섰다. 나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잰걸음으로 사라지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되뇔 뿐이었다.
"내가 여기서 죽지 않더라도 오늘이 내가 너를 보는 마지막 날이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런데 이제 네가 첫눈에 반해버린 아이 때문 에라도 이혼이 더 힘들어지겠네. 하아..."
내 몸에 연결된 센서가 내 몸의 위험 상태를 감지하면(나의 경우는 혈압이었다) ‘삐-삐-삐-’ 큰 소리를 냄과 동시에 빨간 불을 번쩍번쩍거리며 의료진을 호출했는데, 나는 밤새도록 그 소리를 듣고 또 들었다. 기계에서 소리가 나면 간호사가 달려와 혈압 낮추는 주사를 놓는 것을 반복했다. 혈압을 낮추기 위해서는 마그네슘 주사를 맞는데, 나는 마그네슘 주사 부작용이 심한 편에 속했다. 대표적인 부작용이 어지럼증인데, 정말이지 나는 주사를 맞는 내내 머리가 침대 매트리스에 박힌 채 땅속으로 곤두박질치는 것 같은 어지러움에 도무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가만히 누워있어도 어지럼증 때문에 헛구역질이 나고 구토를 했다. 내 혈압은 밤새 190-200을 오가며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아, 이래서 임신중독증이 무서운 거구나. 그냥 일순간 머릿속 혈관 터져서 죽는 거구나. 그렇게 애를 낳다 죽는 산모들이 많은 거구나 깨달았다. 그렇게 생사를 오가는 와중에도 나는 어렴풋한 정신을 붙잡고 생각했다.
‘내가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기게 되면 내일 꼭 얘기할 거야. 이혼하자고.’
다행히도 다음 날 나는 겨우 혈압이 잡혀 중환자실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와 남편의 만행으로 일찍 세상으로 나와 태어나자마자 엄마 손길도 느껴보지 못한 채 외롭게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있는 나의 소중한 피붙이를 처음 본 순간,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세상천지에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인큐베이터 안에 들어 있는 손바닥 만한 아이를 만지지도 못한 채 안타깝게 바라보며 나는 다짐했다.
'널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게. 그게 무엇이든. 그게 네 아빠와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 조차.'
아이와 처음으로 마주한 몇 분 동안 내 마음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리고 그제야 나보다 먼저 아이를 만난 남편의 나에 대한 급격한 태도 변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날 나는 직장인들이 가슴속 깊은 곳에 사표를 묻어두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이혼을 꼬깃 접어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두겠다 다짐했다.
누군가 내게 이 세상에서 가장 하찮고 우스운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그건 바로, 나의 의지."
라고.
내가 인큐베이터에 손을 올리고 했던 그 뜨거운 다짐은 우습게도 한 달도 채 가지 못해 무너졌다.
우리는 산후조리원에서부터 다시 싸워댔고, 그 지옥 같았던 우리의 신혼집으로 아기와 함께 돌아가 공포의 신생아 육아를 하면서도 틈틈이 싸웠다. 그러면서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역시 우리는 함께 사는 게 처음이라서, 또는 연애 기간이 너무 짧아서, 또는 임신 중이라 예민해서, 몸이 너무 고되고 힘들어서 싸우는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그저 서로를 미워하고, 상대방과의 결혼을 후회했다. 각자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가슴 치며 후회하면서도 바로잡을 용기가 없어 ‘아이’를 정신승리의 매개체로 활용해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가 점차 커 갈수록 이혼의 실행은 어려워졌음에도, 공동 육아를 목적으로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부딪히게 되니 갈등은 증폭됐다. 우리는 급기야 눈이 마주치고 손이 스치는 모든 순간 으르렁댔고, 그때마다 서로에게 ‘너와의 결혼은 내 인생의 최악의 결정’이고, ‘아이가 아니라면 너와 단 하루도 살 이유가 없으며’, ‘이혼은 꿈에 그리는 소원이지만 아이를 위해서 참고 사는 중’이라는 말을 일심동체로 읊어댔다. 이혼에 있어서 만큼은 우리는 일심동체를 넘어 영혼의 단합을 이루었다.
그렇다. 우리는 이혼을 열망했고, 그게 불가능한 현실을 원망했다. 죽도록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죽도록 미워하는 사람과 죽도록 힘겹게 함께 사는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정작 아이에게 화목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주기 위해 서로가 반 발꿈치도 물러서지를 못했다. 우리는 그렇게도 심하게 덜된 인간들이었다.
아이가 잠든 밤, 나는 홀로 책상방에 틀어박혀, 차마 가지 못하는 길을 바라보며 일기장에 시를 썼다. 소망과 염원과 회한과 탄식을 펜 끝에 가득 담아 한 글자 한 글자 종이 위에 꾹꾹 눌러 적었다.
<소원>
우리의 소원은 이혼
꿈에도 소원은 이혼
이 정성 다하여 이혼
이혼을 이루자
이혼이여 어서 오라
이혼이여 오라
나는 실제로 한동안 이 노래를 잠들기 전에 곧잘 부르곤 했다.
내가 얼마나 이혼을 소망했는지, 당신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오직 아이를 위해서'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함께 사는 희생을 감내하면서도, '아이를 위해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 리스트의 첫 번째 항목인 '부부싸움'만은 규칙적으로 꾸준히 해댔다. 이렇게 일 년쯤 지나자 나는 나의 이런 모순적인 삶에 신물이 났다. 하나 나의 신물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돌 무렵이 되니 말로 표현하지 못할 뿐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말을 알아듣기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눈치가 빤해졌다는 것이었다. 나는 나와 남편이 서로를 증오하면서도 덮어두고 '그래도 아이를 위해서 잘 살아보세'를 모토로 무식한 버티기를 시전 하는 것이 더 이상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님을,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은 어떤 노력으로도 행복한 가정은커녕 정상적인 가정도 이 아이에게 줄 수 없음을 힘겹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나 혼자 살던 30여 년 간의 인생에서는 나의 의지가 가장 중요했다. 내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필요한 자원을 투입하고, 죽도록 인내하고, 어떻게든 길을 찾으면 되었다. 그때는 오직 '나' 하나만 통제하면 되었다. 하지만 남편과 아이, 이렇게 내가 온전히 통제할 수 없는 대상이 둘이나 생긴 내 인생 앞에 내 노력이나 의지 따위는 철저히 무력한 것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깊은 무기력증에 빠졌다.
내가 나의 덜됨과 의지의 무쓸모, 통제 불가능한 '나의 것'들에 대한 무기력감을 하나씩 깨닫고 받아들이는 동안, 내 아이는 아장아장 걷고 뛰며 사람들의 말을 다 알아듣고 몇 가지 단어를 말할 수도 있는 그야말로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고 하루하루 더 사랑스러워졌다. 이렇게 사랑만 쏟아부어도 모자랄, 아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다툼과 미움과 증오를 가르칠 수는 없었다. ‘아이 때문에’라는 얼핏 숭고한 희생으로 포장될 수도 있는 비겁한 명목을 내걸고는, 서로의 인간성과 행복과 삶 자체를 끊임없이 갉아먹는 상호자해를 더 이상은 지속해서는 안되었다. 나는 더 이상 비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나는 내 남편과의 결혼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고 모든 것을 감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인격은 되지 못하며, 그로 인해 아이의 정서에 있어 ‘부모의 이혼’보다도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끊임없는 가정 불화’를 제공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더불어, 나 자신을 누구보다 가장 먼저 소중히 돌봐야 할 나 자신이 내 황폐한 영혼을 돌보지 않은 채 방치하는 죄를 저지르고 있음도 함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잡자. 지금 같은 삶의 반복은 어떤 것도 나아지게 해주지 않는다. 행동하고, 앞으로 나아가자.
두려워하지 말자. 나에게는 전적으로 나를 응원해 주는 가족도, 평생 사업을 함께해도 좋을 파트너인 친구도 있다. 난 ‘좋은 남편’ 이란 것을 빼고는 모든 것을 다 가졌으니, 다 괜찮다.'
이렇게 마음의 결정을 하니 마음과 몸이 모두 한결 홀가분해졌다. 그리고 이윽고 마음의 결정을 한 나에게는 아이가 듣는 동요마저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뒤뚱뒤뚱 펭귄>
뒤뚱뒤뚱뒤뚱 아장아장아장 나는야 귀여운 펭귄
뒤뚱뒤뚱뒤뚱 아장아장아장 나는야 귀여운 펭귄
씽씽쌩쌩 바람 불어도 뒤뚱뒤뚱 쿵 넘어져도
울지 않아 나는 용감해 씩씩하게 바다로 갈 거야
뒤뚱뒤뚱뒤뚱 아장아장아장 나는야 귀여운 아기 펭귄
계속해서 노래를 듣고 있자니 순간 마음속에서 울컥 무언가 솟았다.
그래, 귀여운 아기 펭귄도 바람 불고 넘어져도 울지 않고 씩씩하고 용감하게 바다로 간다는데,
하물며 나는 엄마이지 않은가. 그야말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나아가리라.
이혼녀와 싱글맘의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