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다섯 번째 여름 안에서

by 사고 뭉치

방송국도 최후의 수단을 꺼내 들었다. 음악 장르에 상관없이 라디오에서는 겨울 노래가 흘러나왔다. 급기야 크리스마스 캐롤까지 선곡되었다. 요 며칠 절정으로 치닫는 폭염과 열대아의 고통에서 잠시나마 떠나 있으라는 의도였다. 그 의도에 동참하고 싶어서 노래에 몸을 맡기고 펑펑 눈 내리는 한겨울 속 한파를 상상하다보니 한기를 동반한 닭살이 온 몸에 돋았다. 하지만, 잠시 스쳐지나가는 착각일 뿐이었다.


회사 마당에 나가니 방금 전 겨울 음악들이 무색해지고 “헉”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숨이 막혔다. 차 유리문을 살짝 열어 두었으나, 차량의 실내 온도는 42℃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국의 더위에 아프리카 사람들도 놀란다는 우스개가 생각났다. 자동차 핸들을 잡다가 손이 놀라고 만다. ‘차 주인인 나로 하여금 이열치열을 경험해 보라고, 이 온기를 가득 담아 내 차가 찜질방을 친히 허하였노라.’ 이렇게라도 억지로 생각을 끄집어내야 마음이 지치거나 데이지를 않는다.


사계절을 견뎌내는 우리의 인생은 쇳덩이 같다. 풀무질로 화력을 제대로 키운 불구덩이 속에 쇠를 시뻘겋게 달궜다가 찬물에 식히기를 반복하는 담금질의 연속이다. 나는 쉰다섯 번째 담금질에 결연히 임하고 있다. 낡고 헤진 종이부채 하나와 등목으로 혹서기를 버티던 게 과연 몇 해나 되었던가. 적어도 호들갑을 떨지 않고 의연하게 받아들이려는 풍모를 보이고 싶다. 그게 왠지 태양에 굴하지 않는 자세일 것 같다.


우리는 덤덤히 쇠처럼 받아들이고 견뎌낼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얼마나 다행인가. 아무 저항도 못하는 쇳덩이와는 다르게 에어컨과 선풍기를 선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뜨거움에 비유되는 인생의 고난과 고통을 우리는 정면으로 맞닥뜨리거나 잠시나마 비켜나 있을 수도 있다. 담금질을 통해 조금씩 강해지는 쇠의 재질처럼 삶의 품격도 업그레이드되리라 믿으면서.


지금의 세상은 어딜 가나 사람을 달구고 있다. 견디다 못해 스스로 찬물로 뛰어 드는 사람들. 나무에 걸린 매미들이 허공을 가르며 찢어대는 울부짖음이 더위를 못 참겠다는 인간의 고통을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턱없이 먼 거리의 태양계에는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8월로 달력이 바뀌니 조금은 선선한 기운도 느껴진다. 미처 느끼지 못했던 사실은 35℃가 견딜만한 온도였다는 것. 그러면서 여전히 작열하는 태양 광선이 한낮의 대지를 솥단지처럼 펄펄 끓여대고 있다. 그렇게 우리를 단련시키는 마지막 불꽃이 피어오른다. 그런 열기를 내뿜던 여름을 고맙게 생각하는 때가 올까. 마지막까지 잘 버텨내고 어김없이 다가올 가을을 맞이해야겠다. 지나고 보면 우리는 잠시나마 잊기에 또 다시 다가올 담금질을 경험의 힘으로 그럭저럭 이겨내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지친 마음을 달래려고 시간을 당겨 들려준 겨울 음악이었지만, 머지않아 추위를 걱정하고 폭설에 발을 동동 거릴 것이다. 차가운 시련 그리고 또 언젠가 다시 찾아올 더위, 우리는 그런 담금질 속에 연단을 받으며 한 평생을 이어간다.


그래봐야 여름의 기세도 막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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