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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라잎 Nov 27. 2024

이혼 신청에 대하여-나. 이혼 사유에 관하여(1)

두 번째 결혼기념일에 이혼하기 05.

내가 그간 외롭게 또 열심히 산 덕에 종국에는 천국에 온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던 열흘의 신혼여행과 그 후 이어진 천국의 꿈같은 신혼은 딱 두 달 지속되었다.

나는 당장 출산해도 노산인 나이에 결혼을 했기에 당시 친구의 권유로 결혼 직후 난임병원에서 남편과 함께 난임 검사를 받았고, 병원으로부터 난임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난임 판정을 받은 지 채 한 달도 되기 전에 임신을 했다. 결혼한 지 꼭 두 달 만이었다. 우선은 감사한 마음부터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얼떨떨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우리는 처음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을 약속하고, 4개월 후에 결혼식을 올리고 2달 후 아이를 가졌다.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들이 고작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몰아치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내게 일어나고 있던 모든 일들에 대해 확신은 물론이거니와 제대로 된 의심조차 할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일생일대의 일들이 순식간에, 순차적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 중 어떤 것에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실질적인 준비는 고사하고 마음의 준비조차도 말이다. 이래서 계획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아무리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그래도 계획을 세우며 어떠한 형태로든 미래를 한 번쯤은 그려볼 수 있고, 그렇게 시각화를 통해 가상의 경험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은 준비가 되기 때문이다. 30대 후반이 되도록 인생 계획 따위는 내팽개쳐두고 부질없는 커리어에만 목매달던 얼뜨기여, 네가 너 자신에게 건 저주를 달게 받으라.


얼뜨기의 저주란 일단 자신이 얼뜨기 짓을 했다고 알아차린 순간, 그것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생각 한 가지밖에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일단 벌어진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얼뜨기 짓을 했음을 인정하고, 벌어진 일을 수습하고, 해결 방안 또는 현재 상태에서 긍정적인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일 따위는 결코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다. 얼뜨기의 저주에 걸린 자는 단 하나의 인생 목표를 가지게 된다. '저지른 얼뜨기 짓을 당장 실행 취소하라.' 과연 얼뜨기의 저주는 강력했다. 그 위력만큼은 이름처럼 얼뜨지 않았다.




얼뜨기의 저주에 걸린 얼뜨기가 결혼 실행 취소를 위해 이혼 조정 신청서를 쓰고 있었다. 나는 아무리 조정 신청서 상의 항목을 작성하는 것이라지만 네 살 배기도 아니고 사십 살배기를 앞둔 마당에 싸움을 누가 시작했고 왜 싸웠는지, 둘 중 누가 더 치졸했으며 누가 좀 더 납득이 되는지에 대해 변호사 또는 판사에게 일방적인 고자질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우리의 싸움이 아니라 파경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마흔이 다 되도록 서로의 존재조차도 모르던 남녀가 서로를 알게 된 지 일 년도 채 안된 상태에서 별안간 부부가 되어 한 집에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 해도, 우리의 경우에는 상태가 심각했다. 꿈같은 신혼 생활이라 해도,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하니 서로 얼굴 마주할 시간도 별로 없었거니와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임신을 하면서 그나마 함께 있는 시간에는 병원 검진을 가거나 그게 아니면 나는 몸조리를 한답시고 초저녁부터 잠에 들곤 했다. 그렇게나 서로 부딪힐 시간이 없었는데도 우리는 틈만 나면, 어떠한 사소한 일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이 매번, 열심히 최선을 다해 시간을 내서 성심성의껏 싸웠다. 회사에서 하루종일 일을 하니 서로 맞닥뜨릴 시간이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남편이 (임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차로 나를 회사까지 데려다줄 때 차 안에서의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을 적극 활용해 싸웠고, 그 시간으로 제대로 된 전투를 치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여 출근해서는 카카오톡으로 싸웠다. 하루 종일 붙어 있을 수 있는 황금 같은 주말에는 1박 2일에 걸친 전면전을 치렀다. 임신 즈음부터 시작된 우리의 전투는 처음에는 약 이주 간격이었으나 곧 일주일 간격으로 짧아졌고, 그러다 보니 전투 후의 '냉전 기간'까지 고려하면 일주일 중 전투 또는 냉전 기간이 아닌 날을 찾아볼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싸움 주기를 점차 짧게 업데이트해 가는 동안 나는 임신 후기에 접어들었다.


출산을 앞둔 몸으로 내가 기필코 이혼을 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잦은 싸움도, 싸울 때면 서로 정겹게 주고받는 졸렬한 말들도 아니었다. 단 한 가지만 제외하면 우리는 그저 '상극인 남녀의 잘못된 만남과 파국을 면치 못하는 부부싸움의 전형'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의 상투적인 싸움에는 결코 전형적이지 않은 패턴이 하나 존재했으니, 그것은 바로 아드레날린이 최대치를 찍는 그 극한의 전투의 순간이면 어김없이 꾸벅꾸벅 조는 남편이었다. 남편은 싸움이 격해지며 길어지면 어김없이 내 앞에서 졸았다. 그렇다. 지금 이렇게 부부싸움을 논하는 맥락에서는 필시 '졸았다'라는 동사보다는 '쫄았다'는 표현이 더 자연스러울 것임이 분명할 텐데도, 그는 쫄긴커녕 '졸았다.' 어김없이, 한 번도 빠짐없이, 항상.

말싸움 중 내가 내 안에 치솟은 분노의 불길을 나에게 몇 가닥 남지 않은 이성으로 다스리느라 잠시 사자의 그르렁거림과 유사한 심호흡을 하고 앉아 있는 순간에도,

지금 내가 과연 한국인과 한국어로 대화를 하고 있는 게 맞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의심하며 살기에 가득 차 남편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순간에도,

남편을 향한 인격모독적 발언을 숨도 안 쉬고 매우 빠르게 그리고 쉴 새 없이 쏟아내다 '내가 과연 래퍼가 될 상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잠시 속사포 랩을 멈춘 그 순간에도 남편은 꾸벅꾸벅 졸았다.


여기까지 내 하소연을 들은 누구든, 남편이 혹시 평소에 너무 피곤한 것은 아닐지, 일이 많아 자주 밤을 새운다거나 불면증으로 잠을 설치는 탓에 시간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조는 것은 아닐지 하는 타당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타고난 허약 체질로 원체 기가 부족해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헛웃음이 나올만치 남편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매일 밤 나와 함께 자는 남편은 절대, 결코 수면시간이 부족하지 않았고, 친형과 조그마한 사업을 하면서 대부분 재택근무를 했기에 극한의 출퇴근 지옥도 없었을 뿐 아니라, 초과 근무도 전혀 없었다. 신혼과 겹친 아내의 임신으로 술자리도 거의 만들지 않았기에 그토록 아무 때고 졸만큼 피곤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체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타고나기를 평생 감기도 몇 번 걸려보지 않은 모태 튼튼이였다. 그런 말짱 튼튼한 사람이 내가 극한으로 씩씩대는 순간마다 졸려 못 견디겠다는 듯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 애쓰며, 결혼한 지 몇 달 만에 점점 배가 불러오는 아내로부터 이혼 통보를 받는 그 엄중하고도 지탄스러운 상황에서도 매번 졸고 앉아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돌아보면 남편은 그 '극한의 순간에 졸기' 신공을 결혼 전부터도 충분히 뽐낸 바 있었다. 그는 소개팅 후 첫 데이트 날(무려 크리스마스였다) 처음으로 영화를 함께 보던 그 설레는 순간에도 열심히 졸았고, 나에게 사귀자고 고백을 하던 날 함께 갔던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도 나와 얘기를 하던 중 깜빡 졸았으며(그때 바다를 보며 고백을 하려고 했다고 한다), 결국 (조는 바람에) 산통이 깨져 고백은 못하고 같이 영화를 보러 가서는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꿀잠을 잤다. 나는 고백을 앞둔 남자가 어떻게 저토록 졸거나 꿀잠을 잘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으나, 당시에는 그저 성격이려니 했다. 하지만 함께 있으면 설레는 이성을 옆에 두고도 꾸벅꾸벅 조는 것까지는 어떻게 이해를 해보겠다 쳐도, 임신한 아내가 부른 배를 부여잡고 이혼을 외쳐대는 그 극한의 상황에서 꿀잠을 자다니, 이건 얘기가 다르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위험이나 긴장을 느끼는 순간에 고도의 각성 상태에 들어서는 것은 본능이고 상식이다. 회사의 압박 면접 도중 졸았다거나, 본인 결혼식 주례를 들으며 졸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남편에게는 결코 수면 부족이나 건강 이슈가 없었다. 그렇다면 나와 함께하는 모든 중요한 순간에, 심지어 이혼을 부르짖으며 싸울 때조차 남편이 졸 수 있는 이유는 결국 다음의 두 가지의 이유로서만 설명될 수 있을 터였다. 그가 나뿐 아니라 나와의 관계와 결혼, 내 뱃속의 아이를 무가치하게 여기기 때문이거나, 그가 일반인들이 느끼는 어떤 종류의 감정에도 공감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이기 때문이거나.


남편이 둘 중 어디에 속하든 내가 그와 함께 살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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