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11 삼쇠섬 2일차(덴마크 5일차)
지구라는 작은 배에 몸을 싣고 우주를 함께 여행하는 모두 같은 여행자로서 서로를 환대하는 광경을 나는 이 머나먼 작은 마을에서 충분히 느꼈다.
다음날 우리는 식당에서 첫 우핑을 시작했다. 일하는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하루 5시간씩 주 6일 근무였다. 토요일인 덕분에 단체 관광객을 맞이하며 일과를 시작했다. 평소에는 스티니 혼자 요리도 하고 손님 응대도 하다가 단체 예약이 있거나 여름 성수기 철이며 우퍼들과 딸, 마을 친구분들의 도움을 받아 식당을 운영했다. 오늘은 스티니의 넷째 딸 말리나가 일을 도우러 왔다. 나는 말리나를 도와 홀에서 손님을 응대하고 청소하는 일을 맡았고 쇠얀은 스티니의 보조가 되어 주방에서 일을 도왔다.
오픈 시간인 정오부터 오후 세시까지 거의 80명쯤 되는 관광객들이 다녀갔다. 쉴 틈 없이 바빴고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매 순간 긴장한 채로 있었다. 이전에 혼자서 요리하고 청소하던 만화카페 아르바이트생 시절이 떠오르며 온갖 돌발상황과 혼란이 예상됐다. 특히나 말도 잘 못 알아듣는 동양인 여자라는 사실이 이 낯선 곳에서는 매일 인식됐으므로. 누군가 내게 불편한 시선을 던지지 않아도 길에서 나와 다르게 생긴 사람들을 그저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타자가 되는 기분을 매 순간 느꼈다.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런 순간들을 견디며 지내는 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맡은 일이 조금 능숙해지자 예의 한국 아르바이트생의 기질이 발동했다. 일하는 시간 동안에는 다른 아르바이트생과 수다를 떨어서는 안 되고 여유를 부려서는 안 되며 항상 웃는 얼굴로 손님들을 살피고 일을 찾아서 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알바생의 자세였다. 하지만 스티니와 말리나는 내가 알고 있던 많은 고용인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나를 피고용인으로 대한다기보단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 대했다. 내게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와달라’는 태도를 취했고 눈치껏 그들 옆에서 일을 도우면 항상 땡큐, 하고 웃으며 말했다. 물론 내게 주어진 일을 나만 하도록 내버려두지도 않았고 손님이 뜸하면 내 곁에 와서 도와줄게, 하고 함께 그릇도 정리하고 테이블도 정리했다. 단체 손님으로 식당 안이 가득 차고 마당 테이블까지 속속 차서 보기만 해도 정신이 없었는데 그 바쁜 와중에도 “커피 마실래, 차 마실래?”하고 물으며 우리가 먹을 차를 끓이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눈치를 보거나 무언가를 대접해야 하는 지워진 존재들이 아니라 그저 사람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이 낯선 땅,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조금 아프게 느꼈다.
정신없이 첫날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겨우 하룻밤을 잤을 뿐인데도 내 집처럼 몸이 풀어졌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의 틈에서 빠져나와 쇠얀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이상한 위안이 몸을 감쌌다. 스티니와 말리나의 친절함과 눈을 마주치면 인사하던 마을 사람들의 환대를 몸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긴장을 안고 있는 여행자를 잠시 쉬게 해주는 찰나의 이완이었다. 덴마크어로 내게 무언가를 물어오는 손님 앞에서, 나를 위해 천천히 또박또박 발음하며 영어로 말하는 스티니와 말리나 앞에서 나는 쏘리와 땡큐를 동아줄처럼 붙잡고 몸이 자꾸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속에서 나와 같은 언어를 쥐고 있는 누군가, 내가 편하게 발음할 수 있는 말을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와도 아직 환한 낮이었다. 나는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챙겨 들고 마을 중앙에 있는 작은 호숫가로 나갔다. 덴마크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게 된 장소에서 책을 읽었다. 여행자가 마주하게 되는 환대의 순간을 나는 오래오래 곱씹었다. 그저 사람과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 일어나는 환대에 관해서. 지구라는 작은 배에 몸을 싣고 우주를 함께 여행하는 모두 같은 여행자로서 서로를 환대하는 광경을 나는 이 머나먼 작은 마을에서 충분히 느꼈다.
“고향과 공동체를 떠나 한동안 먼 곳에서 지내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때 우리는 매일 낯선 사람을 신뢰하게 된다. 그 사람과 핏줄로 이어져 있지 않은 것은 물론 신념이나 공동체를 공유하지도 않고 계약으로 묶여 있지도 않다.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가 어떤 가족이나 부족의 일원인지도 모르며 그가 사는 마을의 위치도, 그가 사회와 자연과 우주 속에서 어떤 부문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를 신뢰한다. 그의 말이나 몸짓도 이해 못하고, 목적이나 동기도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그때 발생하는 신뢰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잘 정의돼 있는 행동으로 이루어놓은 공간을 건너뛰어 그 자리에 당신과 함께 있는 진짜 개인과 곧바로 접촉하는 것이다.”
―알폰소 링기스 『길 위에서 만나는 신뢰의 즐거움』, 김영하 <여행의 이유> p.143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