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그녀의 것]을 읽고
[오직 그녀의 것]. 이 책은 한 여자가 책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 사랑이 인생이 되어버린 이야기이다. 스무 살의 설렘부터 쉰여덟의 단단한 시간까지, 그녀는 출판이라는 세계 속에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그 길에는 화려한 성공도, 극적인 사건도 없지만, 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는 그녀의 태도에는 책을 향한 깊은 애정이 묻어난다.
나도 책을 사랑한다. 마치 [차모니아 연대기] 속 책 사냥꾼들처럼 동대문 헌책방 골목을 누비며 절판된 책을 찾아 헤매던 시절. 낡은 책장 사이에서 원하는 책의 제목을 발견했을 때의 그 벅찬 기쁨. 누군가에게는 무겁고 먼지 나는 종이 뭉치에 불과하지만, 나에게 책은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숨결이다. 책을 사랑한다는 건 결국, 자신을 지켜내는 일이다.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일하는 사람으로 살아왔지만, 그 모든 이름을 넘어 “이것이 나의 삶이었다.”라고 말할 힘. [오직 그녀의 것]은 그런 사랑의 이야기다. 책을 통해 세상을 버텨온 한 여자의, 온전하고도 고요한 삶의 기록.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오직 나만의 것. 과연 그런 게 나에게 있었던가?
가장 먼저 아들이 떠올랐다. 스무 해 넘게 곁에서 숨 쉬던 존재. 항상 나를 따라 걷던 작은 발, 내가 읽어주는 동화를 들으며 스르르 잠들던 얼굴. 작은 손을 맞잡으면 하루가 충만해지던 아이. 그런데 어느새 그는 아침 일찍 ‘오직 자신의 것’을 찾아 집을 나서는 사람이 됐다. 몸집도, 마음도 훌쩍 커져 더는 내 품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는 한때 내가 오래 품고 있었던 따뜻한 온기였을 뿐, 결코 오직 나만의 것이라 부를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남편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우리라는 이름으로 사는 사람을 오직 나만의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그와 나는 각자의 옆에서 함께 나란히 걷기를 선택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 집 강아지 네모는 어떨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은 생명, 가끔은 내 마음을 가장 먼저 알아채는 존재. 하지만 네모도 오직 나만의 것은 아니다. 물을 시원하게 갈아주지 않으면 발로 물그릇을 탁탁, 두드리는 당당한 녀석. 내가 늦게 알아차리면 쿠션을 박박 긁어대며 자기감정을 사방에 흩뿌린다. 네모는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세계를 잃지 않는다. 그러니 네모 역시 나만의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 요즘 즐기는 뜨개질은? 아니, 그건 아직 취미라는 이름표를 달기에도 이르다. 툭하면 실이 엉키고, 엉킨 만큼 내 인내심도 바닥난다. 어릴 적부터 좋아해 온 미술은 어떨까. 그림을 보면 마음이 환해지고 무언가를 그리는 시간은 늘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나만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조차 ‘오직 나만의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내 성실함이 부족하다. 생각해 보면 평생토록 사랑할 무언가가 있고, 그것이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삶 자체가 되는 경지에 오른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오직 그녀의 것]에서 그녀의 삶이 그러했다. 그렇게 특별했기에 소설로까지 기록될 수 있었겠지.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바로 쓰레기봉투 묶기 신공. 20리터 봉투에 30리터쯤 되는 것들을 천천히, 하지만 정확하게 눌러 담는 기술. 봉투를 터트리지도 않고 말이다. 손과 팔과 몸의 무게를 다 써가며 쓰레기들을 압축하는 방식. 남편은 내가 봉투 입구를 잡아 묶는 걸 보면 늘 같은 표정을 짓는다. 경외와 경악 사이의 어디쯤. “아니, 이걸 어떻게 다 넣었어?” 하고 남편이 물어도 나는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는다. 요령을 가르쳐줘도 아마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힘줘 누르고 살짝 당기고. 이건 내가 오랫동안 갈고닦아 터득한 나만의 요령이다. 쓰레기를 눌러 담을 때, 그날 하루치 지친 마음까지 함께 넣어서 힘껏 누른다. 그리곤 “자, 여기까지!”하고 소리치며 입구를 꽉 묶어 버린다.
평범한 삶에서는 해가 지날수록 많은 것들이 손에서 빠져나가고, 한때는 오직 나만의 것이라 믿었던 것들마저 사라진다. 그러나 그렇게 비워지고 나면 그 빈자리 속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것들이 결국 진짜 나만의 것이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또렷해진다. 쓰레기봉투 묶기 신공, 누구보다 빠른 설거지, 김치를 맛깔나게 버무리는 손맛, 강아지 네모와 새로운 골목을 찾으며 걷는 일 같은 작은 것들이 내 삶을 빛나게 하고 내 곁의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생각해 보면, 내 오직 나만의 것은 세상에 보여주기엔 너무나 작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을 작은 기술. 쓰레기봉투의 입구를 묶으며 손끝으로 하루의 끝을 가늠해 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이 정도면, 오늘의 나는 내가 지켜낸 것 같다. 그것이면 된다. 아마 그것이 ‘오직 나만의 것’ 일 것이다.
밤 열 시가 되면 주방 문을 닫고, 각자의 밤참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독서 등을 켜고, 낡은 잠옷을 입고, 집에서 가장 편한 소파에 앉아 둥지를 튼다. 따뜻한 꿀 우유 한 잔, 바흐의 피아노 연주곡을 배경으로 책을 펼친다. 병렬 독서는 기본이다. 그건 남의 인생으로 들어가 보는 시간, 마치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처럼. 그렇게 또 한 권의 책이 내 삶으로 들어오고, 나의 하루가 한 페이지 더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