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9일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다정했고 둘이서 밥을 먹은 이후로 좋아졌던 남자애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대학생이던 당시, 꾸안꾸를 목적으로 샀던 옷은 유니클로 스트라이프 티셔츠였다. 주일마다 마주치는 그 애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입고 가고, 머리도 묶어보고 풀러보고 립스틱도 바꿔보았다. 섬세하던 그 애는 바뀐 립스틱 색깔은 알아맞혔지만 왜 난리법석을 떠는지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내 친구와 그 애 셋이서 치킨 먹을 기회를 만들어 속으로 쾌재를 불렀던 금요일 밤. 그 애는 갑자기 좋아하는 여자애 이야길 하기 시작했다. 듣다 보니 점점, 표정이 굳어졌다.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말하고 바깥공기를 쐬고 난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유야무야 저녁 내내 좋아하는 여자애에 대한 찬사를 들었다. 티셔츠도 그 뒤로 어디론가 처박혔고, 10년이 지난 오늘은 그 애가 그때 그 여자도 아니고, 그다음 사귄 아는 여자애도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늘은 마침 그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꺼내 입은 날이었다. 내게도 사랑이 온다고 믿고 싶다. 가을을 온몸으로 타는 어느 화요일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