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어쩌면 당연한 것들이 더 소중한 것입니다

by Eric Kim

그 영화 제목이 기억은 안 나지만 그런 명대사가 생각난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지하식당을 통하여 다시 한번 돌아보는 소중한 것들. 잊지 말아야겠다.




회사 지하에는 점심시간에는 식당으로 되는 피로연장이 하나 있었는데, 여섯 개가 넘는 반찬에 무한 리필, 그리고 가벼운 잔치국수와 냉모밀까지 모든 것을 6,000에 누릴 수 있었다.

한 끼 식사가 기본 7~8천원을 하는 요즘에 그곳은 혁명과도 같았다.


반년쯤 지나고 12월 말쯤, 입구에 공지 하나가 붙었다.


'물가 상승으로 인하여 1월부터 가격을 7,000원으로 인상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은 서비스와 품질을 제공하기 위하여 내린 결정이오니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2019년 1월 1일,

식당에 들어가자 초밥집 주방장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입구 쪽에서 열심히 초밥을 만들고 있었다. 수타면을 뽑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만든 중식당을 떠오르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더 나은 서비스와 품질을 제공한다는 말이 이런 식으로 적용될 줄은 몰랐던 나는 적잖게 그 장면이 당황스러워 옆에 직장 동료들을 쳐다보니 나만 당황스러운 게 아니었나 보다. 뭐.. 그래도 볼거리도 제공할 목적이었다면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듯싶었다.


"이거 좀 과한 거 아닐까요? 가격 올린 첫날이라고 조금 과하게 준비한 거 같은데.."


1,000원을 올렸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좀 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나는 화두를 던졌다.


"설마 일회용 보여주기는 아니겠지?"

"에이 설마요.."


혹시나 하는 마음은 항상 역시나이다.

다음날부터 지하식당은 기존 식단, 늘 먹던 반찬, 로테이션 돌리는 반찬 조합까지 이 전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가격이 오르고 첫날 보여줬던 메뉴와 퍼포먼스는 모두가 우려했던 대로 정말 일회성의 보여주기식 이었던 것이다.


가격을 1,000원이나 올렸는데 모든 건 이전과 똑같았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미 지하에 가는 것은 손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내가 속한 점심 파티 멤버들도 지하를 가는 것보다는 다른 주변의 식당에 가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였다. 정말 시간이 없거나, 비가 온다거나 그런 특수한 상황만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 나가서 밥을 먹게 되었다.




그렇게 1년이 다 되었을 무렵 또다시 입구에 공지가 하나 붙었다.


'지금까지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9년 12/31일부로 더 이상 운영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가격이 오르고,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지 않아서 문을 닫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을 통하여 내용을 들어보니 그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사람이 줄긴 하였지만 가격을 올렸기 때문인지 수입은 괜찮았다고 한다. 다만 건물주가 계약 연장을 거부하였고, 그로 인하여 문을 닫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더니..


지하 식당이 나가고 그 자리에 전시관이 생길 예정이라고 하였다.

지하에서 수익이 너무 많이 나서 건물주가 직접 식당을 운영을 하려고 계약 연장을 안 해줬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다.


그렇게 지하식당은 사라졌다.




지하식당이 사라지자 조금의 애로사항이 생겼다.

주말에는 예식장이었던 지하식당은 최소 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였다. 아무리 가격이 오르고 맛이 없었어도 점심시간에 건물에 있던 사람 수백 명이 점심을 해결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그 공간이 사라지자 모든 사람들이 회사 주변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점심을 먹기 위하여 웨이팅은 어느 순간 필수가 되어버렸다. 그 어느 식당을 가도 사람이 미어터졌기 때문이다.

음식을 기다려서 먹다 보니 휴식시간도 줄어들었다. 점심과 커피 한 잔의 여유로 하루를 버티는 직장인인데 커피 한잔 할 시간이 사라져 버렸다. 거기다가 평소에는 메뉴를 고르는 것만 일이었는데, 사람이 없는 식당을 찾는 것도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여섯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이 선택의 우선순위가 되었다.


막상 이렇게 지하식당이 사라지니 아쉬운 부분들이 생겨나고, 보이기 시작했다.

바쁠 때 지하식당에 가면 30분이면 되돌아올 수 있었는데 지금은 음식이 내 앞에 나오면 이미 30분이었다.

궂은 날씨에는 안 나가고 지하에서 해결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우산을 챙겨가며 밥을 먹으러 나가야 했다.

맛없다고, 비싸다고 관심도 없던 지하식당을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잘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요즘도 점심을 먹다가 동료들과 지하식당 얘기를 가끔씩 한다.

보면 다들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다시 식당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을 동일한 듯싶다.

참 당연했던 것이 없어지고 나니 필요성이 느껴진 것이다.


식당일을 통하여 식당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것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익숙하여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들이 사라지면 나는 어떤 기분일까. 또, 어떤 불편함이 찾아올까.

하나하나 생각하다 보니 그런 것들이 생각보다 좀 많다.


그 영화 제목이 기억은 안 나지만 그런 명대사가 생각난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지하식당을 통하여 다시 한번 돌아보는 소중한 것들.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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