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이담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아이가 7살 무렵, 내 옆에서 잘 놀고 있다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내게 던졌다. 엉뚱한 아이의 물음에 내 말문이 막혔다. ‘난 이미 다 커서 너를 낳고 엄마가 되었는데 이담에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
난 순간 어리둥절해졌지만 아이의 질문은 잔잔한 파문이 되어 내 맘 속에 퍼져 나갔다. 생각해 보니 나는 어렸을 때도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 아이를 낳기 전과 낳은 후, 나의 생활은 기원 전과 기원 후처럼 180도 달라졌지만 딱히 뭐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세월이 흘러 세상에 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남은 사람들에게 난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걸까? 열심히 생각해 보아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너무나 진지했다. 작은 얼굴에 열의를 담고 기대에 찬 눈을 빛내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난 그 눈빛이 발산하는 엄청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신중하게 대답했다. “엄마는 너한테 ‘아주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라는 나의 말에 아이가 배시시 웃었다. “엄만 내 ‘아주 좋은 엄마’잖아. 그거 말고 되고 싶은 건 없어?” 궁금증이 만족스럽게 풀리지 않으면 집요해지는 아이가 다시 물었다. “으음…. 엄마는 좋은 요리사가 되고 싶어. 그래서 너에게 맛있는 거 많이 해주고 싶어.” 내가 대답하자 아이는 “또?”하며 다시 대답을 재촉했다. 그러자 갑자기 내 안에서 폭포처럼 말이 튀어나왔다. “또 텃밭을 가꾸는 여자가 되고 싶어. 우리 강아지 네모가 뛰노는 마당이 있고, 책이 엄청 많이 쌓여 있는 서재가 있는, 지붕이 평평한 단층집에서 사는 거야. 엄마는 텃밭을 가꾸고 텃밭에서 수확한 야채로 아빠랑 너를 위한 요리를 하는 그런 여자가 되고 싶어.”
그러자 아이가 다시 물었다. “엄마,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고 책이 많으면 엄마는 행복할 것 같아?” 아이의 물음이 나의 머리를 세게 때렸다. 나는 깨달았다. “그렇구나, 맞아! 나는 우선 행복해지고 싶어.” 내가 웃으며 소리치자 “엄마, 나도 그래.” 아이가 깔깔 웃으며 맞장구쳤다. 나는 “그래, 우리 이담에 커서 행복해지자. 무엇이 됐든지 간에 행복해지는 게 우선이야.”라고 말했다. “응, 엄마!” 아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한바탕 웃고 난 뒤 우리는 엄숙한 얼굴로 새끼손가락을 걸어 약속하고 [꼭꼭 약속해]라는 제목의 동요까지 같이 불렀다.
그때부터 나에겐 장래 희망이 생겼다. 바로 ‘행복한 사람’으로 살고 그렇게 기억되는 것! 오늘도 오늘치의 행복을 위해 강아지와 산책하며 구름사진을 찍어본다. 하루하루가 쌓이면 그게 바로 평생이니까 오늘이 행복하면 평생이 행복하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찍은 사진을 같이 보며 오늘의 구름과 닮은 것을 함께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