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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니 Aug 22. 2023

매미, 너란 놈

장마철이 끝나니 대기가 건조해졌다. 아침마다 베란다 창을 앞뒤로 활짝 열고 밤새 탁해진 실내를 환기시킨다. 창문을 여니 매미의 울음소리가 한창이다. ‘포플러 나무 위에서는 매미가 우네’라는 그룹 산울림의 ‘매미'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어디서나 들리는 여름날의 배경음악이다. 어떻게 날아왔는지 13층 높이의 방충망에 달라붙어서 깜짝 공연을 해 주는 매미도 있다. 방충망에 붙은 매미는 물총을 쏘는 것으로 퇴치가 가능하다. 방충망을 손으로 쳐봤자 어지간해서는 날아가지 않지만 매미는 물을 싫어한다. 여름날에는 아파트에 사는 가정마다 매미 퇴치를 위해 물총을 구비해 놓을 일이다.


그나저나 너무 시끄럽다. 과거에는 울음소리가 그다지 시끄럽지 않았던 “맴-맴-맴-맴-매애애애앰-.”하고 우는 참매미가 많았지만 도시가 많아지면서 녹지가 줄자 매미가 살 곳이 좁아졌다. 또 인간이 내는 소음 때문에 엄청 큰 소리로 있는 힘껏 울어대는 말매미가 많아졌다. 시골에 가면 말매미보다는 참매미 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다. 또한 인적이 드문 시골에서는 낮동안 시끄럽던 매미 소리가 해가 지면 뚝 그친다. 도시에서는 불빛이 환해서 매미가 낮으로 착각하고 시도 때도 없이 울어재낀다. 밤에도 내 귀가 혹사를 당한다.


중국에서 한 여성이 시끄러운 매미 소리에 화가 난 나머지 매미를 잡아서 스카치테이프로 감아 꼼짝 못 하게 묶어 놓고 매미에게 최대 음량으로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 주는 고문을 한 사건이 있었다. 매미머리 양 옆에 이어폰을 놓았는데, 복수에는 실패한 것 같다. 매미의 청각기관은 배 쪽에 있으니까.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인데, 그 여성은 복수심에는 불타올랐지만 상대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부족했나 보다.


수컷은 울음소리를 크게 내기 위해 자신의 몸속 절반이상이 텅 비워져 있다. 그 텅 빈 몸통이 공명관이 되어 커다란 소리를 낸다. 소리의 크기가 중요한 이유는 암컷이 수컷의 큰 소리에 끌리기 때문이다. 짝짓기 할 때는 경쟁상황이 되기 마련인데 대개 가장 큰 소리를 내는 수컷개체가 가장 많은 짝짓기 기회를 가지게 되어 성공리에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수 있다. 매미의 큰 소리란 인간으로 치자면 큰 평수의 아파트쯤 되는 것 같다.


매미는 나무 위에서 자주 오줌을 싼다. 여름철에 길 가다 맑은 날에 웬 액체에 맞은 경험이 있다면 매미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 다행이라면 양이 그리 많지 않고, 매미가 나무 수액을 먹고살기 때문에 오줌도 수액 성분이 대부분이라 몸에 나쁘지도 않고 냄새가 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당하는 쪽 입장에서는 무척 찝찝한 일이다. 몇 번이나 샤워를 해도 그 찝찝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어두운 땅속에서 오랜 시간 인내하다가 고작 한 달 동안의 짝짓기를 위해 온몸을 불태워 노래하는 매미의 일생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 선조들은 매미를 이렇게 생각했다.


[이른바 5가지 덕(五德)을 갖추고 있다고 하여 꽤 숭상했는데, 머리에 홈처럼 파인 줄을 갓끈과 비슷하게 보아 지혜가 있을 듯하여 첫째 덕목을 문(文)으로 보았고, 나무의 수액만을 먹고 자라므로 잡것이 섞이지 않고 맑아 청(淸)이 그 둘째 덕목이며, 다른 곡식을 축내지 않으므로 염치가 있으니 셋째 덕목이 염(廉)이고, 살 집을 따로 짓지 않으니 검소하다고 보아 검(儉)이 그 넷째 덕목, 계절에 맞춰 오고 가니 믿음이 있기에 신(信)이 다섯째 덕목이라고 보았다. 이런 매미의 덕목을 본받기 위해 왕이 쓰던 익선관의 솟은 뿔과 관료들이 쓰던 오사모의 양쪽 뿔도 매미의 날개를 본떠 만들었다.] (손철주, 『사람 보는 눈: 손철주의 그림 자랑』(현암사, 2013))


이런 다섯 가지 덕목 외에도 매미는 환경에 도움을 준다. 새와 다른 포식자들의 먹이가 되어주고 지면에 산소를 공급하며 지하수를 여과시키고 죽어서는 식물이 자라는데 도움을 주는 자양분이 된다. 알고 보니 매미 란 놈, 칭송받을만한 존재였구나!


강렬한 햇빛이 눈을 찌르고 갖가지 녹색의 화려한 향연이 펼쳐지는 여름,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파란 하늘을 향해 “맴맴.”, “찌르르 찌르르.”. “차르르르르.” 매미가 울고 있다. 자신이 태어난 목적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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