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 먹는 게 남는 겁니다

안 먹으면 나만 배고프지

by Eric Kim

다른 여성 직원분들을 보면 점심시간 1시간 전부터 메뉴를 고르고, 주문을 하고, 예약을 하던데 우리 남자들에게는 그게 그렇게 어렵다.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하승진 선수의 NBA방출 썰을 보게 되었다.

마이너리그로 가게 되어 수입이 줄면서 할 수 없이 핸드폰 비용, 방세 등 고정비용을 제외한 이외의 항목에서 지출을 줄여야 했는데 하승진 선수가 선택한 항목은 식비였다. 서브웨이 하나를 사서 반절은 점심에, 나머지는 저녁에 먹으면서 한 시즌을 보냈고 그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영상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활비를 줄일 때, 다이어트를 할 때, 시간이 부족할 때 등 우리는 먹는 것을 가장 먼저 포기하는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내 얘기를 조금 하자면 나는 조금만 스트레스받거나 힘들어도 입맛이 없어진다.

처음 회사에 출근하여 온 몸이 긴장을 했을 때, 새로 일을 받거나 변경된 업무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혹은, 야근을 해야 할 거 같은 때 항상 내 입맛은 없어졌다. 그럴 때마다 '이럴 때 정시퇴근!'을 외치며 점심시간에도 일을 하거나 어디 구석진 곳을 찾아가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물론 점심을 Skip 한 날의 오후는 공복과 함께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지만 내게는 정시퇴근과, 멘털 회복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점심을 거르고는 하였다.


하지만 처음에는 '어쩔 수 없지' '다들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갔던 날들이 어느 순간 '내가 왜 이렇게 까지 일을 해야 하나'라는 마음으로 변하였다. 에너지가 부족한 몸이 몸뿐만 아니라 정신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사장님과의 면접 자리에서 내가 처음으로 꺼낸 질문도 "점심은 주나요?" 였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변해버렸나 싶은 서글픔이 올라왔다. 동시에 예부터 내려오는 '한국인은 밥심', '다 먹고살자고 일 한다'라는 말이 역시 괜히 나온 말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한 번의 현타를 겪은 이후로 아무리 바빠도, 밥맛이 없어도 억지로라도 회사에서 점심은 꼭 챙겨 먹기 시작하였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 3요소에도 들어가듯이 먹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나는 이 것을 서른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좀 일찍 알았다면 키가 조금은 더 컸으려나?




남자 직원 대여섯이 점심메뉴를 선택하는 방법은 이러하다.


로비에 나가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오늘은 뭐 먹지?"부터 시작이 된다. 이 질문이 나올 때면 선택 장애가 있는 나는 자연스럽게 뒷 라인으로 내려가며 "오늘도 따라가겠습니다"를 외친다.


다른 여성 직원분들을 보면 점심시간 1시간 전부터 메뉴를 고르고, 주문을 하고, 예약을 하던데 우리 남자들에게는 그게 그렇게 어렵다. 모든 남자들이 다 이러는 건 아니겠지만 어떻게 된 게 우리는 매 번 "오늘은 뭐 먹지?"부터 시작한다.


일주일에 5일, 꼬박꼬박 회사 근처에서 점심을 먹다 보니 모든 음식점을 섭렵해버렸다.

그중에 입맛에 맞지 않는 집을 제외하고 선별된 음식집만 매일 돌아가며 다니다 보니 벌써 회사 주변 음식들에 질려버린 것이다. 아마 오늘 뭐 먹지?라는 고민도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고뇌일지도 모른다.


10년에 강산이 변하니까 2년 정도면 주변 음식점에 조금 변화가 있을 법도 한데 어떻게 1년 365일 똑같다. 물론 멀쩡히 장사 잘하시는 분들이 망했으면 좋겠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더 이상 점심시간이 기다려지지 않는 이 슬픈 현실에 대한 소리 없는 아쉬운 외침일 뿐이다.




언제, 어디가 될지 모르겠지만 내 다음 회사에서는 점심을 줬으면 좋겠다.


돈을 떠나서 매일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자나 내일은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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