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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c Kim May 11. 2022

남겨진 사람에게는 사진만큼 아픈 것은 없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말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시간이 지나도 사진은 그 순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평소 저 말에 격하게 공감을 하였고, 여행을 가거나 만남이 있을 때마다 그 순간을 남기려 하였다. 시간이 지나도 즐겁고 행복했던 이 순간을 다시 기억하기 위해서


하지만 모르고 있던 사실이 있었다. 아니, 사실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남겨진 사람에게는 사진만큼 아픈 것은 없다는 걸 말이다.




연인이라던 특별한 관계가 끝나고, 연인에서 다시 '남'이라는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서로에게 스며들어 있던 생활, 사진, 추억 등 상대방의 흔적을 지워야만 한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연애기간이 오래될수록 쌓여온 시간, 추억들이 더 많고 정리해야 할 것들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5530장.

내가 오늘 사진첩에서 지운 사진의 개수이다.

3년 6개월의 시간 동안 내 사진첩에 저장되어있는 5530장의 사진이 많은 개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 수 있었다. 적던 많던 상대방의 흔적을 지워간다는 건, 지워야만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기억력이 그리 좋지 않다.

오늘 아침에 들은 이야기도 좀처럼 기억을 잘하지 못하여 기억에 관하여 실수가 잦았고, 실수의 경험을 통하며 메모하는 습관이 만들어졌을 정도로 기억을 잘 못한다.


이렇게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인데,

웃기게도 5530장의 사진을 지우는 동안 지난 3년 6개월이 모두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여기서는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때는 이래서 서로 빵 터졌었는데'

'내가 이때는 좀 더 신경을 써줬으면 좋았을 텐데'

'아, 이때는 우리의 기념일이었구나'


오만 생각과 감정이 올라왔다.

섭섭함, 야속함, 억울함, 그리고 미안함까지.

사진을 지우는 몇 시간 동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하나하나 눈물로 사진을 지워갔다.




처음 만났던 날까지 시간을 역행하고 나자 '최근 삭제된 항목'이라는 앨범에는 총 5530장의 사진이 들어가 있었고. 사진들 아래에 30이라는 숫자가 적혀있었다. 30일이 지나면 완전히 삭제가 될 것이라는 표시였다.


그것도 보기가 힘들어 바로 삭제하고자 하였다.

전체 선택을 누르고 삭제 버튼을 누르자 이런 문구가 떴다.


'이 사진은 삭제됩니다. 이 동작은 취소될 수 없습니다.'


영영 내 핸드폰에서 사진이 지워진다는 마지막 경고문.

이 버튼을 누르면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자 다시 감정이 차오르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한 참을 망설이다 차마 확인 버튼을 누를 수가 없어 그대로 핸드폰을 덮었다.


30일이 지나면 그때는 지우기 싫어도 지워질 텐데

그 정도 시간은 내 마음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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