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 얘도 잘 키우겠네! 얘도 키워 봐!” 이렇게 말하며 할머니는 우리 집 노견이 앉아있는 유모차에 본인의 강아지를 내려놓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가버렸다. 방금까지 공원 벤치 옆자리에 앉아있던 할머니였다. 강아지를 안고 내 옆에 앉아 개 키우는 데 필요한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더니 강아지를 놓고 도망가 버렸다. 경찰에 신고하고 cctv로 찾아내 “도로 데려가시라.” 하는 나를 보고 할머니는 “독한 년!”이라 하며 “한 마리 기르는데 두 마린 왜 못 길러?” 하고 소리를 질러 댔다. 할머니의 새된 목소리가 공원에 울려 퍼질 때마다 경찰의 품에서 바들바들 떨던 강아지가 불쌍했다. 이제 이 강아지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경찰에게 물어봤다. 경찰은 “이 강아지는 주인이 버린 것이 분명하니 일정 기간 동안 유기견 보호소에서 보호하다가 데려가는 사람이 없으면 안락사된다.”라고 했다. “보호소에는 자리가 부족해 대형견과 함께 철창 안에서 지낼 수도 있다.”고도했다. 할 수없이 일단 내가 보호하기로 하고 병원으로 데려갔다.
검사해 보니 몰티즈의 정상체중은 3 ~ 5kg인데 이 작은 솜뭉치의 몸무게는 1.5kg이었다. X-ray를 찍어보니 장기 안에 음식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이 오랫동안 굶은 상태였다. 다행히 달리 아픈 곳은 없었다. 집에 데려와 강아지용 북어를 잘게 뜯어 푹 끓여서 사료와 함께 먹였다. 허겁지겁 잘 먹는 강아지를 보니 걱정이 되었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것이 부담되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동물자유연대라는 곳이 있었다. <안락사가 없고 입양이 될 때까지 책임을 진다>는 홈페이지의 문구에 안심이 되었다.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니 임시보호자 신청서를 쓰라고 했다. 임시보호 기간 중에는 자유 동물연대와 연계된 동물 병원에서 진료하면 그 병원비를 연대 측에서 부담해 준다고 했다. 중성화 수술도 시켜준다고 했다. 온라인으로 임시보호자 신청서를 쓰고 배불리 먹고 노곤하게 자는 강아지를 꼭 끌어안고 택시를 탔다. 수술이 끝난 후 집으로 데려왔다. 강아지를 보니 한숨만 나왔다. 왜 이리 너의 견생은 고달플까? 우리 집 노견이 내 옆에 와서 몸을 기댔다. 그리고 나와 같이 강아지를 바라봤다.
강아지를 붙잡아 수술한 부위를 소독하고 나면 강아지는 소파와 벽 사이 좁은 공간으로 숨어버렸다. 하루 종일 코빼기도 보여주지 않았다. 밥도 ‘아작아작’ 소리를 내며 잘 먹었지만 모두가 잠든 밤에만 먹는 소리가 났다. 사람이 있을 때는 물도 먹지 않고 용변도 보지 않았다. 다행히 목줄을 매고 하는 산책은 좋아했다. 산책을 나가면 용변도 잘 봤다. 하지만 집에 오면 내내 그 공간으로 또다시 숨어버렸다.
한 달이 넘게 기다리고 기다려도 강아지를 입양하겠다는 연락은 없었다. 종일 숨어있는 공간에서 강아지를 끌어내어 사진을 여러 장 찍어 담당자에게 보내 홈페이지에 올리게 해 보아도 입양신청자는 없었다. 아니, 있기는 했다. 혼자 사는 독신 아저씨. “이 사람은 안돼. 직장에 나가 하루 종일 집을 비우니 강아지가 너무 오래 혼자 있게 될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생 소녀. ‘5만 원 정도 되는 입양 책임비를 내려고 아르바이트 중인데 아직 엄마 허락을 못 받았다니!’ 할머니와 손자. ‘산책하다 할머니만 봐도 무서워하는 데 또 할머니 있는 데다가 입양을 보낸다고? 절대 안 되지!’ 담당자의 연락이 올 때마다 난 강아지가 열이 나서, 아파서 지금은 보낼 수 없다고 핑계를 대었다.
한 달하고도 보름이 넘은 어느 저녁때였다. 노을이 황금색 주황으로 거실을 물들이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는데, 그때 어디선가 느껴지던 시선! 소파 앞 마룻바닥에 강아지가 똑바로 앉아 있었다. 내가 눈을 마주치자 갑자기 한쪽 앞발을 들고 ‘손’을 나에게 주었다. 강아지가 놀라서 또 숨어버릴까 봐 난 미끄러지듯 조심스레 소파에서 내려왔다. 강아지는 조금 몸을 떨었지만 피하지는 않았다. 난 손을 내밀어 강아지가 내민 앞발을 쥐었다. 이만하면 어떻게든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까지 기다릴 수 없어 담당자의 핸드폰에 메시지를 남겼다. ‘이제 이 강아지는 우리 집 강아지입니다. 입양 책임비 보낼 테니 계좌번호 보내주세요. 참, 홈페이지 사진도 내려주십시오.’ 우리 집 노견이 ‘저럴 줄 알았지.’ 하는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렇게 네모는 우리 집 강아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