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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c Kim Feb 27. 2020

#_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120만원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지만 그 후회가 쌓여서 만들어진 지금이라는 걸

한 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하다. 그때 안경을 사주던 엄마는 무슨 마음이었는지.




초등학교 3학년 때, 나는 안경이 그렇게 쓰고 싶었다. 어린 내 눈에는 안경 낀 사람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시력이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자꾸 안 보인다고, 안경이 필요하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항상 어두운 곳에서 TV와 책을 보고 어지러움도 참아가며 엄마의 안경도 몰래 썼다. 그러다 보니 정말 눈이 나빠졌다.


당시 우리 집안 사정은 많이 안 좋았었다.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 집안이 망해버렸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도망치듯이 서울로 올라왔었다. 안경에 지출될 비용조차 엄마에게는 큰 부담이었을 거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커가며 시력이 괜찮아질 수도 있어서 안경을 굳이 안 해도 될 거 같아요”


안경점 아저씨가 고민하는 엄마의 사정을 눈치챘는지 조그만 도움을 주었다. 그 말을 방패 삼아 엄마는 내게 안경이 꼭 필요하냐고 여러 번 되물었다. 집에 돈이 있고 없고는 철없던 나에게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저 어린 내가 원하던 건 안경이었고 결국 엄마는 없는 형편에 안경을 내게 사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안경 인생은 오랜 시간 동안 이어졌다. 막상 안경을 쓰기 시작하니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안경을 오래 쓰다 보니 관자놀이 쪽이 옴폭 들어가는 형태로 얼굴이 변했다. 운동을 할 때도 항상 조심해야 했다. 축구를 할 때 헤딩은 꿈꿀 수도 없으며 행여나 공이 얼굴에 맞아 안경이라도 날아갈 때면 모두의 심장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나는 어릴 때 왜 그렇게 안경에 집착을 했나 모르겠다.


2010년, 군대에 갔다.

지금 병장월급이 40만원이 넘는다고 하는데 2010년도는 병장이 되어야 월급 10만원이 겨우 넘던 때였다.

담배도 안 피고, 술도 안 마시고, 군것질도 안 하다 보니 전역할 때쯤 120만원이 넘게 모여있었다. 이 돈을 어떻게 쓸까 고민을 하다가 전역을 하자마자 안경과 이별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수술을 받자 신세계가 펼쳐졌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안경을 찾지 않아도 시간을 볼 수 있다는 게, 누워서 내려다본 내 발가락들이 선명하게 보인다는 소소한 것들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이상 신호가 찾아왔다. 피로가 쌓이면 가장 먼저 눈이 피로함을 느꼈다. 안구건조증도 조금 심해졌다. 이럴수록 관리를 더 잘했어야 했는데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관리를 조금 소홀하게 했다.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시력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회사생활을 1년쯤 하였을 때, 나의 시력은 수술하기 전과 다를 게 없어져 있었다. 장 시간 모니터를 보다 보니 눈에 무리가 가고, 아마 그러면서 눈을 깜박이는 횟수도 줄어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군대에서 모은 비싼 돈으로 수술을 한 눈이었기에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었다.




120만원이나 주고 수술을 받았던 내 눈은 더 이상 선명한 세상을 보여주지 못한다. 다시 수술을 받을 생각은 없다. 아무리 내가 매일 같이 퇴사를 외치는 퇴사무새이지만 눈이 나빠진 것까지 회사 탓을 하려는 건 아니다.

일 하는 동안 라식수술을 12번은 더 하고도 남을 돈을 회사로부터 받았고, 냉정하게 시력이 나빠진 이유는 제대로 관리를 못 한 내 잘못이기 때문이다. 그저 오늘따라 흐릿한 세상을 보여주는 눈이 야속하게 느껴지고, 처음 안경을 쓰기 시작한 날이 떠오르기에 이렇게 끄적여본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어린 시절의 나는 철이 없었구나 싶다.

한 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하다. 그때 안경을 사주던 엄마는 무슨 마음이었는지.

만약 정말 안경조차 사줄 수 없어서 내가 안경을 얻지 못했더라면 난 지금보다는 덜 아쉬워하며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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