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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유 Ayu Sep 22. 2023

발리니즈로 산다는 것

커뮤니티와 소속감

갈룽안데이(Galungan day)와 꾸닝안데이(Kuningan day)는 발리니즈들의 연중 가장 큰 행사로 10일 간격으로 붙어있다. 갈룽안데이는 조상의 영혼이 발리섬에 방문할 수 있도록 문을 여는 날이고, 축제의 마지막 날인 꾸닝안데이는 그들이 섬을 떠나는 날이다. 이런 발리의 전통을 알아보자니 마치 디즈니영화 “코코”가 떠오른다.


일개 여행객으로서, 이렇게나 자세하게 갈룽안데이와 꾸닝안데이를 알아보고 설명하는 이유라면, 이 시기에 발리여행을 가보면 단번에 이해할 것이다. 발리의 모든 거리가 벤조르(Penjor)라는 대나무장식으로 꾸며져 있고, 매일같이 발리니즈는 세리머니를 하고 아이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길거리에서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이다.




발리에 도착한 날은 갈룽안데이였는데, 이제 10일이 지나고 꾸닝안데이가 왔다. 첫날 많은 음식점, 카페, 상점이 닫았던 것을 참고 삼아 우리는 꾸닝안데이 전날 아침과 점심을 숙소에서 해결할 수 있을 방법을 모색해 두고 숙소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사실 오늘은 우리가 작년 8월 요가원에서 우연히 처음 만난 지 1년이 꼬박 되는 날이라, 저녁에 레스토랑을 예약해 두고 기념일을 즐길 계획으로 저녁시간에 느지막이 길을 나섰다.



우붓에서 우붓왕궁 쪽은 가장 중심가로 사람도 차들도 북적이는 곳인데, 오늘은 왜인지 차가 없었다. 우붓왕궁 옆 모든 도로를 통제하고 있는 경찰과, 무언가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외국인 관광객들만 있을 뿐.


곧 시작된다는 말에 영문도 모른 채 우리도 외국인들 사이에 카메라를 대기하고 자리를 잡았다. 경찰의 통제가 조용해지고 점점 가까워지는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의 무리들이 보였다. 발리니즈 전통복을 입은 발리니즈 남자들에이어, 악기를 연주하는 악대가 지나가고, 알록달록한 전통복을 입은 발리니즈 여자들이 지나간다.  좁은 도로를 인파로 꽉 채운 끝없는 행렬에 나도 행진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발리니즈가 아니라면 구경만 하는게 예의일 것 같다며 S는 나의 과한 의욕을 말린다.


 우리는 동영상도 찍고 박수를 치며 환영하다가 식당 예약시간에 쫓기듯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래서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구나.’ 이 모든 세리머니의 준비과정을 상상하면서 걸으며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또 다른 경찰들이 도로를 통제하고 있었고 다시금 발리니즈들의 행진이 보였다.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는데 우연히 또 마주친 것이다. 더 좁고 사람이 적어서 가까운 곳에서 최소 500명이 넘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조금 격양되었다. 감동이라고 해야 하나?


설날과 추석이면 친척 20명 남짓 북적북적 한 집에 모여서 같이 제사도 준비하고 명절을 즐겼던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아마 지금 행진을 하고 있는 발리니즈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매년 2번씩 돌아오는 세리머니에 가족, 친척으로 국한하지 않고 발리니즈라면 모두가 함께 세리머니를 준비하고 즐긴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길거리 어디서 마주치든 가족처럼 편안하고 든든하지 않을까?


S는 나에게 말한다. “발리니즈들에게 다른 나라에서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이렇게 전통과 문화, 커뮤니티가 확고한데 말이야.”




한 번도 안 올 수는 있지만 한 번만 방문할 수는 없다는 발리! 발리는 다채로운 자연환경 덕분에 인기 휴양지이기도 하지만, 발리니즈들이 고수하는 전통문화가 매력적인 곳이다. 발리의 전통이 매력적인 이유는 따분하거나 오래된 것이 아니라 현재도 자연스럽게 매일 행해지고 중요시 여겨지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매일 빠짐없이 짜낭(발리 힌두교도들이 찬양과 기도로 매일 바치는 제물 중 하나)을 올리고 향을 피우고 기도를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거기다 접근성도 좋고 안전하기까지 하니 무슨 말을 더하랴.


택시를 타든 음식점에서 계산을 하든, 직원들은 “Where are you from?(어디서 왔어요?)”를 묻거나 가끔은 관광객들의 국적을 속닥속닥 추측하고 맞추는 게임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감사합니다”를 말하고 스페인에서 왔다고 하면 “Gracias(스페인어로 감사합니다)”를 말하는 발리니즈들.


한 번은 이동 중 한국어를 꽤나 잘하고 서울에 대해 많이 물어보는 택시드라이버에게 물어보았다.

“발리니즈들도 비행기를 타고 다른 인도네시아 지역을 여행하나요?” S가 ‘여긴 힌두교를 믿고 다른 인도네시아 지역은 이슬람이잖…’이라고 귀띔을 해줄 무렵 드라이버는 대답한다. “아니요. 발리니즈는 발리에서만 살아요. 정말 지루하죠?” 그는 내심 해외여행을 쉽게 다니는 관광객들이 꽤 부러운 눈치이다.


국민들의 87%는 이슬람종교를 믿는 인도네시아의 많은 섬들에 둘러싸여 2%의 존재감을 뽐내며 힌두교를 믿는 발리니즈들

자기들의 전통과 문화를 고수하며 뿌리내린 정체성으로 연평균 200만 명의 관광객을 맞이하는 발리니즈들


그런 발리니즈의 정신 덕분에 무수한 외국인들이 발리를 방문하고 사랑하게 된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지만 말을 삼켰다. 그는 이미 현지인들 커뮤니티에서 튼튼한 지지를 받고 있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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