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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Oct 10. 2020

기습 방문

조카의 탄생 4화


“큰일 났다. 아기 지금 우리 집에 온단다!”


근무 중인 엄마가 전화를 걸어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는 괜한 호들갑이 아니라 정말로 놀랍고 엄청난 말을 들은 사람처럼 목소리를 높였고 “빨리 준비해라!”하고 전화를 끊었다. 연락도 없이 갑작스레 부모님이라도 방문하듯 엄마와 나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조카의 첫 방문이었고 비밀 프로젝트의 들통 위기였다. 곧이어 동생에게서 곧 출발한다는 연락이 왔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40분. 하던 일을 멈추고 서둘러 행동에 착수했다.


이제 50일째 된 조카와 동생 부부는 굴속 두더지 가족처럼 집에서만 은신하며 지냈다. 주춤하는 듯하던 코로나바이러스는 다시금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2차 유행했고 올케와 조카는 집 앞은커녕 현관문 밖으로도 한걸음 내딛지 않았고 동생 또한 출퇴근 이외의 일정을 잡지 않았다. 더불어 곧 다가올 추석에 아기를 만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 가족 역시 필수적인 일정 외의 만남은 자제한 채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온 가족의 행동과 결정에는 조카가 기준이 됐다.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 태어난 조카는 처음 본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린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을 터였다. 마스크 이전 세상을 모르는 조카의 오늘은 우리가 만든 내일이었다. 이 시기를 지나면 지금 우리가 생산해낸 마스크와 일회용품 쓰레기의 세상이 조카의 내일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면 정말로 두려워졌다. 기후위기와 쓰레기로 뒤덮힐 미래는 더 이상 뜬구름 잡는 희미한 미래가 아니었다. 그 세상이 내 조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어쨌든 이런 상황 덕분에 답답증이 꽤 커진 조카네가 아주 잠시 산책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엄마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집으로 갈테니 함께 저녁을 먹자고 했다. 화물차 기사인 아버지는 강원도로 일을 나가 있는 터라 그 소식을 전해 듣고 한껏 부러운 목소리로 아기를 잘 맞이해주라고 말했다. 엄마와 나는 전혀 기대하지도 꿈꾸지도 않았던 상황에 허둥지둥 분주해졌다. 나는 서둘러 집을 청소하고 가장 중요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거실에 섰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벽면에 가득 붙어있는 것(?)들을 해결해야 했다. 엄마와 나는 아버지도 함께 있을 추석날까지 개시일을 조금 미루기로 합의했다. 


열흘 뒤 다가올 추석, 조카가 공식적으로 우리 집에 올 날을 맞아 엄마와 아버지는 조카 환영 파티를 열자고 했다. 내가 제안한 것도 아니고 엄마와 아버지의 입에서 먼저 그런 제안을 듣자 놀랍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갓 50일을 넘긴 아기를 위해 어떤 환영 파티를 해주자는 것인지. 풍선 같은 거라도 붙이자고 하는 엄마의 말에 이리저리 인터넷 검색으로 간단한 소품들을 준비했다. 조카 이름으로 웰컴 가랜드를 만들고 사진을 여러 장 인화해서 거실 벽에 붙였다. 냄새 맡기용(?)으로 조카의 발에서 벗겨온 양말 한 쌍도 끈에 매달아 벽에 붙이자 귀여운 포토존이 완성됐다. 시험 삼아 꾸며본 벽면 덕분에 거실을 지나다닐 때마다 기분이 환해져서 엄마는 추석 때까지 그대로 붙여놓자고 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거실 벽에 매달린 양말에 코를 갖다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고 출퇴근 길에 사진 속 조카를 향해 인사하며 웃었다. 동생네는 이런 광경을 전혀 알 리가 없었다. 아깝긴 하지만 공식적인 웰컴 파티는 가족이 다 모이는 추석으로 미루기로 하고 벽에 붙은 사진과 소품들을 모두 떼어 몰래 숨겨두었다.


칼퇴를 하고 헐레벌떡 도착한 엄마와 마주 보며 이게 무슨 일이냐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소리도 없이 현관문이 스르륵 열리며 올케 품에 안긴 조카가 나타났다. 엄마와 나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탄성을 지르며 올케와 조카를 맞이했다. 엄마 품에 안겨 고개를 살그마니 돌린 조카는 찡얼거리지도 않고 눈을 말똥말똥 뜨며 우리를 쳐다봤다. 이럴 수가. 조카가 우리집에 있다!


우리 집에서 만난 조카는 또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제 발로 걸어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긴 하지만 벌써 마실을 나온 아기는 만지면 부서질 것 같던 예전의 그 아기가 아니었다. 물론 정말로 그 사이 조카는 많이 컸다. 연두부같이 부드럽기만 하던 볼이 살이 꽉 차올라 부침 두부 정도의 단단함이 느껴졌고 팔이며 다리도 더 통통해지고 길어졌다. 조카는 낯선 공간에 왔는데 울지도 않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열심히 돌려가며 여기저기를 관찰했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가족들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조카에게 우유를 먹이고 방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었다. 여기가 할머니 할아버지 방이야, 여기가 고모 방이야, 부지런히 설명하면서 기억을 못할지언정 감각으로 느끼도록 천천히 구석구석 보여주고 말해주었다. 조카는 이제 정확한 초점으로 눈앞에 있는 사람과 소리를 따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우리가 식사하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팔다리를 바동거리며 활발하게 몸을 흔들었다. 간헐적으로 뱉는 옹알이 소리도 ‘으애’ ‘에우’ 같이 발음이 선명해졌다. 올케는 하루가 다르게 단단해지고 자기 주장이 강해지는 아기를 보며 벌써 아쉽다고 말했다. “너무 빨리 커요, 형님.” 우리는 식사를 하며 열심히 팔다리를 휘젓는 아기의 생생한 얼굴을 보며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 얼굴도 오늘이 지나면 또 달라지겠지. 어느샌가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간의 흐름 속이 살고 있었다. 나는 크게 나아지지 않고 세상은 여전히 퍽퍽하고 하루하루의 특별한 의미가 없는 일상이 쳇바퀴 돌 듯 이어졌다. 매일매일의 의미를 찾기란 어려웠다. 별로 한 것도 없는 하루가 가고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는데 한 해가 바뀌는 것 같았다. 조카가 태어나기 전엔 정말로 그랬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은 이제 조카의 성장을 보며 매일의 변화를 체감하고 새로운 마음이 생겼다. 일상이 매일 조금씩 더 빛나 보였다. 어제 사진 속 조카는 순한 우윳빛이었는데 오늘 사진의 조카는 뭔가 불만스럽기도 하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한 다채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느린 노화의 길에 접어든 어른들의 시간 속에 빠른 성장의 궤도를 달리고 있는 아기의 시간이 들어서자 시간성 자체가 생생해졌다. 어제와 미묘하게 다른 조카의 낯빛을 보며 시간이 ‘잘’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아쉽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한 마음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잘 보내주었다. 흐른 시간만큼 조카는 성실히 성장할 테니 말이다. 이제 목을 가누려 열심히 힘을 주고 빳빳하게 목을 쳐드는 아기의 시간을 모두 한 마음으로 응원했다.     


+아기용품이 없는 우리 집에서 내 침대에 누워 코 자고 어른 이불을 여러 번 접어 그 위에 올려놓은 조카 덕분에 우리 집은 거인국처럼 보였다. 우리 집에 머무는 서너 시간 동안 조카는 두 번 밥을 먹고 한 번 놀라운 배변을 하고 2분 동안 엎드린 자세로 목 드는 연습을 했다. 일을 나가 있는 할아버지와는 영상 통화를 했는데 할아버지의 애달픈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지 통화 내내 화면 속 할아버지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기가 떠난 뒤 사실 밥을 코로 먹었는지 입으로 먹었는지 모를 엄마와 나는 허겁지겁 남은 국이며 빵이며 꺼내다가 먹으며 두 시간 정도 아기 이야기를 더 하고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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