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의 움직이는 성, 다시 쓰기

삶, 감정, 욕망과 죽음 그리고 틈과 진실

by 윤슬

이라고 이야기는 했는데, 사실 아는 것도 배운 적도 없다. 느낀대로.


그저 좋아했던 친구들이 떠올랐고,


이 영화를 함께 보았던, 영향을 받았던, 이야기를 주고 받았던 친구들이 온통 한 순간에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경험을 하며.


의도치 않았던 오늘의 영화 다시 보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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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는 '삶'에 가찹다.


일상적인 일을하며 지내다 어느순간 바람(황야의 마녀)을 맞아 자신이 벌써 이 나이가 되었다는 지각을 하는 순간을 보며.


하울은 '감정'에 가찹다.


본인의 삶을 살기보단 상황이나 시대의 흐름에 저항을 하다 이내, 좌절을 맛보거나 삶에 조차 녹아 내려버리는, 자신도 자각하지 못한 채.


감정(하울)은 삶(소피)에 따져 묻는다. “너 때문에 머리색이 이상해졌어!”라고. 하울은 머리 색이 바뀌었다고(감정의 변화가 생겼다고) 소피(삶)에게 따지고 묻는다. 하지만 이내 소피는 ‘머리가 곱다’고 말한다. ‘네가 가진 색이 이쁘다’기 보다는 ‘너로서’, ‘네 자체’가 곱다라는, 그 존재 자체를 보아주는 시선이 보인다. 난 그냥 청소만 했다(삶을 열심히 살았다)고하는 장면에서, 또 다시 삶과 감정 사이의 깊은 골이 보이면서도 알 수 없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아름답지 않으면 살 의미가 없다’


하울의 대사는 마치 지금을 살고 있는 ‘나’에게 속닥이는 감정이자 미처 생각치 못한 무의식 속의 ‘나’와의 조우다. 감정(하울)이 말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에서는 납득은 빠르지만 깊이 들어가면 현재의 나와 동떨어져 있다는 괴리감도 스며든다. 그래도, 난, 오늘 하루 살아보려 아등바등 버텨보길 하루 이틀이 지나 몇 달, 몇 년을 지내왔으니까. 비를 맞으며 소피(삶)가 스멀스멀 자기도 모른채 올라오는 하울(감정)과의 괴리를 느끼며 한 없이 우는 장면도, 이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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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경은 '체제'에 가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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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마녀는 '욕망의 죽음'과 가찹다.


꼭 욕망이, 죽음이 부정적 의미만은 아니다. 삶을 송두리쨰 훑어 버리고, 감정을 속죄이는 그 과정이 죽음에 맞닿아 있다고 느껴졌을 뿐이다. 하울의 심장을 원한다는 그녀의 반복적인 대사가 그녀의 존재를 보여주는 셈이다.


이 사이에 있는 캘시퍼는 ‘틈’이다.


삶(소피)과 하울(감정) 사이에 있는 틈.


동류의 ‘틈’으로서 허수아비 왕자를 꼽을 수 있다.



삶과 감정 사이를 노니는 모습이지만 삶 없이도, 감정 없이도 그 무엇하나 ‘짚히지 않는’ 바로 그 틈. 삶을 좇으면 그 틈이 죽어가기도, 감정에 휩싸이면 솟아나기도하는 바로 그, 틈.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틈.


마르클(아이)은 ‘척’이다.


본체는 어린 아이이고 여린 존재지만, 세상 밖을 나서자 어른인 ‘척’을 하기도, — 어쩌며 불안일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 각각에 기대어 어쩔 줄 모르는 모습.



불안에 가까운 틈이었던 마르클과 달리, 허수아비 왕자는 ‘틈’에 가찹다. 사실 허수아비가 마치 내가 투영된 모습이었다. 무언가 '틈'이지만 서글픈 틈에 가차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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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만은 '진실', 힌(Hin)은 삶과 진실의 ‘사이’를 보여준다.


“힌 말지요? 제 시종 개죠. 당신(소피;삶) 안내(진실과 삶 사이)를 시켰죠”


“걔(하울; 감정)는 아주 위험해요. 마음(진실을 바로 보려는 감정의 힘)을 잃었는데 힘(욕망)은 넘쳐나죠”


“이대로하면(욕망이 넘쳐나면) 하울(감정)은 황야의 마녀(죽음)처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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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소피(삶)가 말을 잇는다.


“이제 알았아요. 하울이 여기에 안 오려는 이유를. (중략) 하울이 이기적이고 겁쟁이에다 생각이 없어 보여도 하울(감정)은 솔직하고 자유롭게 살려고 하는 것 뿐이죠”


"하울은 여기에 오지도 마왕이 되지도 않을 겁니다. 악마(황야의 마녀; 죽음)와의 관계는 스스로 정리할 거예요."


이 대목에서 울컥했다.


감정을 머금어 삼키고 사는 경우도 있었고, 부풀린 적도 있었고(있는 척 하기도), 없는 척 하기도 했지만, 소피(삶)가 하울(감정)을 감싸주는 모습은 마치 내가 아무것도 없을 때 나를 ‘사랑’해주었던, ‘사랑’ 받았던 경험들이 떠올랐으니까. 그게 믿음이라는 소피의 말이, 앞에 설명한 모든 걸 엎는 격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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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써 놓은 이야기와 별개로 소피의 이 멘트 이후 등장한 하울은…젠장…너 진짜 그러면 현생의 남자들은 어쩌란 말이냐 이것아!)


라고 괄호를 쳐놨지만, 이젠 캐릭터의 설명이 아닌 ‘사랑’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사랑을 정의할 수 없다.


다만, 어렵고 힘들게, 그러나 정말 즐겁고 떠올리면 ‘그때’가 생각나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다.


하울(감정). 움직이지만 자리를 지키는(성), 네가 그토록 고심하고 염려하며 나아지며 동시에 그러한 삶을 살도록 나를 격려한, 사랑 그 자체를 보여주는 건 아니었을까. 무탈하게 네가 지금을 넘어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별 이야기 아닌듯 웃음끼로 넘기려던 내 모습이 쑥쓰럽고 미안하기도 했던 그날.



사랑한만큼 증오했다는 말.


이제 그만해도 되겠다. 그만 하련다.


증오와 애증을 넘어,


그 너머의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오늘이니까.


하울(감정)이 움직이는 성 안에 있던, 본디 (성) 밖에서 지내지만 '삶'을 견디는, 어렵고 여럽게 일상을 지냈던 너와 나. 감정과 진실과 욕망과 죽음 앞에서도 삶을 너머 마주하는 '우리' 되길. 고마웠고 미안했기에 네가 쓰던 안녕이라 말했던 말을 다시 쓰고 싶다.


언젠가는,


"안녕?"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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