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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유 Ayu Jan 12. 2024

한국이 그리운가요?

새로운 익숙함

이런 질문을 받았다. 스페인과 한국에서의 삶은 참 다른데, 한국이 그립기도 해요?


연말에 남자친구 가족을 만나 함께 보내며 따뜻한 연말이었지만, 동시에 그들과 말이 통하지도 않는 나는 온전한 타인이고 외국인이라는걸 강하게 느꼈던 아이러니한 근래의 경험 때문일까? 질문을 받았을 때 울컥했다.


나는 무엇이 그리운 건가? 가족, 친구, 음식, 서울…

이런 특정한 것이 그리운 감정이 아니다.

굳이 꼬집어 말한다면, 익숙함이 그립다.


지도 없이 거니는 거리

추억이 깃든 장소

말하기 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모국어

...


사실 익숙함은 시간이 만들어주는 감정이다. 스페인에서도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지도 없이 동네를 걷고, 곳곳에 추억을 떠올리고, 스페인어가 편해지는 날이 올 텐데.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그리워하는 익숙함은 한국에 대한게 아니다. 그건 내가 그곳에서 보낸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다.


아아... 이미 지나간 날들... 그리운 것을 구체화시키다 보니 그것과 내가 더 분리되는 것만 같다.




이런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을 처음 느꼈던 건 23살 때였다. 그때 대학교 마지막 학년을 앞두고 진로에 대한 막연한 고민 끝에 휴학을 하고 회계사 시험을 준비했었다.


그 해 4월쯤, 시간 내어 동기들을 만나러 학교에 방문했었는데 가깝던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던 반가움은 잠시일 뿐, 대화를 할수록 알 수 없는 이질감이 들었다.


몇 개월 전만 해도 같은 장소, 같은 수업, 같은 주제를 공유하며 매일 같이 만나며 친근했던 사람들과 공감대를 만들어주었던 건 외부적 상황이었다. 전공과 전혀 다른 공부를 시작하고 그들을 처음 만난 날, 함께 있어도 예전과 같은 감정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마주한 순간에야 비로소, 새로운 도전을 향한 대담했던 결정이 '예전의 나'와 한 직선상에 있던 선택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다시 복학한다 해도 예전과 같아질 순 없겠구나, 지금의 그리움을 해소할 방법은 없겠구나.


3년간 함께 과제와 시험을 준비하며 돈독해졌던 동기들과 가장 가까워졌던 3학년이 많이 그리웠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갈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나니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그 시절을 내 인생 하나의 챕터로 마무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 뿐이었다.




작년 6월 스페인에서의 삶을 계획하며 서울살이를 마무리하던 때, 연락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친구들을 만났다. 지난 경험을 통해 지금의 선택이 또 한 번 나를 다른 차원으로 이끌 거라는 걸 예상했고, 그 시절의 순간들을 온전히 마음에 남기고 싶었다.


한국이 그리운가요?라는 질문을 받고, 내가 느끼는 그리운 감정을 따라 다시 한국에 돌아가서 살아갈 미래를 그려보았다. 예전과 똑같이 살지는 않을 내 모습이 그려지는 걸 보니, 또 하나의 챕터를 닫을 때가 왔음을 실감한다.


사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그리워한다는 건 이별과 상실뿐만 아니라, 나와 내 주변의 변화를 포괄한다. 수동적인 그리움이 아닌 주체적 그리움은 느끼는 이 순간을 축복하며 지금 여기서 새로운 익숙함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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