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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Aug 31. 2020

조카의 탄생 2탄

매일 오전, 동생과 올케는 호들갑스러운 가족을 위해 성실히 사진을 보내온다. 조카는 신생아에서 벗어나 이제 조금씩 아기 태가 나고 있다(갓 태어난 아기를 지속적으로 지켜본 사람이면 그 구분을 알 수 있다). 목도 조금씩 가누고 머리 위에서 뱅뱅 도는 흑백 모빌을 따라 눈동자도 굴린다. 아기는 정말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매일같이 체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정말 짧다. 사진과 동영상으로밖에 지켜볼 수 없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고모는 속이 탄다. 밥 먹기 전에도 조카 동영상, 밥 먹다 말고도 조카 사진, 밥상도 치우지 않고 꼬물거리는 조카의 모습에 한참을 빠져 있다. 아버지는 조카 사진과 대화하는 능력을 얻었다. 눈 뜨면 “아고 우리 아가 잘 잤어?”하고 티비를 보다가도 어느새 조카 동영상을 들여다보며 “아고 우리 새끼. 어찌 이리 이뿌노.”하고 절절 매는 목소리를 낸다. 물론 엄마와 내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동생과 올케가 성가실까봐 차마 사진 더 보내달라는 말은 못하고 “아가는 어젯밤 잘 잤는가?” 하고 운만 뗀다. 집에서 차로 30분이면 닿는 곳에 살고 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국경을 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뉴스에 나올 때마다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크는 조카 볼 날을 손에 꼽으며 욕을 했다. 


갓 태어난 조카는 발가벗은 채 제 아빠 앞에서 구석구석 선(?)을 보였다. 몸무게도 재고 손가락 발가락이며 생김생김이 모두 괜찮은지 간호사와 동생이 꼼꼼히 확인했다. 아직 태지가 덕지덕지 묻은 갓 태어난 조카의 사진을 받았을 때 집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우리는 모두 빵 하고 터졌다. 세상에나. 갓 태어난 아기가 이렇게 예쁠 수가 있나. 아니, 이렇게 빵빵할 수가 있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온 가족이 ‘도치 가족’이었다. 조카는 일주일 동안 그 병원에서 태어난 아기들 중 가장 큰 아기로 아주 건강하게 태어났다.


신생아실로 옮겨진 조카는 비슷하게 태어난 아기 친구들과 같이 자고 울었다. 모든 게 서툰 아기는 엄마 아빠의 손길보다 전문가의 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기만 서툰 게 아니라 엄마 아빠도 서툴기 때문이었다. 아기들은 몸에 이것저것을 달고 호흡과 발열, 다양한 것들을 실시간으로 체크했다. 엄마와 아빠도 정해진 시간에 유리벽 너머에서만 잠깐 볼 수 있었다. 특히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거리를 지나 출퇴근하는 남편은 면회도 잘 안 시켜줬다. 아기와도 떨어져 있고 남편도 맘껏 볼 수 없는 상황에 호르몬 분비까지 더해져 올케는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밥 먹다가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잠깐 면회 온 남편 얼굴만 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답답한 상황도 그랬고 동생이 아무리 부드럽게 돌려 말해도 천둥 같은 무게로 다가오는 말 때문에도 그랬다. 


“밥 먹을 때 체내 산소 수치가 조금 떨어진다네.”

이제 막 스스로 숨을 쉬기 시작한 조카는 젖병을 빠는 동안 산소 수치가 떨어졌다. 분유를 빨아 먹는데 집중하느라 숨쉬기를 잊는 거라고 했다. 엄마 뱃속 양수 안에서 동동 떠다니며 산소와 영양분이 알아서 공급되는 세상에서 안전하게 웅크리고 있던 아기에게 삶은 날벼락처럼 갑작스레 닥쳐오는 것이었다. 불쑥 세상으로 밀어내놓고 알아서 숨도 쉬고 분유도 빨아 먹으라고 하니 모든 것이 힘겨운 분투였다. 더욱이 숨을 쉬면서 밥도 먹어야 한다니. 따뜻하고 포근하던 엄마 품속이 말도 못하게 그리울 것 같았다. 자가 호흡을 시작한 지 3일차, 조카에게 젖병을 빨면서 빨대 구멍 같은 콧구멍으로 숨을 쉬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정말이지 숨을 쉰다는 것 자체가 삶이었다. 더 이상 숨은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매 순간 뇌의 작용과 호흡기를 통해 온몸 구석구석 맑은 산소를 채우고 고인 숨을 잘 뱉어내는 것. 그건 엄청난 에너지와 노력과 연습을 통해 가능한 것이었다. 조카는 전 생애에 걸쳐 수행해야 하는 그 고단한 과정에 첫발을 막 떼고 있는 중이었다. 그걸 지켜보는 우리는 아무리 걱정스러워도 기다려야 했다. 사람으로, 삶으로 걸어나가는 첫 단추는 작고 여린, 하지만 강한 그 아이가 채워야만 하는 일이었으니까.


의사는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많은 신생아들이 겪는 과정이고 조금 더딘 아기도 있을 수 있다고. 조금은 느려도 조카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호흡하는 과정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 아기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그저 열심히 애쓰는 조카를 응원하고 지켜볼 뿐이었다. 올케와 동생은 조카를 면회하며 유리창 너머에서 “아가야, 조금만 천천히 밥 먹어. 급하게 안 먹어도 돼. 숨 쉬면서 천천히.” 하고 매일 같이 말해주었다. 그 과정을 전해 들으며 우리 가족은 동생 내외가 걱정할까봐 아기니까 그렇지, 잘 할 거야. 하고 태연한 척 말했지만 엄마와 아빠가 각자 조카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며 주문 같은 염원의 말을 되뇌었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모두 한 마음으로 열심히 숨을 쉬고 있는 온 우주의 생명을 응원했다.


그 목소리를 들었을까. 조카는 우리가 알 수 없는 큰 힘으로 금방 스스로 호흡을 조절했다. 집중치료실에서 나와 조리원에서 짧은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조카를 그리워하다 못해 갈망하고 있을 우리를 위해 동생네는 흔쾌히 우리를 초대해주었다. 엄마와 나는 목욕재계를 하고 새로 산 예쁜 원피스를 입고 마스크로 무장한 채 단숨에 달려갔다. 동생 집에 들어서자마자 손을 깨끗이 씻고 거실로 들어선 엄마는 짧은 비명을 질렀다. 쇼파 위에 누워 눈을 꼭 감고 있는 조카는 너무 작고 예쁘고 소중하고 귀엽고…… 놀랍도록 완벽한 생명체였다. 


조카는 이제 열심히 젖병을 빨다가 숨이 모자란다 싶으면 알아서 빨기를 멈추고 쌕쌕 거칠게 숨을 쉰다. 그 과정은 경이에 가깝다. 오물오물 야무지게 빠는 입매도 그렇고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는 모습도 그렇다. 그 과정에는 삶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입으로 빨아들이고 목구멍을 움직여 삼키고 잊지 않고 몸속의 숨을 체크한 뒤 잠시 빨기를 멈추고 모자란 숨을 채워 넣는 과정은 결코 단숨에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가만히 지켜보면 알 수 있었다. 연한 피부에 목도 못 가누는 작은 생명이지만 제힘으로 힘껏 살아내는 중이다. 어느샌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지 않고도 음식물을 씹고 삼켜내며 한 걸음 한 걸음 더 세상을 향해 나아가겠지. 먼저 이 세상에 던져진 사람으로서, 그 과정을 우리는 열심히 지켜보고 응원할 것이다.     



+25일차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는 재채기하는 영상만 봐도 꺄르르 소리치고 결코 웃는 게 아닌(?) 어쩌다 지어진 웃는 표정에는 거의 녹아서 형체가 사라진다. 어젯밤 엄청난 응가로 엄마, 아빠를 잠 못 자게 만든 조카를 향해 팔이 아프도록 박수를 보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일. 조카는 제 할 일을 아주 열심히 잘 해내고 있는 중이다. 세상살이 25일차 아기는 지금 아주 잘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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