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가 울리는 마을-노르뷔(Nordby)

19.05.12 삼쇠섬 3일차(덴마크6일차)

by 김지현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 있음, 지금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이다. 다름 아닌 바로 여기에 있다는 감각.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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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뷔(Nordby)는 삼쇠의 북쪽 끝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삼쇠의 중심가와 유명한 관광지는 남쪽에 모여 있어서 노르뷔는 관광객이 한 차례 지나가면 한없이 한적하고 조용하다. 스티니는 첫만남에서부터 여긴 참 작은 동네이고 사람이 얼마 살지 않아 동네 사람들은 모두 안다며 한국에서 한 동네에 사람이 몇이나 사는지를 묻고는 깜짝 놀라했다. 스티니가 이 작고 조용한 마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의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물론 나도 이 마을이 벌써 애틋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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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시작하고 생경한 풍경에 놀라는 시간도 잠시, 떠나오기 전 상상하던 어떤 이상적인 무언가를 찾기 위해 내 눈은 바빴다. 물론 모든 것, 사람 사물 건축물은 여전히 낯설고 새롭지만 생각보다 너무 아무렇지 않았다(특히 궁전이나 유명 관광지의 풍경들이 그랬다). 새로운 것은 한국의 곳곳에도 많았고 그것들은 몇 번의 셔터가 지나가면 더이상 새롭지는 않았다. 애써 잘 알지도 못하는 건축 양식 용어들을 떠올리며 면면의 디테일에서 무언가를 찾아보려 애썼지만 현장에서는 그저 와, 신기한 집이네, 예쁜 장식이네, 하는 감상에 그칠 뿐이었다.


처음엔 여기까지 온 이유, 혹은 어떤 깨달음이 있다고(있을 거라고) 기대한 바에 어울리게 자꾸 뭔가를 찾으려 했고 점점 그 예상에 미치지 못하는 순간들을 직시해야 했다. 낯설고 신기한 땅에서도 매 끼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숙소로는 어떻게 돌아가야 하며 배변 활동을 잘 유지하고 몸이 아프지 않도록 신경써야 하며 무엇보다 아껴야 했다. 그러니까 그저,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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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온 지 약 일주일. 돌아감은 저 먼 곳에. 기약 없음을 상기하자 정말 삶이 되었다. 주어진 식재료 안에서 최대한 끼니를 만들어 먹고 분리수거를 하고 방을 청결히 유지하려 노력하며 굳이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가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가까운 공원에 나가 한국에서 가져온 책을 읽는다. 사진을 찍는 횟수도 줄었다. 여기까지 와서 방에 있거나 구경 대신 책을 읽을 거라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겠지만 결국 아무리 새로운 것도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 있음, 지금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이다. 다름 아닌 바로 여기에 있다는 감각.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행위의 종류보다 존재가 발 딛고 있는 곳, 삶이 펼쳐지는 장소, 그 자체로 여행임을 하루하루 발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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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니와 함께 마을 곳곳을 걸으며 짧은 산책을 했다. 마을 중앙에는 아기자기한 종탑이 있는데 이 마을이 생기면서 세워졌다고 했다. 그리고 여전히 하루에 두 번, 사람이 직접 줄을 잡고 종을 친다고 했다.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을 종소리는 이제 이 마을의 역사를 간직한 채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마을의 지나간 시간을 들려주고 있었다. 저녁 8시,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줄을 잡고 속으로 박자를 세며 종을 치는 누군가의 실루엣이 그려졌다. 매일 같은 시간에 맞춰 종탑으로 나와 진지하고 정성 들여 종 치는 일을 하는 이의 삶을 그려본다. 사람들의 하루를 열고 마무리하는 이의 마음을. 마을 속속들이 종소리가 번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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