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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니 Sep 05. 2023

만두 빚는 날

그날은 만두 빚는 날이었다. 오총사가 오랜만에 완전체로 모이는 날이었다. 비행 스케줄이 달라 세 명, 네 명씩 모이다가 드디어 다섯이 모였다. "양념치킨도 할까, 언니?” 승주가 닭다리를 꺼내며 말하자 “좋은 생각이다. 양념 많이 만들어서 고기 안 먹는 우리 옥화는 두부 강정 해주자.” 성미 언니가 대답했다. “언니, 찜 솥 꺼냈지? 만두 속 만들어 왔는데. 김치만두랑 고기만두 얼른 빚자.” 내가 말했다.


처음으로 우리가 성미 언니네 집에 모였을 때였다. 내가 직접 빚은 손 만두에 옥화가 부쳐 온 연근 전, 경민의 두텁떡, 성미 언니가 끓인 육개장, 거기다가 승주가 깎아온 과일을 식탁에 놓으니 한상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양념 통닭이 있으면 딱인데!” 치킨을 좋아하는 승주가 말했다. “그래? 나 양념 통닭 할 줄 알아. 담에 만날 때 내가 재료 사 올게. 같이 만들자, 어때?” 내가 말했다. 모두들 좋다고 했다. “해 먹고 난 다음에 깨끗이 치우고 가야 해!” 성미 언니가 말했다. “치우는 거? 치우는 거는 나한테 맡겨! 나 그거 잘해!” 승주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시간만 맞으면 성미 언니네서 모였다.


각자 원하는 메뉴는 여러 가지였지만 대부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나물의 달인 옥화, 자기 집 냉동고에 떡이며 약식이며 한식 디저트가 그득한 경민, 농담을 잘하고 설거지도 잘하는 승주, 정식으로 음식을 배워 요리책도 낸 성미 언니, 손 만두와 양념 통닭의 달인 나. 우리 다섯은 틈만 나면 성미 언니네 모여서 한식 파티를 했다. 성미 언니네는 벽도 기둥도 없이 탁 트인 스튜디오형 아파트인 데다가 우리가 각자 살고 있던 아파트들 중 가장 넓었다. 게다가 언니네 김치는 너무 맛있었다. 어머님께서 손수 농사지으신 제철 푸성귀로 담가 보내주신 김치였다. 고기를 일절 먹지 않는 옥화는 홍콩의 이국적인 야채로도 한국의 맛이 나는 나물을 무쳐내었다. 외국 음식이 안 맞아 소화불량에 자주 시달리는 경민은 어머님께서 보내주신 맛있는 떡과 유과를 가져왔다. 나는 줄기차게 양념 통닭과 두부를 튀겨냈다. 밥과 찌개 담당은 성미 언니였다. 승주는 요리하는 사람 주변에서 명랑하게 떠들다가 다 먹고 나면 뒷설거지를 했다. 사람을 좋아하고 먹는 거에 진심인 성미 언니가 우리 모두를 품었다. 우리들은 아기 새처럼 옹기종기 모여 언니의 부엌에서 그리운 고향의 음식을 맛보았다.


처음 홍콩에 갔을 땐 거리에서도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배는 고픈데 홍콩 항의 야경은 어찌 그리 예쁘던지…. 항구의 야경 사이로 우리나라 기업을 광고하는 네온사인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에 번져 부옇게 보였다. 그때 홍콩에선 한국 식당에 가도 음식에서 어딘가 묘한 맛이 나고 가격도 터무니없이 비쌌다. 먹고 싶은 떡볶이나 어묵 꼬치는 찾을 수도 없었다. 모든 게 낯선 외국에서 나는 혼자였다. 성미 언니네서 한식 모임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홍콩 생활이 어지간히 익숙해진 뒤에도 우리는 모여 농담을 하고 김밥을 싸고 김치전을 부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타향살이를 견뎌내었다. 그 모임이 우리 모두에게 오랜 외국 생활을 견디게 해 준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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