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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류 딱지 전화 후, 말문이 막혔다

by 마케팅김이사

평범한 하루였다. 아니, 평범하다고 믿고 싶었던 하루였다.

별일 없이 흘러가는 하루들이 이렇게 소중할 줄 몰랐다. 그저 당연하게 여겨왔던 일상의 무게를 그날에서야 깨달았다.


전화벨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지만 습관처럼 받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고객님 댁에 압류 딱지를 부착하러 갈 예정입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워지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내가 얼마나 나약한 사람인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가 명확하게 보였다.


전화기를 든 손이 떨렸다. 아니, 온몸이 떨렸다.

전화를 끊고도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휴대폰을 꽉 쥔 채로, 마치 그것이 나를 현실로 끌어당기는 닻이라도 되는 것처럼.


집안에서는 아내가 조용히 살림을 하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그녀의 모습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 평범한 일상을, 이 소소한 행복을 내가 망쳐버렸다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여보, 우리 이제 정말 끝인가봐..."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그녀의 등을 바라보며 혼자만의 절망에 잠겼다.


3년 전, 그 믿음의 시작

기억이 선명하다. 3년 전 그날도 이렇게 평범한 하루였다.

"저만 믿으세요. 6개월 안에 갚을게요."

그 사람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그때의 나는 정말 순진했다. 아니, 순진하고 싶었다. 그 믿음이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진짜라고 믿고 싶었다.


아내에게 했던 말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괜찮아. 내가 아는 사람이야."

그 말로 그녀의 불안을 누르려 했고, 동시에 내 불안도 누르려 했다. 하지만 불안은 예감이었고,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5

천만 원.

숫자로는 간단하지만 우리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였다. 그 무게가 우리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포기라는 이름의 현실

소송을 하려고 했다. 정말 열심히 알아봤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다니고, 고소장을 써보고, 이기는 방법을 찾아봤다.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보다 잔혹했다.


몇 백만 원의 변호사 비용, 재산이 없다는 그 사람의 상황,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과 에너지를 다 쏟아도 돌아올 건 없다는 냉정한 계산.


결국 포기했다.

포기라는 말이 이렇게 무겁고 쓸쓸할 줄 몰랐다. 그리고 그때부터 연체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문자였다. 정중하지만 서늘한 문구들이 핸드폰을 울렸다. 그다음은 전화였다. 점점 더 강해지는 어조, 점점 더 짧아지는 유예 기간. 그리고 마침내 직접 찾아오겠다는 통보.


정지된 시간 속에서

그날의 나는 정지된 사람이었다.

입을 열 수 없었고, 가슴은 답답했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터널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았다. 뒤로 갈 수도, 앞으로 갈 수도 없는 그 막막함.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이 말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답 없는 질문이 끝없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아무 말 없이 다시 밖으로 나갔다.

일은 해야 하니까.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아무 일도 없던 하루처럼. 그렇게 또 하루를 버텨내야 했다.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그것이 내가 선택한 버텨내는 방식이었다.


때로는 인생이 우리를 벼랑 끝에 세운다. 그곳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떨어질 것인가, 다시 일어설 것인가. 그 선택의 순간에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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