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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유 Ayu Feb 03. 2024

변호사와 생긴 일 1

사랑으로 행동하기

나는 지금 스페인에서 남자친구와 파트너 비자를 준비하고 있다. 비자 절차를 변호사를 통해 함께 준비하고 있는데, 처음 변호사를 만나고 온 날 기분이 복잡 미묘했다.


그녀는 나랑 비슷한 또래로 보이고, 스페인 사람이라 하기엔 얼굴 생김새가 너무나 익숙하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한국인 친구라고 해도 어색함이 없는 외모랄까. 즉, 이민자 신분으로 스페인에서 변호사 업무를 하는 사람 같았다.


그녀와 마주하고 앉아 비자 절차에 대한 설명을 듣는데, 사실 첫날 관련 전문용어들이 난무하는 자리에서 막연한 답답함을 느꼈었다. 나도 한국에선 저런 형태의 일을 했었는데... 이제는 언어가 달라 이해 못 하는 말을 듣고 있는 외국인 신세가 된 현실을 실감했고, 같은 이민자의 신분으로 스페인에 자리 잡아 멋있게 일하는 그녀가 부럽기도 했다.




준비해야 할 서류를 챙겨 그녀와 서류의 완전성을 체크하기로 한 두 번째 미팅 날, '너무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고, 남자친구가 알아서 하도록 두지 뭐.'라는 생각을 하며 법무법인으로 향했다.


미팅 중 서류 하나가 누락되었음을 발견했는데, 내가 이해하기론 첫 미팅 때 자기가 준비할 거니 그 서류는 걱정 말라고 했었는데, 이번에 변호사는 그 서류를 직접 준비해야 한다며, 남자친구에게 서류 발급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엥... 자기가 한다고 한 거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차마 부족한 스페인어로 그녀에게 직접 물어보지 못하고, 미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그에게 투덜거렸다.


"왜 자기가 한다 하고 하지 않았대? 그러면 미리 우리에게 연락이라도 좀 해주지. 두 번 걸음 하게 생겼네."

이런 말을 하면서 집에 돌아가는데, 그는 그걸 왜 자기에게 말하냐며 방어적인 태세로 나오는 게 아닌가!


내 입장: 평소 그의 모습으로 기대한 모습이라면, 내 이야기를 좀 더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이해하려고 했을 텐데… 뭐지?

남자친구 입장: 평소엔 너그럽게 넘어갈 애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투덜거리고 비난조로 말하는 거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단절된 마음으로 돌고 도는 각자의 말만 할 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말했다.

지혜, 나는 언제나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고 싶어. 그 변호사가 우리 비자 절차를 무사히 할 수 없겠다는 의심이 들 정도의 실수가 아닌 이상, 굳이 그걸로 옳고 그름을 나누고자 언급하는 건 그 분과의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그 사람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 같던데, 비자 절차를 잘 마치고도 장기적으로 우리와 좋은 친구가 되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어?


머리가 띵했다.

그 순간 나는 '나'만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미팅 중 느꼈던 나의 스페인어에 대한 무능함,

유사업종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에 대한 부러움,

그리고 회사 생활에서 받았던 대우 그대로 그녀를 대하고 있는 나...


이런 솔직한 감정들을 그에게 공유하고 나서야 우리는 다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평소처럼 연결될 수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엄격했던 태도는 내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에게 엄격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에게도 엄격했던 나.

내가 그들을 엄격히 판단하듯 그들도 나를 판단할 것이라는 두려움,

그러한 판단을 회피하고 싶어 완벽해지려던 욕망...


그리고 남자친구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며

이런 두려움과 욕망 너머 다른 차원에는 순수한 사랑만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혹시 직업의 문제가 아닐 수도?라는 생각으로 흘러갔다.

내가 지금껏 자라온 대로 받아온 대로 반응(reaction)하는 걸 선택하기보다 사랑을 추구하고 사랑으로 행동(action)하기를 연습하다 보면 어떤 일을 하든 잘할 수 있겠다..

 

그게 진정한 자유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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