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가 가져다 준 행복

by 사고 뭉치




2년 전 일이었다. 내 마음 속 잔잔한 호수에 무심코 조약돌 하나가 던져졌다. 그저 잔물결 정도로 끝날 줄 알았던 평범한 사건 하나가 우리 부부의 일상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오호! 2편이 이 집에 있었네. 애들에게 읽히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됐다. 빌려가도 되지?”

“그래. 애들이 1편은 읽었나 보구나. 형부한테는 말해 둘게”


그렇게 처제는 내가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던 《 불편한 편의점 2 》를 빌려갔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 돌려 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조카에게 꼭 읽히고 싶다는 모정 가득한 명분으로 책은 내 곁을 떠난 후였다. 굳이 책을 돌려 달라며 재촉하는 형부의 모양새가 그리 좋아 보이진 않을 듯했다. 빌려가던 전날까지 졸린 눈을 비벼가며 막바지를 향해 달렸던 나로서는 이후 펼쳐질 내용이 몹시 궁금했다. 그렇다고 또 한 권을 구입하자니 애매했다.


순간 머리를 스친 것이 있었다. 슬리퍼를 신고 가도 될 거리에 도서관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서관을 가보았으나 인기 많은 책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미 다른 분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대기자들도 많아서 예약 자체도 가능하지 않았다. 아쉬움을 달래줄 책 몇 권을 빌려 집으로 향하려는 순간, 도서관 게시판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단순히 책을 읽고, 열람실에서 공부만 하던 공간이 아니었다. 백화점 문화센터처럼 다양한 교양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내게 숨겨진 재능을 알아볼 수 있는 자연스런 기회가 되었고, 무료인 경우가 많았다. 온라인 강좌에도 참여를 했는데, 그 중에 필사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2년째 이어가고 있다. 도서관을 방문하여 듣는 강좌에도 유익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 다만 대다수 여성들의 틈에 끼어 청일점으로 수강을 한다는 점 외에는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처제의 품에서 책은 영영 돌아올 소식이 없어서 허전하기만 했다. 그런 내 마음을 도서관은 다른 방법으로 채워 주었다. 기다림 끝에 내 손에 들어온 책이란, 어쩔 수 없이 헤어졌던 친구를 오랜만에 재회한 반가움 그 이상이었다. 대출이 늦어지면서 책 내용을 상상하며 기다리는 묘한 설렘도 느낄 수 있었다. 시민 모두가 당당한 권리를 지닌 공동 서재에서 드디어 내 순번이 된 것이었다.


책만 생각하면 반성할 일이 많다. 본래 책 수집가도 아니었을 텐데, 그동안 가지고 있던 책은 집구석에 잠자고 있거나 인테리어용으로 전락한 적이 많았다. 잦은 이사에 어쩔 수 없이 버려진 책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차라리 그때 체제가 빌려간 책처럼, 나 이외에도 누군가에게 작은 보탬이 된다면 그것이 오히려 바람직한 순환이나 나눔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문지방이 닳도록 도서관을 다니기 전, 우리 부부의 취향들만 모아 놓은 곳은 어디일지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주말이면 숲을 찾곤 했다. 마음이 호수처럼 잔잔해지고,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나무들처럼 움츠려들었던 마음도 펼쳐졌다. 하지만 하루에 한 가지만 즐기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다가 아내에게 주말마다 전국의 도서관을 다녀 보자는 제안을 했다.


대부분 도서관은 시설도 훌륭했고 아름다운 자연 환경에 안겨 있었다. 서가에 들어서면 서적들이 차분하게 도열하듯 반겨주는 정서적 분위기에 도취되곤 했다. 종이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책장을 넘길 때 사각거리는 소리가 귓전을 간질였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동안의 드라이브도 즐길 수 있고, 식당도 도서관 주변에서 찾아보곤 했다. 도서관이 생활의 중심이 된 지금, 우리를 반겨줄 공간은 전국에 있는 셈이 되었다. 폭염이나 한파가 닥칠지라도 우리를 품어주는 넉넉한 곳이다. 언젠가 이사를 한다면 도서관 위치가 집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될 듯하다. 말자하면 ‘북(Book)세권’이라고 해야 할까.


“은행도 대출을 하지만, 도서관 대출은 항상 뿌듯하고 좋아요.”

“카페보다 아늑하고 눈치도 주지 않는 곳이니 한번 들려 보세요.”

“아이와 부모가 함께 책 읽은 모습이 너무도 정겨워 보이더라고요.”

지인들에게도 우리의 아지트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나를 떠나간 책 한권이 일으킨 작은 물결이었다. 이제는 그 물결 위에 햇빛이 부서지며 우리 부부의 가슴에 일렁이고 있다. 우리는 몇 달치 데이트를 위해 전국의 ‘도서관 맛집’을 미리 물색 중이다. 벌써부터 주말이 손꼽아 기다려지는 이유다.


(2025년 7월말 기준으로 우리 부부가 최소 1번 이상 방문한 전국의 도서관은 66곳에 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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