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찌지 말기로 해

by 김자혜




38년 전, 엄마는 하마터면 요단강을 건널 뻔 했다. 그해 시월 어느 날 4.5kg 우량아로 태어난 나 때문이다. 병원 역사상 가장 무거운 신생 여아였다. 간호사 한 명이 엄마의 배 위에 올라타 우량아를 밀어냈고 엄마는 꼴딱꼴딱 넘어가는 숨을 붙들어 잡고 안간힘을 썼다. 거대한 둘째딸을 자연분만으로 출산한 순간, 엄마는 방금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뒤 몸을 추스르고 신생아실로 갔는데 쭈글쭈글 새빨간 아기들 사이에 웬 아이 하나가 살이 통통하게 오른 뽀얀 얼굴을 하고는 힘차게 울고 있었다. 엄마는 신기해하며 그 아이를 지켜보았단다. 어머, 저 아기는 태어난 지 몇 주는 되어 보이네! 그것은 나였다. 작은 키, 가냘픈 몸의 28세 산모는 얼마나 놀랐을까. 저 커다란 인간이 좀 전까지 내 뱃속에 있던 것이라니.


시월의 내 생일 즈음이 되면 엄마는 종종 그날의 출산 경험을 이야기해준다. 그것은 마치 퇴역 군인이 들려주는 영웅담처럼 들린다. 하긴, 죽을 각오로 싸우고 살아 돌아왔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긴 하지만. 아무튼 커다랗게 태어난 나는 지금도 크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동안은 체구가 작아 맨 앞줄에 앉았지만, 매일 밤 벼랑에서 거꾸로 떨어지는 꿈을 꾸는 시기를 지나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20cm 이상 자라서 반에서 가장 키 큰 아이가 됐다. 고등학생 때는 사복을 입으면 버스를 탈 때 성인 요금을 냈다. 싸우는 게 싫었고 창피했다. 나의 너그러운 성장판은 오랫동안 열려 있다가 26세가 되어서야 겨우 닫혔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키로 따지면 나는 반에서 1등이었고 나와 가장 친한 친구는 2등이었다. 어느 날 2등이 진지한 표정으로 다가와 약속 하나 하자고 했다. “자혜야 우리는 절대로 살찌면 안 돼. 키가 이렇게 큰데 살이 찌면 정말 거대할 것 같지 않니? 우리 살찌지 말기로 약속하자.”

웬 뚱딴지? 나는 그 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기꺼이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귓속말과 공감과 둘만의 약속. 십대 여자 아이들의 우정이란 모름지기 그런 것이니까. 그 아이와의 약속 때문인지 나는 지금까지 살이 찌지 않고 늘 같은 체격을 유지해 왔다. 마른체형과 보통체형의 중간쯤이랄까. 가을 지나 겨울이 다가오면 3kg 정도 늘었다가 다시 날이 더워지면 딱 그만큼 줄어들어 평균 몸무게를 유지하는 식이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슬프게도 시간은 흘러 모두 공평하게 나이를 먹고 기초대사는 줄어들고 중력은 일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35세를 지나며 나는 몸의 변화를 선명하게 느꼈다. 앞가슴의 지방은 왜 등으로 향하는가? 엉덩이에 있던 살이 왜 옆구리로 옮겨가는가? 배꼽 밑이 원래 이렇게 두둑했던가? 겨드랑이 밑에 이 덩어리 들은 대체 뭔가! 이쯤 되면 몸의 무게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체지방과 근육량과 기초대사의 문제다. 알고 보니 30대 이후부터 살은 찌는 게 아니라 이동하고 재배치되는 것이었다. 근력이 약해지니 자세가 나빠지고 우울감이 찾아왔다. 작은 스트레스에도 크게 흔들렸다. 체력이 없이는 일상의 즐거움도 없는 것이었다.


요즘 집에서 운동한다. 운동법은 단순하다. 매트를 깔고 나이키 트레이닝 앱(NTC)을 실행한 뒤 앱이 시키는 대로 한다. 나이와 성별, 키, 몸무게 등을 적고 원하는 운동의 형태와 수준 등을 설정하면 일정 기간의 트레이닝을 설계해주는데, 성실하게 그 일정에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어떤 날엔 고난도의 서킷 트레이닝이, 어떤 날엔 빈야사 요가 플로우가 실행된다. 운동 시범을 보이는 나이키 마스터 트레이너들의 다부진 몸을 보는 것이 무엇보다 즐겁다. 그들의 근육 하나하나가 움직이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내가 바라는 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전에 내가 가졌던 미적 기준을 돌아보기도 한다.

아니, 아니다. 사실은 운동을 하며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은 없다. 뒤꽁무니 따라 잡기 바쁘다. 스트레칭 동작은 어찌어찌 따라한다 해도 스플릿 점프, 스쿼트 점프, 마운틴 클라이머 같은 운동을 따라 하다보면 숨이 넘어간다. 봉두난발의 정수리에서 김이 폴폴 난다. 그래, 내가 이 짐승 같은 내 모습을 보는 게 싫어서 헬스 트레이너와 이별하고 요가를 시작했었지! 화면 너머에서는 근육질의 언니오빠(는 분명 아닐 테지만 느낌상)들이 멈추지 마세요, 힘을 내세요, 끝까지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세요, 조금 더 버티세요, 거의 다 왔어요 같은 말을 반복한다. 감정이 없는 저 번역체의 파이팅을 듣다 보면 신경질이 뻗치지만 화를 낼 정신도 없다. 숨 쉬는 것만 안 놓치면 다행. 운동이 끝나면 나는 축축해지고 너덜너덜해진다.


축축하고 너덜너덜해진 날에는 하나의 문장을 붙잡아야 한다. 반복하면 나아진다. 힘든 운동을 한 다음날은 대개 회복일로 설정된다. 관절과 근육이 회복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그런 날에는 어깨와 허벅지와 코어의 근육들이 바락바락 고함을 친다. 어제 했던 운동의 각 동작들이 몸의 어느 부위를 단련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확인되는 순간이다. 어기적거리며 하루를 보낸 뒤 과연 앞으로도 이 운동을 계속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잠이 드는데, 어쩐지 다음날엔 이틀 전보다 수월해진다. 그렇다. 반복하면 나아진다.


2-3일에 한 번씩 체중계에 올라 몸무게와 근육량과 체지방, 기초대사량, 골밀도 등을 확인한다. 고맙게도 아직까지 모두 정상 범위에 있다. 운동을 할수록 체지방이 줄어들고 근육량이 늘어나는 것이 수치로 나타나니, 인간의 몸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를 먹으며 운동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남들 보기에 좋으라고 운동하지 않을 생각이다. 다만 씩씩하고 명랑하게 살아가고 싶다. 어딘가 고장이 나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운동하기 귀찮을 때면 죽을 각오로 나를 낳아 준 엄마를 생각할 것이다.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퇴역 군인에게 빛나는 훈장이 있다면, 엄마에겐 4.5kg 우량아로 태어난 내가 있다. 자신의 살아온 날들을 증명한다는 면에서, 자랑스러운 동시에 한구석 고통스럽고 짠하다는 점에서 비슷한 거 아닐까. 나는 엄마가 언제든 엄마의 훈장을 꺼내 자랑할 수 있도록 잘 닦아 보관하고 싶다. 그 첫 번째가 건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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