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결혼기념일에 이혼하기 06.
임신 8개월 차. 나는 임신 전보다 25킬로그램이 불어난 몸으로 서울 성동구 집에서 판교 회사까지 약 30km의 거리를 주 5일 왕복하며, 회사에 출근해서는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화장실만 겨우 왔다 갔다 할 정도로 격무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회사동료들은 갑자기 영화 속 뚱뚱보 특수 분장을 한 것처럼 몸이 불어난 채 동네 뒷산만큼 부른 배를 부여잡고는 컴퓨터 앞에서 움직임도 없이 일하다 몇 시간 만에 한 번 화장실 갈 때나 일어나는 나를 보고 정말 괜찮은 것인지 진심으로 걱정하며 묻곤 했다. 나는 대중교통은 탈 엄두도 나지 않아 자가용 출퇴근을 했는데, 출퇴근 교통지옥을 피하기 위해 자율출퇴근제도를 이용해 주로 7시 출근-4시 퇴근을 했다. 4시에 퇴근해서 집에 오면 5시, 저녁을 먹고 나면 다음날 5시 반 기상을 위해 빨리 잠에 들어야 했다. 이렇게 바쁘고 여유가 없는 와중에서도 우리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싸워댔다. 싸움에 대한 그마만큼의 열정이라면 아마도 세상을 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만큼 우리는 싸움에 열과 성을 다했다.
싸움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상대가 함께 받아치지 않는다면 싸움이 될 수 없는 법이다. 나는 코끼리의 몸집과 펭귄의 걸음걸이를 가지고, 그 몰골로 새벽 다섯 시 반에 출근을 하고는 녹초가 된 채 퇴근하자마자 곧장 쓰러지는 만삭의 아내와 그토록 치열하게, 한 번의 물러섬 없이 함께 똑같이 싸워대는 남편을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었다. 이러다 애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저 애 아빠라는 인간은 걱정도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건 더 이상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남편의 태도는 내 아이에 대한 '위협'이었고 '공격'이었다. 자기 아이이기도 한 뱃속의 아이를 위협하는 그는 내게 있어 남편은커녕 아이 아빠도,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산달을 향해 가고 있는 만삭의 직장인 임산부에게 이혼은 미뤄야 할 숙제였다. 일단은 연차를 활용해 병원에 가는 것도 빠듯하여 변호사를 만나거나 법원에 갈 시간도 없었거니와, 회사를 다니며 짬짬이 출산 준비를 하는 것도 버거웠다. 마음은 하루에도 수백 번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대지만, 머리로는 지금 이 상황에 그런 생각을 하다니 정신 나간 짓이다, 하더라도 애를 낳고 찬찬히 하는 게 맞는 거지,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출산을 앞두고 아이와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려야 할 만삭 임산부가 아이만 나오면 드디어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이혼의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나는 나이 때문에 고위험군 산모로 구분되어 임신 후기에 접어들면서 병원을 일주일 간격으로 방문해 체중과 아이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다. 어느 날 늘 그렇듯 병원에서 체중을 쟀는데 정확히 일주일 만에 체중이 5킬로그램이 늘어있었다. 나의 놀라운 체중 변화에 담당 교수님은 체중계가 이상한 것 같다며 체중을 다시 재고 오라고 주문했고, 체중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날 나는 임신중독증 판정을 받았다.
'임신중독'
TV 드라마에서나 봤을법한 단어가 나의 병명이 되었다. 임신 중독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특정할 수 없고, 그 치료법은 더 가관이다. 바로 ‘출산’. 출산 외에 이 병을 치료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이래서 목숨 걸고 아이를 낳는다고들 하는 것이군',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임신중독증 선고도 우리의 전투 본능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25킬로가 불어난 육중한 몸으로 서울-판교 출퇴근을 하며 격무에 시달리다 못해 임신중독증까지 얻은 나는, 몸은 너무나 힘들었지만 정신만은 또렷했다. 회사 업무도 그 누구보다 잘 해내고 있었고, 많은 양의 업무도 조금도 남에게 미루거나 넘기지 않고 보란 듯이 소화해 냈다. 비록 쌀통만 한 배를 하고 서서 샤워하는 십분 남짓한 시간이 너무 힘들어 잠시 운 적은 있어도 알 수 없는 우울감에 울어본 적은 없었다. 내 몸은 비정상일지언정 내 정신과 감정은 멀쩡했다. 그 멀쩡한 정신으로 아이를 낳는 즉시 남편과 이혼한다는 계획만 세우고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산모들의 필수 아이템 중에는 '육아 대백과'라는 책이 있다. 다른 산모들이 훌륭한 육아를 위해 끼고 공부하는 필수 육아 교과서를 나는 보다 훌륭한 이혼 계획을 세우기 위해 적극 활용했다. '신생아'의 시기는 생후 몇 개월까지인지, 또 언제쯤 아이가 엄마와 아빠를 인식하게 되는지.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최대한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을만한 적절한 시기에 이혼을 하는 똑소리 나는 싱글맘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계획했다. 이쯤 되면 내가 지옥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나의 이런 내면을 자각하게 될 때면 차라리 내가 유약한 인간이었더라면 좋았을걸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동안 인생을 단단히 버티게 해 주었던 나의 '독기'가 새삼 대하기 불편한 친구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이혼 보류' 생활을 이어가던 중 꿈에 그리던 육아 휴직일이 다가왔다.
내가 정말 일을 쉬게 되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제 나도 평일 낮에 동네 산책도 다니고 책도 읽으며 여유를 즐겨봐야지.’ 생각하면 세상을 다 가진 것 마냥 행복했다. 그저 출산이 임박해 법정 출산 휴가를 받았을 뿐인데도, 그간의 나의 외롭고 처절했던 '이혼하지 않고 버티기'에 대한 보상처럼 달게 느껴졌다. 그래, 정말 지독히도 열심히 살았고, 지난 일 년간 벌어진 일들은 가히 폭풍 같았으며, 최근 몇 달 동안은 정말이지 몸과 마음이 다 지쳤다. 그러니 이제 조금 쉬자. 그렇게 임신 초부터 달력에 휴직일을 표시해 두고 매일매일 '출산 D-Day'가 아닌 '출산 휴가 D-Day'를 헤아리던 나의 꿈의 휴직날, 회사 동료들의 따뜻한 응원과 배웅을 받으며 근 30킬로그램이 불어난 몸집으로 뒤뚱뒤뚱,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털같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뿐사뿐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그날 그 산뜻한 퇴근 후 또 나는 남편과 휴직 기념 전투를 벌였으며, 늦은 밤까지 이어지던 전투 중에 나는 하혈과 복부통증으로 응급실에 입원했다.
병원에서는 조산 위험이 높아서 출산 예정일까지 자궁 수축 억제제를 맞으며 누워있기만 해야 한다고 했다. 수축이 잡히지 않으면 어쩌면 출산 예정일 근처까지 근 한 달 내내 입원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아니, 당장 내일부터 나는 이사 온 지 일 년 가까이 산책도 못해본 동네 나들이와, 낮에 혼자 카페에서 디카페인 커피 마시기를 실행에 옮겨야 하는데 입원이라니. 게다가 조산 위험이라니. 나는 절망했다. 로마의 휴일에 버금가는 출산 전 휴가를 꿈꾸었는데, 그 꿈이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다. 꿈은 그저 꿈일 뿐인 것일까. 나는 심한 자궁 수축 억제제 부작용으로 드디어 남편과의 전투에서 전의를 상실하는 순간을 경험했다. 병원에서는 조산의 위험 때문에 많이 움직이지도 말고 침대에 누워만 있을 것을 권했고, 쌀포대만치 크고 무거운 배를 안고 침대라는 명칭을 붙이기도 아까운 병원 침대에서 4박 5일을 꼬박 누워있자 자궁수축은 나아졌지만 나는 심각한 전신 근육통을 얻었다. 나는 담당 교수님에게 제발 집에만 보내달라고 통사정을 한 끝에 겨우 퇴원할 수 있었고, 기쁜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또 퇴원 기념으로 싸웠다. 꿈에 그리던 출산 휴가 당일에 응급실에 실려와 입원을 하고, 약물 부작용과 근육통으로 만신창이가 된 채 가까스로 퇴원 허가를 받고는 행복해하는 만삭의 아내와 함께 싸워줄 수 있는 신비로운 괴생명체가 바로 나의 남편이었다.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은 괴생명체에게 나는 네가 과연 인간이라는 종족에 속하긴 하는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만삭의 임신중독 아내에게 이럴 수 있는지에 대해 오늘은 반드시 이해 가능한 답을 들어야겠다는 심산으로 따져 물었고, 더 이상 상대하기도 싫다는 표정으로 일관하던 그 생명체는 이내 또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 순간, 응당 분노로 활활 타올라야 마땅할 나의 뇌는 일순간 학자의 그것과 같이 냉철하고 예리하게 내 눈앞의 생명체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사이코패스'
이 전문 용어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생동하는 샘플이 바로 나의 남편인 듯싶었다.
첫째, 감정적 결함
타인의 고통이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함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함
타인의 감정에 무관심하며 자신도 감정을 잘 느끼지 않음
둘째, 행동적 특징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함
셋째, 자기중심적 성향
자신만을 중요시하며, 타인의 필요나 감정을 무시함
내가 지금껏 저런 생명체에게 대체 어떤 종류의 사과를 받고 무슨 해명을 듣겠다고 부른 배를 부여잡고 목청을 높여왔던 것인가 일순 허탈감이 몰려왔다.
더 이상 너 같은 사이코패스와는 살지 않겠다. 이제는 낮에 법원 갈 시간도 있겠다, 잘 되었다.
출산 예정일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 아이가 나오기 전에 이혼 도장을 찍게 되면 이 아이는 너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아이가 되리라.
그렇게 출산 전에 이혼을 하고 나는 네가 이 아이의 얼굴도 못 보게 할터이니, 행여 일부 사이코패스에게 드러난다는 부정(父情)이 싹트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너와 철저하게 남이 될 것이고, 내 아이는 처음부터 아빠가 없던 아이가 될 것이다. 아빠와 같이 살다가 이별하게 되어 어렴풋한 기억에 남은 아빠를 그리워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면서 나는 내 인생이 철저히 외롭다거나 불쌍하다거나 안쓰럽다거나 하는 감정을 느낄 겨를도 없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생각을 숨 쉬듯이 하는 나의 뱃속에서 웅크린 채 세상 밖으로 나올 날 만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에 대한 엄청난 죄책감에 압도되었다. 그리고 그 견딜 수 없이 무거운 죄책감은 더욱 큰 불화살이 되어 남편을, 그의 심장을 겨누었다. 하지만 내가 그 어떤 것을 그의 어느 곳에 겨누든 그는 모든 순간에 졸거나 잤다. 코까지 골면서.
나는 할 말도 싸울 의지도 잃은 채 임산부의 본분으로 저녁도 먹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 약물치료를 중단해서인지 다시 복부 통증이 시작되었고, 고통은 점점 심해져만 갔다. 밤새 산통 비슷한 복통에 시달리면서 나는 아이가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보다는 '날이 밝으면 병원이고 뭐고 법원부터 가서 기필코 이혼을 하리라'며 이를 갈았다. 그렇게 고통으로 침대를 구르며 신음하는 내가 걱정조차 되지 않는지 남편은 거실에서 밤새 코를 골며 잠을 잤다. 그에게 사이코패스 판정을 내리고는 잠시 잠잠해졌던 내 머리가 다시 분노에 휩싸였다.
날이 밝아올수록 배의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아직 34주밖에 안되었으니 산통일리도 만무한데, 간격을 두고 몰려오는 통증이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몰랐다. 급기야는 지독한 덫에 걸린 들짐승처럼 고통스러운 울음소리를 내며 바닥을 기어 다닐 지경이 되었다. 나 스스로도 그 당시를 회상하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지만, 나는 그 와중에서도 배를 부여잡고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뒤늦게 잠에서 깨어나 발견한 나의 사람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소리와 움직임에 화들짝 놀란 남편은 일단 병원에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너와는 병원에 가지 않겠다', '이 아이는 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당장 이혼이나 하러 가자'며 통증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모를 소리를 질러댔고, 나의 사이코패스 남편은 '그래, 그러자. 일단 이혼을 하려면 양가 부모님께 말씀을 드려야 하니 네가 정말 병원에 안 가도 된다면 지금 당장 양가 부모님이 계신 용인으로 가서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고 이혼을 진행하자'라고 했다. 통증과 분노로 짐승모드가 되어버린 나는 진심으로 양가 부모님 댁이든 법원이든 당장에 달려가 내 눈앞의 또 다른 짐승과의 악연을 1초라도 빨리 끊어내고 싶었지만, 그 사이 배의 통증은 점점 심해져 눈이 뒤집히고 숨을 못 쉬며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사태가 심각해지니 남편은 조금 정신이 들었는지 일단 병원에 가자고 했다. 나는 '나는 아이에게 사이코패스 아빠를 줄 수 없다. 이 아이는 너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 너와는 절대 병원에 가지 않겠다'라며 버텼다. 통증은 나의 분노와 한 몸이 된 것처럼 점점 거세졌다. 몇 분 간격으로 집채만 한 파도처럼 통증이 밀려오면 나는 견딜 수 없어 소리 지르며 몸부림쳤다. 잠시 혼미해졌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남편 차에 탄 채 병원에 가고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산통을 겪는 여느 산모들처럼 "으아아아악" 고통에 겨운 비명을 지르다가 얼마 후 진통이 잠시 물러나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가는 또다시 "으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었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통증은 더욱 거세져 나는 인간 고유의 수치심도 잃은 채 응급실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병원 측에서 남편은 응급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 터라 혼자 누워 짐승의 표호를 하고 있는 나의 상태를 확인한 의사가 다가와 갑자기 지금 당장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말했다. 너무 놀란 나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제 34주 밖에 안 됐는데, 지금 아이를 낳는다니요... 그럼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사자의 울음을 울다 갑자기 토끼눈을 하고 묻는 나에게 의사가 말했다.
“인큐베이터에는 무조건 들어가야겠지만 그래도 그나마 아이가 꽤 커서 괜찮아 보여요. 그리고 뭣보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어요. 바로 수술해야 해요.”
이후에는 응급실 침대 한 칸을 차지한 울부짖는 들짐승이 손에 펜을 들고 의사의 설명을 들으며 간혹 질문도 해가며 다양한 동의서에 스스로 서명을 하고, 설명과 서명이 오가는 동안 동시에 간호사들이 침대 위 짐승에게 여러 가지 처치를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리고는 금세 나는 침대째 옮겨졌다. 침대에 실려 응급실을 나서는데 응급실 문 앞에서 기다리던 남편은 내가 침대에 실려 급히 어디론가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는 담당 의사에게 다급히 이유를 물었다. 또 그 자궁 수축 억제제라는 이름의 망할 부작용 주사나 맞겠지, 그럼 당분간은 싸울 일이 없겠네 하는 생각으로 아쉬워하며 처분만을 기다리던 응급실 밖의 금수는 별안간 의사로부터 '당신의 임신 34주 밖에 안된 부인이 지금 수술하러 가는 길이에요'라는 말을 듣고는 아연실색하여 질문인지 항의인지 모를 말을 해대고 있었다.
“수술요? 지금...? 아기는... 지금요? 아니 이게 무슨…..”
나는 침대에 실려 이곳저곳을 들렀다. 엘리베이터도 몇 번 탔다. 이동 침대의 종착지인 수술실 문 바로 앞에서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우린 똑같이 걱정과 두려움, 당황스러움과 망연자실함이 뒤섞인 전형적인 패배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패배자라기보다는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범죄 가해자의 얼굴에 더 가까웠다. 아이로 하여금 도무지 편안하게 뱃속에 있을 수가 없어 차라리 목숨 걸고 빨리 세상 밖으로 나오는 편을 택하도록 만든, 그래서 이토록 위험한 시도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든 부모라는 이름의 가해자 일당이 자신들이 벌인 일을 앞에 두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 후회와 자책, 죄책감과 두려움을 알차게 실은 얼굴로,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우린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난 그대로 수술실로 실려 들어갔다.
믿어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날 그렇게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이를 악물고 다짐했다.
‘이 모든 게 다 너 때문이야. 내가 이 수술실에서 나오는 순간 너와 나는 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