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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니 Sep 11. 2023

깃털 빠진 독수리 한 쌍처럼



새로 담근 김치를 싫어하고 깊은 맛이 나는 묵은지를 좋아하는 우리 아들을 위해 매년 배추 30~40 포기 정도 김장을 담고 있다. 김장의 시작은 초롱무 김치 담기이다. 배추김치를 담기 전, 11월에 잠깐 나오는 초롱무로 김치를 담근다.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단단하고 아삭아삭한 초롱무는 무청이 싱싱하게 달려있는 것으로 골라 반드시 멸치 진 젓과 고추씨를 넣어 만든 양념으로 담는다. 고추씨는 군내를 없애고 멸치 진 젓은 초롱무의 알싸한 맛을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그다음은 쪽파김치 담기이다. 멸치 액젓으로 쪽파를 절여서 고춧가루와 마늘, 풀을 넣고 버무려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풀 쑤기이다. 황태머리와 대파 뿌리, 양파, 말린 표고버섯과 다시마를 넣고 끓여 낸 육수에 찹쌀가루를 풀어 멀겋게 풀을 쑨다. 김장 양념은 여기에 다진 마늘, 새우젓, 멸치 액젓, 매실청, 소금, 배 간 것, 고춧가루를 넣어 만든다. 양념은 최소 하루 전에는 만들어 김치냉장고에 넣어 숙성시킨다.


배추는 짧고 통통한 것이 좋다. 배추는 김장 비닐에 넣어 절이는데 우리 가족 모두 초록 이파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누렇게 된 부분만 조금 떼어낸다. 음식물 쓰레기도 적게 나오니 일석이조다. 배추를 1/4로 쪼개 소금물에 담갔다가 비닐에 넣어 웃소금을 조금 뿌려준 후 6시간마다 뒤집어준다. 쪼갤 때 배추 밑동을 파내어야 빨리 절여진다. 12시간 정도 절여준 후 줄기 부분을 꺾어보아 나긋하게 구부러지면 2~3번 물에 헹궈 채반에 널어 물기를 뺀다. 물기를 빼는 동안 돼지 수육을 삶는다. 고기가 잠길만한 물에 된장, 파, 마늘, 커피가루, 양파, 소주를 넣고 끓으면 고기를 넣어 센 불 10분, 중 불 30분, 약 불 10분, 총 50분을 삶은 후 건져 그릇에 담아 뚜껑을 닫고 10분간 뜸을 들인 후 식혀서 썰어준다. 갓, 쪽파, 채 썬 무를 양념에 버무려 김치 속을 만든다. 접시에 수육과 함께 먹을 김치 속을 덜어 두고 배추에 속을 채워 김치통에 꼭꼭 눌러 담는다. 노오란 배추 속도 따로 챙겨 놓는다. 김장을 다하고 나면 뜨끈하고 칼칼한 콩나물국과 함께 수육 보쌈을 먹기 위해서다. 


작년 김장 때 일이었다. 배추김치를 버무리는 동안 아이는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엄마, 내가 양념 간을 볼게." “수육 삶았지?” “엄마, 수육이랑 같이 한 입 먹어볼게." “엄마, 내가 버무린 거 이쪽 통에다가 넣었지?” 아이는 7살 때부터 김장을 같이 담갔다. 처음에는 ‘같이 담근다’ 기보단 ‘방해를 하면서 수육을 많이 집어먹는다’ 쪽이었는데 10년을 함께하니 간도 제법 보고 버무리기도 잘한다. 제가 먹을 김치니까 제가 담그는 게 맞지 싶어서 시작했었는데 사춘기의 질풍노도가 극에 달했을 때도 김장 담기는 빼먹지 않고 같이 했으니 제법 집안 행사가 된 듯하였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들, 독립하려면 얼마 안 남았구나.’ 양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하고 수육 한 점을 방금 담근 김치에 싸서 우걱우걱 씹어 대는 저 녀석은 평소에 대학 가면 바로 독립하겠다고 노래를 불러 댔다. 그럼 2년이 남은 것이었다. ‘김장같이 담기’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거였다. 김치를 버무리다 말고 맘이 심란해졌다. 신경질적으로 김치를 꾹꾹 눌러 담다 보니 김치 국물이 얼굴에 튀었다. 서 너 조각 남은 배추를 서둘러 버무리고 김치통 뚜껑을 닫아 부엌 한 옆에 쌓아 두고는 샤워를 하고 누워 버렸다.


“엄마, 나와서 보쌈 드세요.” 아들이 불러도 내다보지 않았다. 남편이 들어와서 내 얼굴을 보더니 옆에 앉았다. “왜, 무슨 일 있어?’ 보쌈 맛있던데 좀 먹지?” 남편이 말했다. “보쌈 타령이 중요한 게 아냐. 나 혼자 김장하게 생겼어.” 내가 말했다. 남편이 “그게 무슨 소리야?”라고 물었다. 나는 “나 혼자 못하니까 담부터 사 먹자고.”라고 말했다. “아니 왜 그래? 아들이 속상하게 했어?” 하고 남편이 말했다. “대학 가면 바로 독립하겠다잖아.” 내가 말하자 남편이 웃어 댔다. “내가 전부터 말했잖아, 당신한텐 나밖에 없다고.” 남편이 말하자 나는 화가 나면서도 나 자신이 유치해서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남편은 말했다. “울 아들이 계속 옆에 붙어 있어 봐. 그럼 자기 나이가 70이 넘어도 김장하고 있어야 된다고. 그렇게 아들이 좋아? 그럼 날개를 펴고 날아가게 둬야지.” 난 남편에게 물었다. “그럼 우린?” “우린 깃털 빠진 독수리 한 쌍처럼 아들이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는 것을 기쁘게 바라봐야지. 정답게 같이 앉아서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은 보쌈이나 먹으러 가자고.” 남편이 말했다. 남편이 내민 손을 나는 잡고 일어났다. 마침 배도 고팠다. ‘그래 2년이나 남았으니 적어도 2번은 더 같이 할 수 있겠네.’ 그렇게 맘먹기로 정하고 식탁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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